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단편소설 『농군(農軍)』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이태준 단편소설로 1939년 [문장]에 발표되었다. '순수 문학의 기수'라는 이태준의 작품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작가의 현실 인식의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1930년대 만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자, 실제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일제 치하 우리 농민의 궁핍한 모습은 물론 끈끈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이태준은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고 과거를 추궁받았으며 1956년 숙청당했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이태준은 1925년 [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도쿄 유학에서 귀국할 때까지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하면서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썼다.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 경향을 정착시켰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해방 전후>(1947)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사상의 월야>(1946)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는 한편, 기행문 <소련기행>(1947)도 발간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척박하고 좁은 농토에서는 도저히 삶을 영위할 수 없어서 유창권 일가는 만주 땅 장춘으로 향한다. 이들 일행은 조선 농민들의 집단촌인 '쟝자워프'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젊은 유창권 내외는 새벽 일찍 잠이 깨어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신천지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에 젖는다.
조선 농민들이 그들의 농토에서 30리나 떨어진 '이퉁허'라는 하천에서 끌어오는, 논농사에 필요한 수로 공사를 벌이는데 난데없이 일단의 중국 토착민이 습격한다. 중국 토착 농민들이 수로 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밭이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조선 농민들은 부인들까지 낫과 식칼을 들고 나와 대항한다. 이 위세에 눌려 중국 토착민들은 흩어진다. 유창권은 이를 목격하고 새로운 '의식의 눈'을 뜨게 된다. 이 와중에 창권의 할아버지는 운명하고 공사는 중단된다.
봄이 되어 수로 공사를 재개하자 중국인들이 관청에 진정(陳情), 급기야 돈에 매수된 중국 군인들이 출동하여 공사를 저지한다. 생각다 못해 이번에는 조선 농민 대표자들이 그 부당성을 관청에 진정하지만, 오히려 감금당했다가 9일 만에 풀려 나온다.
중국인들은 황채심 등 조선 농민 대표자가 주민들을 회유시키고자 하지만 황채심은 오히려 농민들을 향해 끝까지 뜻을 관철하라고 격려한다. 이에, 사기가 오른 조선 농민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하여 기어이 생명의 젖줄인 수로를 뚫는다.
『농군』은 이태준 소설 중에서는 특이하게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끈질긴 투쟁의 모습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담고 있다. 작가가 작품의 서두에서 "이 소설의 배경, 만주는 그전 장작림 정권 시대임을 말해 둔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단편소설 『농군』은 1931년에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만보산 사건'이란, 만주 토착민과 조선에서 이주한 농민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빚은 사건이다. 실제로 1932년 4월 만주로부터 만보산 지역 미개간지를 조차(租借)한 일본인이 이를 다시 조선의 농민에게 10년 기한으로 빌려주고 180여 명의 조선 농민을 끌어들이면서 만주 토착민과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조선에서 만보산 지역으로 이주한 농민들은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퉁허'로부터 20여 리의 수로(水路)를 만든다. 이 수로 공사로 인해 부근의 토착 중국 농민들이 손해를 입게 되자 그들은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조선 농민들이 만든 수로와 제방을 파괴한다. 이에, 조선 농민들의 공사를 보호하기 위해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경찰이 사격까지 가하며 중국 농민들을 강압적으로 해산시킨다.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여 만주인들의 만행이라고 조선에 보도함으로써 한때 조선에서는 만주인 배척 운동과 함께 만주인에 대한 살인, 테러 등이 횡행했다. 결국, 일본의 만주 침략의 구실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
소설 속에서는 ‘만보산 사건’이 다소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즉, 기본적인 골격은 같지만, 사건의 해결 주체는 상이하다. 실제 사건에서는 조선 농민들이 보호받는 대신 일본 경찰이 중국 농민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농군』에서는 중국 군인들이 조선 농민들의 수로 공사 저지를 위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주인공 '유창권'의 다리에 관통상을 입히고 경상도 노인을 죽이고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사전 검열이 강화되던 1937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태준이 조선 농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형상화하겠다는 민족주의적인 생각으로 작품을 썼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일제의 정치적 야욕에 부응 또는 협조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태준은 단편소설 『농군』을 통해 그가 줄곧 견지해 온 순수 문학적 태도를 청산하고 용감하게 현실 속으로 뛰쳐나오려는 변혁을 시도했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소박한 현실 인식만을 보여 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 만보사 지역에서 한ㆍ중 양국 농민 사이에 일어난 분쟁. 동년 4월 장춘(長春) 도전공사(稻田公司) 경리 학영덕(郝永德)이 만보산 지역의 미개간지 3천 무(畝)를 조차(租借)한 것을, 다시 한국 농민 이승훈 등 8인이 10년 기한으로 조차계약하여 개간에 착수하였는데, 한국 농민 180여 명을 동원하여 수로공사(水路工事)를 진행하자, 부근 토착 중국 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이들은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공사장에 집단 난입하여 공사를 중지시켰으나, 일본 경찰은 공사를 진행시키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사실을 한국 농민이 중국인들에 의하여 습격 받았다는 내용으로 [조선일보]가 민족적 견지에서 대서특필 하여 보도ㆍ논란하게 되자, 다음날 이리(裡里) 지방에서는 당장 중국인 박해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을 계기로 서울ㆍ인천ㆍ평양ㆍ신의주 등지로 확대되어 마침내 전국적으로 중국인 박해사건이 발전,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한국농민 대 중국농민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일본 대 중국의 국제문제화하였다. 사건이 복잡해짐에 따라 조선ㆍ동아 등 양대 신문사에서 그 진상 조사에 나선 결과, 이 사건 이면에는 중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본의 침략음모가 잠재해 있다는 점, 이 사건이 일본의 모략적 선전의 전파로 침소봉대화하였다는 두 가지 점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일반민중의 민족감정을 자극하여 한ㆍ중 두 민족의 이간을 꾀하여 소위 민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는 전주곡이 되었다.
☞만주사변 :
1931년 일본이 만철폭발사건(滿鐵爆發事件)을 조작하여 만주를 점령한 사건. 1930년대에 세계 공황이 일본에도 미치게 되었다. 일본내의 불만을 외부로 몰아내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일본의 군부(軍部)는 만철폭발사건을 조작하여 이를 구실삼아 무력으로 만주 일대를 점령했다. 1932년에는 청조(淸朝) 최후의 황제 부의(溥儀)를 옹립하여 만주국이란 괴뢰 국가를 세우고, 일본의 침략 정책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로 인하여 한국은 소작쟁의ㆍ노동쟁의ㆍ민족운동 등 항일운동에 탄압을 받았고, 이후 만주는 일본의 침략전쟁의 병참지로 만들었다. 한편, 미(美)ㆍ영(英) 등 열강은 일본의 군사행동에 반대하고 국제연맹에서도 리튼(Lytton)조사단을 파견하여 그 선후책을 권고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1933년 3월 국제연맹을 탈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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