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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무라카미 류 장편소설 『69』

by 언덕에서 2023. 2. 23.

 

무라카미 류 장편소설 『69』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むらかみ りゅう,村上 龍, 1952~)의 장편소설로 1984년 발간되었다. 「69」라는 제목은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9년에 겪은 일을 담은 데서 기인한다. 무라카미 류는 작품 후기에서 ‘이 책은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일부 기록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의 노래가 유행하고,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었고, 파리에서는 드골 정권이 물러났고,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던 때’가 바로 1969년이다. 작가의 고향 나가사키현 사세보시는 미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입항하면서 미국문화에 빠르게 잠식당한 곳이다.

 1969년은 1년 넘게 계속된 격렬한 학생운동으로 인해 도쿄대의 입시가 중지된 해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으나 6·25 전쟁의 특수로 경제가 회복된 일본은 이념 대립으로 사회가 몹시 혼란스러웠다. 실제, 무라카미 류도 1969년 고등학교 옥상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데모를 하여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 작품에는 작가가 겪은 시대적 배경과 경험, 그 시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적절히 인용된 팝송과 책, 시대에 대한 비판에서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식스티나인 69’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2005년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됐다.

 

영화 [69], 200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물고기자리에 O형, 외동아들에 할머니 손에 자란 고등학교 3년생이다. 통칭 ‘겐’이라 불리는 '나'는 친구인 아다마, 이와세 각자의 이름을 딴 ‘이야야’를 조직하고, 그들과 함께 영화, 연극, 록과 시가 있는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이야야’의 리더인 나는 삶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다. 랭보의 시 한 수로 얌전한 친구 아다마를 동지로 만들 정도로 청산유수에, 보지도 않은 영화와 문학 이야기를 줄줄 꿰고 있으며 록 음악과 혁명 전사와 시인을 숭배한다. 나는 페스티벌의 하나로 영화 제작을 시작하고, 학교에서 가장 예쁜 소녀를 주연으로 하는 데 성공한다.

 나는 그녀가 정치적인 행동에 흥미가 있었음을 알고 학교의 바리케이드 봉쇄를 결심하고, 학내의 정치파와 접촉해 바리케이드 봉쇄의 의미와 효과를 역설하고 지지를 얻는다. 결국, 일행은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바리케이드 봉쇄에 성공한다. 이러한 거사는 야자키와 아다마의 지휘 아래 착착 진행되었고 종업식 전날 밤에 친구들은 차질없이 옥상에 바리케이드를 친 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플래카드를 건다. 감쪽같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가담한 친구들이 모두 드러나고, 주동자인 야자키와 아다마는 (무기 자택) 근신 처분을 받는다. 119일만에야 근신이 풀려 꾸준히 집에 찾아온 담임과 장미꽃과 편지를 보내준 마츠이 카즈코가 맞아주는 학교로 돌아간다.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 학교에서 야자키는 기어코 페스티벌을 다시 기획하고, 결국 멋지게 해낸다. 하지만 1년 뒤, ‘일방적인 변심’을 한 마츠이 카즈코는 연상의 남자 친구에게 가버린다.

 

영화 [69], 2004

 

 소설 속의 주인공은 늘 그렇듯 좌충우돌하면서 위험지대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야자 키겐 일정은 공부를 잘하는 록밴드 드럼 주자이면서 저항적인 내용을 담은 신문발행과 연극 공연 시도를 한 북고(北高)의 유명인사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첫 번째 종합시험에서 최악의 성적을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공부가 싫은’ 주인공은 페스티벌 준비에 열을 올린다. 북고 여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의 여학생들이 다양한 전시회, 연극과 영화, 록밴드를 보러 몰려오길 기원한다.

 겐이 주도한 학내 바리케이드와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선동적인 구호는, 얼핏 이들을 좌익에 물든 학생들로 보이게 하나 사실과 다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말한 것처럼 즐겁게 살려는 그들의 ‘욕망’ 자체가 혁명이었을 뿐이다.

 소설 전체를 가득 채우는 삶의 에너지는 바로 그들의 욕망에서 분출된 것이었다.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그로 인해 흥분하고 좌절하며, 한 여학생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엄청난 사건들을 꾸민 겐. 결국, 무기정학까지 감수해야 했던 이 열혈 고교생의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 또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일 뿐이다.

 『69』는 랠프 F. 매카시에 의해 영역된 미국판이 출간되었을 때 미국에서  '제2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주인공 겐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열여섯 살 홀든 콜필드처럼 세상의 허위의식과 무신경함, 약육강식의 비정한 현실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십 대다. 자신들을 매몰차게 내모는 학교와 사회, 기성세대의 권위에 독설과 야유를 서슴지 않는다. 착하지도 않고, 거짓말도 잘하지만 둘 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리고 세상에 삐딱하게 맞서지만 나름대로 삶의 홍역을 앓고 난 뒤 희망을 찾아낸다. 홀든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순수한 아이들의 구원이 되려 했다면, 겐은 지겨운 인생을 축제처럼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바로 무라카미 류의 과거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자전적 성장소설이 상상만으로 쓴 소설보다 더욱 진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장편소설 「69」는 현재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상황을 대입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우선 놀랍다. 획일화된 학교 문화, 입시 압박, 복잡한 정세가 얽혀 있는 상황이 너무도 닮았다. 무라카미 류는 후기에서 ‘나는 고교 시절에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인 선생을 제외하고. 그들은 정말 소중한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 가버렸다’라며 교사들을 ‘지겨움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입시가 치열하기로 유명한 한국과 일본의 고교생들이 ‘페스티벌’을 즐기기 힘든 건 사실이다. 무라카미 류는 ‘유일한 복수는 그들보다도 즐겁게 사는 것’이라며 ‘지겨운 사람들에게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일평생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든 사회든 지겨운 사람들은 있고, 바리케이드 봉쇄와 페스티벌이 고교생의 권리는 아니다. 배움의 시기에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좋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분야를 찾아 미래를 잘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지겨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장편소설 『69』의 청춘들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후진 세상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한다. 입시에 얽매인 교육 현실, 권위적인 학교, 기성세대의 강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겐과 아다마, 이와세의 일탈은 우리의 성장 안에도 담겨 있던 모습이다. 한 손엔 비틀스의 음반을, 다른 한 손엔 오에 겐자부로를 집어 든 소년들이 펼치는 한바탕 폭풍 같은 학원의 추억은 기개에 찬 청춘의 엑스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