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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태준 단편소설 『까마귀』

by 언덕에서 2023. 4. 10.

 

이태준 단편소설 『까마귀』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소설로 1936년 1월 [조광]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이태준의 단편에서 보여준 현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를테면 1930년대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만연되었던 일종의 '사(死)의 찬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마치 작가 자신인 듯 느껴지도록 서술해 가고 있다. 1930년대 우리나라 소설가들의 고민과 생활상이 엿보이며, 작가 스스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듯 보이기도 한다.

 이태준은 그 문장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작가다. 그는 소설 창작뿐 아니라 올바른 문장을 쓰는 데도 관심을 가져 <문장 강화>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단편소설 『까마귀』는 죽음의 상징으로서의 까마귀가 자아내는 음울한 분위기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젊은 여인의 사랑과 죽음이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두드러진다. 이태준의 단편소설은 대개 현실적인 견해를 밝힌다. 그러나 이 작품만은 그와 달라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이태준의 소설은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다양하고 폭넓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소설가 이태준 ( 李泰俊 . 1904 -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괴벽한 문체를 고집하는 그는 독자에게 별 인기를 얻지 못하는 작가라서 늘 궁핍한 생활을 한다. 그는 한 달에 20원 남짓한 하숙 생활도 힘겨워 궁여지책으로 친구의 시골 별장을 빌려 겨울을 나기로 한다. 그 별장 주위의 나무에는 까마귀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날 어수선한 꿈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그는 미닫이를 열다가 정원을 산책하는 젊은 여자를 발견한다. 이튿날 오후, 그는 정원의 낙엽을 긁어모아 불을 때다가 어제 본 그 여자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가 작가임을 알아본 그녀가 애독자라며 반갑게 말을 걸어온 때문이다. 몇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그는 이 여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는 폐병 요양차 이곳에 온 그녀가 삶에 대한 애착을 잃은 채 자포자기한 상태임을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병적이라고 할 만큼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며, 까마귀가 마치 그녀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여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리라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그녀의 애인이 되기로 한 후, 까마귀에 대한 그녀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까마귀를 잡아 그 뱃속에 그녀가 두려워하는 귀신이나 부적 따위가 들어 있지 않음을 직접 확인시켜줄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그는 물푸레나무로 활을 만들어 까마귀를 직접 잡는다. 그는 그녀가 오면 까마귀를 해부해 보이려고 정자지기를 시켜 죽은 까마귀를 단풍나무 가지에 걸어 매게 한다.

 그러나 날씨는 점점 추워만 가고 달포가 지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오후, 잡지사에 다녀오던 그는 개울 건너 넓은 마당에 금빛 영구차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영구차는 함박눈을 맞으며 소리 없이 떠나가고, 그날 저녁에도 까마귀들은 여전히 까악까악 울어댄다.

 

까마귀떼 , 사진 출처 : 중앙일보

 

 이 소설은 1930년대 한국사회의 지식인층에 만연되었던 일종의 '사(死)의 찬미'류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겨울 별장을 배경으로 비인기작가인 젊은 남자와 폐병 환자인 젊은 여자와의 짧은 만남을 그리면서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음습한 별장, 반복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 여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묘사를 통해, 모든 것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작가의 유미주의적 시각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태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고색창연한 별장의 시각적 묘사와 까마귀 울음소리라는 청각적 묘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감각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젊은 여인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인 정조를 우울하고 음습하게 하는 장치로서, 소설의 주제 표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젊은 여인의 사랑과 죽음이 음울한 분위기와 함께 전개되고 있다. 작품 속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어두운 식민지 시대, 죽음을 앞에 두고 좌절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는 무엇을 고민하는지, 그 작가가 만난 여인의 고민은 무엇이며,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작품이 쓰인 시대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분위기를 곰곰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이태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불우한 소학교 선생, 유랑하는 농민, 어리석은 신문 배달부, 기생, 생에 희망을 잃은 노인 등 인생의 그늘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생활인의 고통은 곧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의 어두운 시대 상황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참봉 집에 팔려 간 오몽녀가 가난과 무지 속에서도 힘겹게 사랑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오몽녀>, 돈을 벌기 위해 성병을 앓아가면서도 종로 거리로 나가 손님을 끄는 기생의 생활을 그린 <기생 산월이>, 몰락한 노인들의 허름한 복덕방에서 우울하고도 궁핍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복덕방> 등이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