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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동무'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3. 16.

 

'동무'의 어원

 

 

해방이 되고부터 어째 빼앗기고, 그래서 잊어가고 있다 싶은 말들이 있다. 정치적인 영향 때문이다. ‘인민’에 ‘조선’ 같은 말이, 전혀 안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달가운 마음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5천만 조선인민은…’ 하는 말은 영락없이 ‘빨갱이’가 하는 말이지, 이쪽 대한민국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로는 조금쯤은 용납되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이건 저들의 소위 ‘국호(國號)’라는 것에 들어있는 문자여서 그렇다 하더라도, ‘동무’라는 말까지가 어린이 세계 외에서는 경원당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마땅치가 않다.

 “… 저 있지 않아, 내 동무 경애 말이야. 그 애 동생이 아까 차에 치여서 병원에 갔는데…”

 초등학교 3학년 짜리 딸아이는 ‘경애’가 제 ‘동무’라고 말한다, 하기야 그들이 읽는 잡지엔 [어깨동무]라는 것이 있어서 가끔씩 사다 두기도 하지만.

 이 ‘동무’는 고등학교 때까지 슬슬 쓰이는 것도 아닌데, 대학쯤 들어가서는 어느새 '친구‘로 바뀐다;. 대학을 졸업하면 ‘동무’란 말은 아예 안 쓰니, 우리에게 있어서의 ‘동무’는 ‘어릴 때 친구를 일러 쓰는 말이 그 뜻매김으로 된다고도 할 것이다.

 지난날에는 더러 ‘동모’라 말하고 쓰는 이도 있었으며, ‘재미있다’를 ‘자미(滋味) 잇다’로 쓰는 측들은 한때 ‘동무(同務)’라는 한자를 쓰기도 했다. 이런 터에 저들이 정치적인 뜻으로 '동지'와 같이 쓰는 말을  '동무’로 쓰면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백합 같은 내 동무야…’의 이미지가 흐려져갔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광산에서 한 덕대 아래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쓰는 말이면서,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 보면, 지난날의 보부상들이 서로를 일컬어 '동무'라고 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자기와 같은 보부상인데 안면이 없었다면 수작을 거는 것이다.

 갑 : 보아 해고 동무신 듯합니다.

 을 : 아이참, 같은 동무십니다그려.

 갑 : 초인사(初人事)는 올렸습니다만, 거주를 상달치 못하였습니다.

 을 : 피차일반이옵시다. 사촌지도리(四寸之道理)에 그렇지 못할 터이온데, 금일에야 노상상봉(路上相逢)하오니, 정의(情誼)가 매루 불밀(不密)합니다.

 갑 : 어디로 노라 계십니까?

 을 : 하생(下生) 살기로는 강원감영(江原監營) 춘천이 지본(地本)이올시다.

 갑 : 좋은 곳 노라 계십니다.

 대충 이런 식으로 쓰였던 말 ‘동무’였다.

 ‘길동무’가 반드시는 ‘길벗’이어야 한다든지, ‘글동무’가 반드시는 ‘글벗’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현실적으로는 경원당하고 있는, 정치의 제물로 된 말, ‘동무’이다. 아버지에게도, 형한테도, 누님한테도, 할머니한테도 쓸 수 있다는 저들의 ‘동무’는, 역시 우리에게 언짢은 선입관을 넣어준 것인가. 아니더라도 6ㆍ25를 겪은 이라면, 그 억센 함경도 사투리의 “동무! 동무는 부르좌지의 자식으로…” 어쩌고 하던 그 여운이 개운찮게 남아 그렇다는 것인가.

 

- 박갑천 : <어원(語源)수필>(197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동무'를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