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체호프 중편소설 『육호실(六號室, Палата No.6)』

by 언덕에서 2023. 3. 7.

 

체호프 중편소설 『육호실(六號室, Палата No.6)』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중편소설로 1892년 발표되었다. 당시의 억압된 어두운 러시아 사회에서 정상과 광기의 한계를 잃어가는 지식인의 생활방식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상징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작품 속 '육호실'은 당대 러시아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정신병원은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병원임에도 비위생적인 환경이고,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급식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아무런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때 체호프는 레프 톨스토이의 사상에 기울어져 전후 7년 동안을 열렬한 톨스토이 지지자로 보냈으나, 결국 <무제(無題)> <유형지(流刑地)에서> 『6호실』 등의 작품에서 그는 톨스토이주의를 하나의 반동(反動)이라 하여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체호프의 각성이라 불리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 정신적 침체기를 벗어난 그는 활동과 고행을 스스로 찾게 되어, 1890년에는 사할린 여행을 떠났다.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 서천 마일이나 되는 대륙을 마차로 횡단하여, 죄수들의 섬인 사할린으로 건너가 3개월간이나 체류하면서 직접 조사 기록을 작성하고, 죄수들의 생활을 답사한 여행은 그를 정신적으로 새롭게 단련시켰으며, 작가로서의 커다란 전환을 이루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극 역사에 남긴 체호프의 가장 큰 공적은 ‘연극답지 않은 연극’ㆍ‘실생활 그대로의 연극’ㆍ‘정서를 주로 하는 기분극(靜劇)’을 창조한 데 있다. 체호프는 20년간의 작가 생활을 통해 실로 1천여 편에 달하는 소설과 11편의 희곡을 남겨, 양적으로도 다른 작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 서울시극단이 운영하는 시민연극교실의 9기 시민 배우들이 새달 2~3일 진짜 데뷔 무대를 앞두고 연극 6호실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크지 않은 병원 건물에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6호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병동에는 5명이 입원해 있었는데 그중에는 바보인 모이세이까와 집달관이었던 이반 드미뜨리치 그로모프가 있다. 그로모프는 수인(囚人)을 호송하고 있는 경비병을 본 날부터 강박관념에 빠져서 정신병원에 수용된 인물이다.

 병원장 라긴은 처음에는 열심히 치료하는 의사였지만 병원의 위생 상태나 재정 상황이 좋질 않아 일에 회의를 느낀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한 라긴은 일을 등한시했고, 병원에 출근하는 날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형식적으로만 출근할 뿐 얼마 일하지 않고 집으로 퇴근해 독서만 한다. 또한, 라긴은 인간은 언젠가는 죽어야 할 것이므로 덧없는 세상일에 번민하는 것보다는 자기 내부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6호실의 환자 그로모프는 전연 반대의 관점에서 그를 맹렬히 반박한다. 병실에 출입하는 병원장에 관하여 좋지 않은 소문이 나자 부원장은 이를 이용하여 라긴을 6호실에 감금한다. 결국, 라긴은 6호실에 입원하게 되고, 갇혀 지내는 정신병 환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곧 자유를 잃은 자신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고 자신을 내보내 달라며 싸움을 하게 되고 라긴은 감시인에게 얻어맞고 어이없이 죽는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 (Anton Pavlovich Chekhov. 1860 &sim; 1904)

 

 소년시대에는 가정이 몹시 가난하였으므로 체호프는 하층사회 소상인, 농부, 뱃사람들 틈에서 지냈다. 교육은 그 지방의 중학교에서 받고, 그 후 온 집안이 모스크바로 나와 그는 1879년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881년 의 대기근과 그에 이은 1892년의 콜레라 창궐 때는 자진하여 이들의 구제운동에 동분서주하였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에게 널리 세상의 실상에 통하고, 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갈 때 왜 의과(醫科)를 선택하였는가는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 선택이 나중에 그의 문학적 활동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체호프는 ‘일상적 삶’을 연결고리로 해서 무기력, 나태, 범속성, 허위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 자아의 양상을 오롯하게 표현했다. 현실에서 탈출구를 틀지 못해, 비상구를 찾지 못해 신음하는 주인공 자아의 양상을 드러내어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주인공 자아의 양상을 표출한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의사가 오히려 그 병원의 환자가 된다는 체호프 특유의 극적 구성을 통해 당대 러시아 지식인의 절망적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표현 기법을 볼 때 얼핏 보기에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 같은 인상을 주지만, 차차 작품의 핵심에 접할수록 그 기법조차도 상징적인 의미를 풍기게 된다. 모든 적극적 의욕을 잃은 정신병원장의 오직 하나의 즐거움은 독서에서 얻어지는 ‘지적(知的) 위안’이며, 또 정신병자이면서도 다분히 지성적인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그러나 무지한 주위 사람들은 이 병원장을 정신병자로 취급하여 6호실에 감금해 버린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이다.

 

 

 체호프의 문학적 생애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19세 때부터 익명으로 단편소설 등의 소품을 신문 잡지에 발표하여 그 고료(稿料)로 가계(家計)를 도우면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 시기의 고학의 원인인 가로와 영양부족은 심히 그의 건강을 상하여 그의 죽음을 빠르게 하였다고 한다. 졸업하자, 의학사(醫學士)의 칭호를 얻었으나, 개업하지 않고, 1년 동안 어느 병원에 의사로 근무하고는 작가로서 문학에 정진하기 위해 두 번 다시 의사노릇을 하지 않았다. 후일에 시골에 틀어박혔을 무렵 병에 시달리고 있는 농민들을 차마 보기가 딱해서 보아준 일은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의사 라긴(Рагин)은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다. 환자를 대하는 라긴의 태도는 여느 의사들과는 달랐다.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라긴은 이 병원의 환자가 되고 만다. 이는 진정한 지식인들이 소외당하고 절망하게 되는 당대 러시아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작품 제목인 ‘육호실’은 러시아어에서 보통 명사가 되어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주인공인 그 정신병원장의 모습에서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숙명적인 인간 고독의 한 원형을 찾았다. 그리하여 체호프에 대한 새로운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김교선: ‘현대적 배리의식의 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