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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 단편소설 『동해(童骸)』

by 언덕에서 2023. 2. 1.

 

이상 단편소설 『동해(童骸)』

 


이상(李箱·김해경. 1910∼1937)의 단편소설로 1937년 2월 [조광] 지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 '동해'는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동해(童孩)'에서 '어린아이의 해골'을 의미하는 '동해(童骸)'로 환치했다고 여러 연구자가 해석하고 있다. 이상 전문가인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는 '동정(童貞)의 형해(形骸)'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난해하기 짝이 없어서 자칫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는 이 작품에는 단락마다 작은 제목들이 있는바, ‘촉각’, ‘패배 시작’, ‘걸인 반대’, ‘주마가편’, ‘명시’, ‘TEXT’, ‘전질’ 등이다. 소설의 첫 단락인 ‘촉각’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작가가 한 여인에 대한 심정을 관념이나 감정이 아니라 감각, 특히 촉각, 시각, 미각 등과 자신만의 다양한 기호와 문자로 서술한다는 점이다. ‘텍스트’ 단락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이 소설이 이른바 ‘지각된 연애’를 내용으로 한다는 점이며, 구체적으로 그것은 ‘임’이라는 불리는 한 여성이 ‘나’와 친구 ‘윤’ 사이에서 벌이는 곡예에 가까운 삼각관계의 애정 편력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소설적 책략으로는 ‘자객 이미지’, '새로운 의미 생산의 방식', '순수 관념의 표상' 등을 드는 연구자도 있다. 특히 아이를 의미하는 ‘동해(童孩)’에서 아이의 해골을 의미하는 ‘동해(童骸)’로 환치하는 특이한 의미의 표현 방식으로 평가된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199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가방을 싸 들고 ‘나’를 찾아온 ‘임(姙)’이라는 여인이 있다. ‘임’은 ‘나’의 친구인 ‘윤(尹)’이라는 사내와 동거하던 여인이다. 세 사람은 서로 이미 잘 알고 지내던 관계이다.
 나는 윤에게 버림받고 나를 찾아온 임(윤의 전 부인이었던)과 결혼했다. 그러나 나는 윤과 임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며, 윤 말고도 있었을 다른 남자들에 관해서도 영 신경이 쓰인다.
 나는 임을 데리고 윤을 찾아가지만, 임을 사이에 둔 윤과의 논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한다. 결국, 윤과 임이 함께 극장으로 가버리고 나는 T를 만나러 간다.

 T를 만난 '나'는 그와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며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자살과 살인과 도망이라는 선택 가운데 절망한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1995

 

 단편소설 『동해』는 1937년 2월 [조광] 지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로 '촉각(觸角), 패배 시작, 걸인 반대(乞人反對), 명시(明示), TEXT, 전질(顚跌)' 등의 소단락으로 구분 서술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임'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소설 속의 임은 작가 이상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변동림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임'의 자유분방한 남성 편력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임'과 '윤'의 관계, 즉 ‘임’의 부정이 주인공이 복수,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심각하게 그의 자의식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패러독스(역설)에 의한 복수에 착수'한다. '임'과 '윤' 둘만 영화를 보러 가게 하고, '나'는 'T'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며 죽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실제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화자의 내면에 대한 묘사를 번갈아 사용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화자의 내면은 특히 '자살'과 관계되어 있다. T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그는 시시각각으로 자살을 꿈꾼다. 그는 '피고는 일조에 인생을 낭비하였느니라. 하루 피고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이 건곤의 경상비를 구태여 등귀시키는 것이어늘'이라는 자결 판결문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주인공이 인생을 낭비하였다는 한탄은 이 작품에 곧이어 발표된 단편소설 〈종생기〉에서 보다 뼈저린 자학으로 나타난다. '임재는 자객입니까요?'라는 서두 부분의 농담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자살 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이 결말 부분에서 밝혀진다. T가 손에 쥐여 준 칼을 두고 주인공은 윤을 찔러야 하나, 임을 찔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아하 그럼 자살을 권하는 모양이로군'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기다리는 자객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며, 인생을 낭비해 버린 그에게는 자살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전략) 이상의 시와 소설은 당대 독자층에 하나의 문단의 스캔들처럼 파문을 던졌다. 그러나 당시 현실의 모순에 대응해 직접적인 변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문학적 상상력은 그 전위성과 감수성을 이해하고 인정한 몇몇 지인에게만 부분적으로 수긍됐을 뿐이다. 그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식민지 근대성 초월 의지는 근래에 와서야 적극적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문학에 담긴 기호적 표현의 모호성, 통사적 규범을 넘어서는 언어의 비문법적 결합과 의미 해체, 의식의 흐름에 대응하는 단절적인 산문적 진술 등이 드러내는 특이한 긴장은 아직도 제대로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세기의 천재라는 찬사에도 이상의 문학과 내면세계는 그 천재성에 가려져 상당 부분 오해되고 있다. (권영민 2010-04-20 주간동아 733호 70~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