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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

by 언덕에서 2023. 3. 9.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의 장편소설로 1991년 발표되었다.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그 서술의 사실성과 선정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서술자인 ‘나’가 외국 외교관인 연하 유부남과 나눴던 밀회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지론은 자신의 불륜일 때조차 예외가 없었다. 상대 남자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지하철역을 놓치고, 정사의 흔적을 간직하기 위해 샤워마저 미루는 일화까지 소설로써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치정(癡情)’이라 부른다.

 이 작품은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 감청(監聽) 소설로,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을 겪은 모든 사람의 속내를 대변한다. 작가는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등을 수상하고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다. 이 작품은 2020년에 영화화되어 제73회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프랑스. 불혹을 넘긴 여자가 주인공이다. 다른 중년 여성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장성한 아들을 둔 어머니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대학교수에 유명 작가이고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와 불륜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내용만 글로 쓴다는 ‘체험적 글쓰기’를 실천하는 여류작가 아니 에르노가 그녀이다.

 지난 9월 이후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말로 소설은 시작된다. 여자가 상상하고 실행하는 일 모두에는 그 남자가 연관되어 있다. 그녀가 그 남자를 생각할 때는 행복해져 그 외의 모든 일이란 의미를 잃고 만다. 남자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때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일 정도로 다른 일이란 의미가 없다. 만나봤자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란 얼마 되지 않지만, 그와의 시간이 삶의 의미 있는 유일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남자는 늘 불쑥 전화하고 찾아온다. 이미 결혼을 하여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그는 아내에게 의심받지 않을 시간에만 그녀를 만나러 온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므로 그녀는 늘 그의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노심초사 기다릴 뿐이다. 그가 겨우 시간을 내어 찾아오면 그녀는 시계를 풀어놓고 보지 않지만 남자는 자신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지 않는다. 남자와의 시간을 생활의 최우선으로 두는 여자는 아들들에게도 미리 남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해 둔다. 언제 남자가 올지 모르므로. 엄마의 연애를 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기는 하지만 아들들의 판단보다는 그 남자와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욕망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옳고 그름 따위는 없다. 단지 욕망과 열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랑스에서 볼일이 끝난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고 버림받은 느낌 속에 여자는 한동안 상실감에 휩싸인다. 차라리 강도가 집에 들어와 자기를 찔러 죽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흘러가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를 생각하는 일도 조금씩 줄어든다. 단순한 열정에 휩싸이던 꿈과 같은 시간의 환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 때 술에 취한 남자가 한 번 더 그녀를 찾아온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서른여덟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녀가 느꼈던 예전의 그 남자는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느낀다. 맹목적이고 육체적인 열정에 휩싸였던 에르노의 시간은 막을 내리고 인생의 한 단락으로 장식된다.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 사진 출처 : Daum영화

 

 이 소설은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열어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고백이 등장한다.

 1991년 아니 에르노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을 발표했다. 유명 작가이자 문학 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그 서술의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 그해 최고의 인기 화제작이 되었다. 6년 뒤, 『단순한 열정』을 계기로 연인 사이가 된 서른세 살 연하의 필립 빌랭이 자신의 첫 작품으로 『단순한 열정』의 서술 방식을 빌려 그녀와의 사랑을 다룬 <포옹>을 발표하게 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장편소설 『단순한 열정』은 글쓰기의 소재와 방식, 기억과 기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의 연장 선상에 위치하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청(監聽)소설에 속한다.

 

 

 아니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 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 왔는데,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지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나’를 화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개인으로, 이야기 자체로, 분석의 대상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여 글쓰기가 생산한 진실을 마주 보는 방편으로 삼았다.

 아니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다. 사회·역사·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해 왔다. 아니 에르노는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는 기록을 세웠다. 선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의 작품에 대해 말하려면 그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노년기에 한 생애를 총체적으로 회고하는 한 편의 자서전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마다 과거가 현재의 글이 되고 그 글이 다시 미래의 씨가 되어 삶을 규정하는 현재 진행형의 자서전인 까닭이다.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