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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한강 중편소설 『채식주의자』

by 언덕에서 2023. 1. 30.

 

한강 중편소설 『채식주의자』

 

 

한강(韓江, 1970 ~ )의 중편소설로 2007년 10월 30일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1월 1일에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영문판으로도 출간되었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16일에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였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이 자신의 모든 존재를 지워버린 영혜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뤘다. 2009년, 임우성에 의하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소설집 『채식주의자』는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등 세 개의 중편소설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이다. 작가가 2002년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쓴 이 세 편의 중편소설은 따로 있을 때는 일견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된 장편소설이 되었다.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켜 아름다움의 미학에 접근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아하고 시심 어린 문체와 밀도 있는 구성력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을 고스란히 반영시켜 놓았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소설가 한강이 발표해 온 작품에 등장하였던 욕망, 식물성, 죽음 등 인간 본연의 문제들을 한 편에 집약해 놓은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소설 속의 ‘영혜'는 작가가 10년 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희망 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단편 속의 주인공과 어린 시절 당한 폭력과 육식에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는 연관 고리를 갖고 있다.

 

영화 <채식주의자>200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채식주의자

 영혜는 원래 아무거나 잘 먹는 여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 때문에 채식을 하게 된다. 남편이 다그쳐도 보고, 아버지가 뺨을 때리면서 억지로 먹여보기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영혜는 점점 야위어가고 사회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도 힘들어진다.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에 반항하여 손목을 긋는 자살 시도까지도 하게 된다. 남편은 그녀를 수긍하기가 어렵다. 결국 영혜에게 남은 것은 이혼이다.

 2. 몽고반점

 그렇게 해서 영혜는 독신으로 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동생 영혜와 함께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경험해 온 언니는 영혜를 돌보는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화가인 형부는 영혜를 성적인 욕망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녀를 탐하기 위해 예술 '작업'을 빌미로 불러들인다. 영혜의 나체에 꽃을 그린다. 욕망을 가졌던 그는 욕망조차도 잊는다. 자신의 나체에도 꽃을 그린 형부는 대단원을 아우르기 위해 영혜와 섹스를 한다. 그 장면은 언니에게 현장이 발각된다.

 3. 나무 불꽃

 언니의 남편은 정신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수감되었고, 언니의 동생인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영혜의 채식은 계속되다 못해, 절식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영혜는 이제 그녀 자신이 나무가 되어간다고 했다. 햇볕을 쬐기 위해 옷을 벗고, 비 오는 날 나무처럼 오도카니 서있기도 한다. 밥은 먹지 않아 점점 야위어 간다. 억지로 동맥에 혈당주사를 놓아도 뽑고 토해버리기 일쑤고,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척추에 혈당 주사를 놓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 가는 길로 마무리된다. 영혜는, 언니에게 '왜 죽으면 안 되냐'라고 묻는다. 언니는 어쩌면 이게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영화 <채식주의자>200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작가는 자신의 이 작품 『채식주의자』에 대해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여성의 이야기”라면서 “이때의 인간은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을 말한다”라고 했다.

 세 편의 중편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영혜와 대립되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욕망과 몽고반점을 모티브로 한 관능적 이미지와 색채로 표현되는 예술에 집착하는 형부, 삶에 내부가 말라가면서도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언니가 그것이다. 이 대립에서 식물로 대표되는, 인간이 잃어버린 태고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과 어쩔 수 없이 욕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동물적인 욕망이 함께 쏟아진다.

 <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육체에 보디 페인팅으로 꽃을 담으면서 욕망이 배제된 식물을 지닌 육체가 되고, 그 식물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지독히 동물적인 욕망의 행위로 태고의 순수함으로 돌아간다.

 

 

 삶에 치이는 순간순간,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에 가까운 자연으로의 회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지독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삶에 집착하고 조용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영혜는 그 극단에 서 있고, 작품을 읽는 독자는 범인으로 그 중간을 헤맨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은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완결적이며,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폭을 다시 확장하고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완결작을 만들어 간다.

 맨부커상 선정 위원회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