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리데 옐리네크 장편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Die Klavierspielerin)』
오스트리아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 1946~ )의 장편소설로 1983년 발표되었다. 2001년, [칸 영화제] 사상 최초로 그랑프리와 남녀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영화 <피아니스트>(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원작소설이다(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와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유능한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에리카 앞에 금발의 공대생 클레메가 나타난다. 아름다운 제자를 사랑하는 여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충격적인 영상으로 그려졌으며, 국내 개봉 당시, 화장실 바닥에 앉아 키스하는 남녀의 사진이 실린 영화 포스터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장편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는 작가의 급진 페미니스트적 시각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 여자 피아니스트 에리카는 자신을 정신적으로 억압하고 결속하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성적 장애인으로 지내온 에리카가 제자와 비틀린 애정행각을 벌이는 내용으로, 모녀 및 남녀 관계의 폭력성을 격렬한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옐리네크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주인공 에리카 코후트처럼 옐리네크도 어린 시절 자신을 탁월한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켰던 어머니를 증오했고,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으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도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고 독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옐리네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종속적이고 비정상적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동정 혹은 서글픔 같은 감정은 완전히 배제하고, 섬뜩할 만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대부분의 여성 운동가들과 달리, 여성 자신의 우매함이 가부장적 사회의 존립을 강화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견해에 따라 무자비하게 보일 수 있는 여성 의식 때문에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반 페미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가차 없는 현실 폭로, 노골적인 성묘사 등으로 격찬과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200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응이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데 실패하고 음악원 피아노 선생으로 남게 된 에리카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내 귀여운 회오리바람’이라고 불린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은 남편(남근)의 부재를 채워주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이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고, 딸에게 ‘유일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것을 역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자신과 딸 사이에는 남자는 물론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에리카가 옷, 구두, 장신구 따위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딸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딸이 오로지 ‘자신만의 에리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머니의 통제는 어려서부터 에리카에게 남들이 가진 물건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것은 곧 자신이 갖지 못한 물건들을 파괴하고 그 소유자들을 학대하려는 사디즘 성향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로 인해 에리카는 사디즘뿐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즘 성향도 갖게 된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녀는 자해하는 권력자와 그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하며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런 에리카에게, 어느 날 제자인 대학생 클레머가 남성으로서 접근해오기 시작한다.
에리카는 클레머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하면서도 클레머를 유혹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질투하며 유리를 부숴 그 아가씨의 코트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는다. 피를 흘리는 젊은 여자를 보며 묘한 쾌감을 얻는다. 에리카는 장문의 편지를 클레머에게 쓴다. 그 편지의 내용은 자신을 강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우아한 상상과 전혀 다른 여자인 에리카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던 클레머는 마침내 폭력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에리카가 원한 것은 무지막지한 폭력이 아니다.
클레머는 에리카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 단언하고 이후로는 찾아오지 않는다. 성 정체성 혼란이 온 에리카는 결국 돌아갈 곳이 어머니 곁인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간다.
옐리네크는 장편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로 천재성과 작가적 실험정신으로 격찬을 받는 동시에 도전적 문제 제기와 노골적 성애 묘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자전적 성격이 짙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남편의 빈자리를 딸이 대신해줄 것을 기대하며 딸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어머니와, 그에 억눌려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보이며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하는 딸 에리카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는 모녀의 비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통해 어머니와 딸 혹은 여성 사이에도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옐리네크는 현대 독일 문학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천재성과 작가적 실험정신 및 문제 의식으로 격찬을 받는 동시에 도전적 문제 제기, 언어유희에서 비롯되는 작품의 난해성, 그리고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애 묘사 등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제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의 거리를 내포하고 있는 옐리네크의 작품은 독일 대학의 문학 강의에서 매우 빈번하게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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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리네크는 창작 초기부터 페미니즘을 자기 문학의 근간으로 삼았고, 소설 『피아노를 치는 여자』, <욕망>, 희곡 <노라가 남편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클라라 S.> 등의 대표작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여성 억압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한 옐리네크의 문제의식은 오스트리아의 나치 역사 청산 문제, 유럽 정치권의 극우화 경향,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스포츠 행사에서 나타나는 국가주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대 등 이 시대의 정치 사회 문제로 범위를 넓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민감한 이슈들을 꾸준히 다루며 목소리를 내왔다.
옐리네크의 이런 비판적 참여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주제적 무게와 깊이의 면에서 전혀 녹록지 않은 그의 문학적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4년 스웨덴 한림원이 옐리네크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한 것도 거의 음악적인 경지에 가깝게 언어를 구사하는 탁월한 능력과 더불어 유럽의 ‘비판적 지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이 지향하는 사회적 참여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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