패트릭 화이트 장편소설 『전차를 모는 기수들(Riders in the Chariot)』
오스트레일리아 소설가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 1912 ~1990)의 장편소설로 1961년 발표되었다. 화이트는 전업작가가 아닌, 나무꾼 곧 벌목노동자로 일하면서 글을 썼다. 「에스겔서」에 적힌 기수의 비전으로 서두를 여는 장편소설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비유적이고 계시적인 색채로 가득하지만,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종교를 넘어서는 사랑을 증명하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의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기술하며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민족, 종교, 성별, 이념, 빈부 등 인간을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숱한 조건은 오늘날에도 굳건하다.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에서 교훈을 준다.
화이트는 영국 런던 출생으로, 양친의 고향인 호주의 시골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소설, 희곡, 시를 창작했으며, 시집 <밭 가는 사람>, 소설 <행복한 골짜기>, <산 자와 죽은 자> 등을 발표했다. 1948년에 <보스>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전후 최대의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마일즈 프랭클린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73년에는 <폭풍의 눈> 등의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세기 말, 영국은 미국 독립 이후 급증한 죄수를 유배시키기 위해 호주를 새로운 유형지로 사용한다. 19세기 중반 금광이 발견되면서 전 세계에서 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유색인종을 배제하는 백호주의 정책이 도입되어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차별은 원주민과 유색인종뿐 아니라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백인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호주를 변방의 유형지로 이해하며 그곳에 정착한 백인들조차 식민지 주민으로 간주했다. 메리 헤어, 알프 더보, 루스 조이너, 모르데카이 힘멜파르프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인물들이다.
메리 헤어는 귀족 가문 출신의 부유한 여성이지만, 광인으로 간주되며 괴기스러운 존재로 소외된 여자다. 그녀는 유대인과 가난한 여성을 친구라 부르며 친하게 지낸다. 알프 더보는 백인 목사의 가정에서 교육받은 원주민 후손으로, 뛰어난 교육을 받았음에도 혼혈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이다. 루스 조이너는 초라한 오두막에서 정직하게 일하며 여섯 딸을 사랑으로 키웠지만 사회 최하층으로 멸시받는 여성이다. 유대인 모르데카이 힘멜파르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호주에 이주했지만, 부활절을 앞두고 동료들의 ‘장난’으로 나무에 매달리는 일을 겪으며 여전히 배척당하는 인물이다. 이들 모두 사회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소외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배척에 맞서 싸우거나 새로운 배제의 범주를 만들기보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사랑과 연민으로 연대한다.
힘멜파르프는 부활절에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희생을 통해 용서를 실천하며 사랑의 화신이 된다. 알프 더보는 목사의 여동생에게 배운 유화를 통해 자신이 목격한 극한의 사랑과 신성을 증언한다. 루스 조이너는 가장 낮은 곳에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보이지 않는 존엄의 왕관을 쓴다.
이들의 고통과 연민은 사회적 경계를 넘어 모든 배척받은 존재들을 위로하고, 구원의 수레를 이끌며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실천한다. 그들의 사랑은 모든 차별과 배제를 초월하여 인간성을 초월한 깊은 의미다. 이들이 묵묵히 이끄는 구원의 전차는 서로를 구분하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는 온갖 경계를 뛰어넘으며 범주에서 내몰린 모든 존재를 위로할 뿐이다.
화이트 소설의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 꿈과 현실이 엇갈리는 심연 속에서 한 개인이 피치 못하게 갖는 인간 본연의 고독, 고통, 애증 그리고 갈등과 대면한다. 더욱이 하층민인 그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가도록 내몰린다. 따라서 그들은 ‘불타버린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으며, 화이트는 그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연민의 정을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패트릭 화이트의 문장이나 사건의 전개 방식은 예리하면서도 매끄러우며, 지루하기도 하고 수수께끼나 시구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세부 묘사가 뛰어나고 의식의 흐름이 수시로 교차한다.
찰스 오스본은 “화이트의 천재성은 명백히 이질적인 두 재능의 희귀한 융합에 있다. 즉, 도스토옙스키의 격렬한 영혼, 원대한 통찰력과 함께 오스카 와일드의 심술궂음이 깃든 기품이 결합하여 있다. 끈끈한 자비보다는 차라리 명료한 냉정을 택한다. 그의 단편들이 대단히 유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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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고립, 환상과 현실의 교차, 현재에 끼어드는 과거의 시간과 기억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립감과 치열한 자기 분석,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예민한 자각 등이 자주 다루어진다. 작가는 삶을 더 다채롭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이면에 있는 비범함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서사시적이고 심리적인 기법으로 작품 활동을 한 패트릭 화이트는 1990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음에도 부모의 고향이자 유럽에서 ‘변방의 유형지’로 이해되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이후, 문학과 더불어 동성애에 대한 부당한 편견, 애버리지니(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의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설적인 발언을 했고 문화적인 후원을 통해 그들의 예술을 오스트레일리아 내외에 소개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소수자, 나아가 세계의 모든 소수자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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