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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십팔번'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3. 22.

 

'십팔번'의 어원

 

 

예문) 술을 마시면 만기 형은 그 노래를 으레 십팔번으로 불렀다.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토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쥬우하치방(十八番)’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 도도해진 기분이 깨질 만큼 야릇한 마음이 안 들는지. 일본의 에도(江戶) 전기의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가와 단쥬로오(市川團十郞) 1세(1660∼1704)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죽은, 하여간 그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가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래하여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 하는 교오겐(狂言: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쥬우하치방’이라 했다. (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長技)로 하는 에(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심어져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국어대사전>)의 뜻으로 된 것이다.

 굳이 그 열여덟 가지를 들자면(사실은 이것은 구 십팔번이고, 신 십팔번이 따로 있지만), (1) 후와(不破) (2) 나루토(鳴神) (3) 후도오(不動) (4) 스케로쿠(助六) (5) 시바라쿠 (6) 우이로오우리(外郞賣) (7) 야노네고로오(矢の根五郞) (8) 카게키요(景淸) (9) 강우(關羽) (10) 나나쓰오모테(七つ面) (11) 게다쓰(解脫) (12) 조오히키(象引) (13) 가마히게(鎌髭) (14) 오시모도시(押戾し) (15) 게누키(毛拔き) (16) 쟈야나기(蛇柳) (17) 우와나리 (18) 간진쵸오(勸進帳)인데, 제아무리 ‘십팔번’을 부른다 해도 어찌 이 ‘가부키’의 경지에야 달하겠나마는 우리는 사실 부지중에 이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술좌석에 가니까 이 ‘십팔번’의 유래를 알아서 일부러 기피하려고 그랬던지 아니면 거기서 한 번 더 비틀어 짜는 ‘말의 맛’을 내려고 해서였던지는 모르되, 다음과 같이 큰소리를 지르던 것이다.

 “야, 니 알팔 고보 있지 않냐? 그걸로 한 곡조 빼라!”

 ‘알팔’은 노름판에서 1월 솔과 8월 공산을 이르는 말이거니와, 결국 ‘1’과 ‘8’을 이르는 ‘18번’이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쓴 ‘가보’라는 말조차 사실은 일본말의 ‘가부키’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박갑천: <어원수필(語源隨筆), 1974>

 

 

'십팔번'의 어원

 

 

흔히 ‘십팔번’은 그 사람이 가장 잘하는 일 또는 특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특히 노래를 부를 때 늘 같은 것만 부르면 ‘또 십팔번’이 나온다고 한다. 이 ‘십팔번’이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본에는 가부기(歌舞伎)라는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연극이 있다. 그 중에서 ‘가부기 십팔번(歌舞技十八番)’이라는 예제(藝題)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치가와(市川)라는 가문의 비장예(秘藏藝)였다 해서 ‘십팔번’ 하게 되면 ‘가장 잘하는 노래와 춤, 또는 재담’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가부기 십팔번’의 대본은 이치가와 가문에서 오동나무로 된 상자에 넣어서 보존하고 그것을 공연하고 싶을 때에는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부기 십팔번의 대본은 이치가와 가문에만 있고, 이치가와 가문은 가부기 십팔번을 가장 잘했고 인기도 제일 좋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렇게 가부기 십팔번은 이치가와 가문에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대본인데, 형식으로서는 ‘狂言’이라고 한다. 가부기 십팔번이란 예제(藝題)가 원명이며, ‘십팔번’은 ’가부기 십팔번‘의 준말이다. ‘十八番’이란 예제가 붙은 것은 ‘狂言’의 열여덟 가지, 즉 十八番이 된다는 데서 ‘十八番’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연극ㆍ영화계에서 쓰이는 말에 ‘니마이메’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미남자(美男子) 또는 멋진 남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말들도 일본의 영화ㆍ연극계에서 쓰이던 말이다. ‘니마이메’(二枚目)를 직역하면 ‘두 장째’라고 하는 말이 될 것이다. 일본 극장의 그림 간판에 두 번째 그림에 미남배우를 그렸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겠다. 니마이메에 등장하는 인물은 언동이 부드럽고 연애 갈등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한편 ‘삼마이메’(三枚目)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이 말 역시 일본 극2장가에서 나온 말로서 세 번째 간판 그림에는 익살적인 인물을 그려놓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언어생활에 배어있는 일본 유래의 말들을 우리는 뜻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정범: <너스레별곡(1991)>

 

 


 

☞ 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십팔번을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일본의 유명한 가부키 집안에 전하여 오던 18번의 인기 연주 목록에서 온 말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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