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단편소설 『밤길』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소설로 1940년 [문장]에 발표되었다. 이태준의 작품 중 작가의 현실 인식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1930년대 도시 빈민의 궁핍한 삶과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칠흑 같은 밤, 계속하여 내리는 비,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들려오는 개구리와 맹꽁이 울음소리는 이 소설의 침울한 분위기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작가는 소외된 인물들의 현실적 고난과 그 인물의 내면세계의 순수무구함을 드러내어 인간애의 의식을 촉구하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상허 이태준은 1929년에 개벽사 기자로 일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3년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이효석ㆍ김기림ㆍ정지용ㆍ유치진 등과 결성하였다. 이어 순수문예지 [문장](1939.2∼1941.4.)을 주재하여 문제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단편소설 <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해방전후>(문학. 1946. 8) 등 일제강점기 민족의 과거와 현실적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썼으며, 그의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묘사적 문장은 독자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그가 취택한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삶 의식을 잘 드러내며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수필집 <무서록(無序錄)>(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1946) 등도 그의 탁월한 문학적 저서로서 크게 공헌한 책들이다. 1946년 7월께 월북, [북조선문학예술동맹] 부위원장을 맡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 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심성이 착한 황 서방은 서울에서 행랑살이하다가 첫아들을 보자 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를 행랑살이하던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인천 월미도로 내려와 신축 공사장에서 모간꾼 노릇을 한다. 한동안 돈도 벌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었으나 이것도 잠시뿐,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공사는 중단되고 돈만 까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황 서방보다 훨씬 젊은 그의 아내는 바람이 나서 가출하고 남은 아이들은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젖먹이 아들은 병에 걸려 죽어 간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영감이 아이들을 월미도 공사장에 이끌고 내려와 황 서방에게 넘기고 가 버린다.
어린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병원을 찾았으나 아이의 병세는 매우 위독하여 오늘 밤을 못 넘기겠다고 한다. 공사장으로 돌아온 황 서방은 새로 지은 집에 주인이 들어오기도 전에 시체를 내갈 수 없다는 권 서방의 생각에 동의하며 비 내리는 밤길에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나온다.
동료인 권 서방과 함께 아이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지만 아이는 금방 죽을 것 같으면서도 쉬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둘은 주안 쪽을 향해 걷다가 아이의 숨이 끊어졌다고 판단하여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아이를 묻으려 한다. 순간 아이의 목숨이 아직도 붙어 있음을 알고 권 서방은 놀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이가 죽자 구덩이에 아이를 묻고, 황 서방은 "내 이년을 그예 찾아 한 구뎅에 처박구 말 테여."라고 외치며 통곡한다. 어둠과 빗줄기 속에 황 서방은 주저앉아 버리고,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만 들려 올 뿐이다.
이태준의 수많은 작품은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밤길」은 작가 이태준의 현실 인식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밤'과 '줄곧 그치지 않는 비'라는 배경을 통해 암흑기의 절망적 상황과 하층민의 가난을 그리는데 그치고 있다.
행랑살이하던 황 서방은 아들을 낳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사장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황 서방의 꿈은 깨어지고 만다. 아내의 가출, 아이의 병, 그리고 끝내는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모르는 황 서방의 모습, 게다가 집주인이 들기도 전에 새집에서 시체를 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집을 나오는 장면에서 착하기만 한 노동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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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기보다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가출한 그의 아내에게 있는 것처럼 그림으로써 극에 달한 황 서방의 분노와 절규를 보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가난의 문제보다는 하층민의 삶의 애환을 비극적으로 다루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문체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작가의 가라앉은 시선을 잘 보여 준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극한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배경과 상황을 처리하는 작가의 시선은 차라리 냉정한 쪽이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황 서방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하늘은 그저 먹장이요, 빗소리 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라고, 결코 흥분하지 않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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