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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 중편소설 『십이월 십이 일』

by 언덕에서 2023. 2. 7.

 

이상 중편소설 『십이월 십이 일』

 


이상(李箱. 김해경 1910~1937)이 창작한 유일한 중편소설로 1930년 [조선] 지에 발표되었다. 이상이 국문으로 창작한 첫 장편소설로 알려져 있으나, 분량상 중편소설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공포와 불안의 영원한 도주를 멈출 수 없는 추방된 자의 불행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로 작품 구석구석에 불안과 우울, 공포의 분위기가 삽입되어 있다.
 전반부는 주인공 X가 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삼인칭 ‘그’의 고백적 서술이 이어진다. 이상의 다른 작품들처럼 난해하며, 작가의 자서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실제 내용은 작가의 행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순수한 창작의 소산이라는 연구결과 역시 상당하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이 허구이지만 작중 부분적인 내용은 작가가 살았던 삶의 일부분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또한 이상이 공포소설을 의도하여 이 작품의 창작을 시도했다면 성공한 작품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이 작품은 문체와 문장을 살펴보면 과연 직업 소설가의 작품이 맞을까 할 정도로 문장이 엉성하고 조잡하다. 스토리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플롯이 통일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중 현실과 작가의 상상이 무분별하게 몽타주 기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상의 소설은 현실의 특정 부분을 반영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실의 어떤 측면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이야기로서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이상이 그의 소설에서 그려 내고자 하는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상이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시절 그린 자화상. 비대칭 구조의 얼굴에 안구가 없는 한쪽 눈, 눈밑에 흐른 눈물 자국, 함몰된 정수리 등이 당대 첨단 예술사조인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평이지만 불안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X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타지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동생 T에게 모친의 봉양을 부탁했으나 동생 역시 적빈에 시달리던 터라 한마디로 거절당한다. 살 길이 막연한 X는 모친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 그는 죽마고우 M에게 편지로 소식을 알린다. 모친이 장거리 배 이동으로 도착하자마자 사망한 후 그는 고베의 조선소에서 노동일을 하다가 나고야의 식당에 요리사로 취직한다. 이후 사고로 절뚝발이가 된 그는 치료를 위해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의 동생 T에게는 ‘업’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똑똑하여 T의 둘도 없는 자랑이다. 그러나 T가 애지중지 아이를 키운 결과, 업은 교만하고 방종한 성격으로 자란다.

 십이월 십이일.
 업이 자라는 동안 애착을 갖고 학비를 지원했던 의사 M은 업의 형편없는 사람 됨됨이에 실망하여 음악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그를 지원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한편, 일본에서 X는 그가 머무는 여관 주인과 절친한 관계가 되는데, 혼자 살던 여관 주인이 죽자 그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아 조선 땅으로 돌아온다. 그는 동생 T와 함께 살며 가난한 동생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려 하지만 그에 반감을 갖는 동생의 태도에 고독감을 느낀다. 그는 T의 집을 나와 M과 함께 병원을 개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업이 찾아와 그가 일하는 병원의 간호부 C와 해수욕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업은 다섯 살 연상의 간호부 C와 애인 관계였다.
 주인공 X는 업과 간호부 C의 관계에 질투심을 느끼며, 업의 방종을 징계한다는 명목으로 해수욕 도구들을 불태워 버린다. 업은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화병이 들어 죽는다. 간호부 C는 병원일을 그만둔 후, 업과의 사이에서 생긴 갓난아이를 X에게 맡긴다.
 T는 아들이 죽자 복수심에 불타 M과 X가 공동 소유하는 집과 병원에 불을 지른다. X는 불길 속에서 갓난아이를 살려내나 자신은 온몸에 화상을 입는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X는 우연히 근처 철로를 지나던 C가 탄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갓난아이는 키워 줄 사람을 잃은 채 애처롭게 운다. 그 날짜는 12월 1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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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중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띈다. 얼핏 주인공처럼 보이는 X의 조카 ‘업’이라는 문제의 인물이다. 이상의 삶과 작중 인물 '업'을 비교해 볼 때 '업'은 작가 자신을 은유한 인물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업의 자살은 이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1910년 9월 23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김영창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상은 세 살 때 백부 김연필의 집으로 옮겨가 조부모의 손에 의해 자라났다. 작중 건방지고 방종한 삶을 영위한 ‘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정상적으로 부모 품에서 자라지 못하고 여러 여인과 문란하게 살다 결국 폐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이상 자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인다. 십이월 십이일. 일월 일일, 이월 이일처럼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날이란 의미는 없지만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다.
 작중 주인공 X는 십이월 십이일이라는 특정한 날의 반복을 통해 기묘한 삶의 ‘운명’을 감지해 낸다. 그의 인생은 여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뜻대로 잘 풀리는가 하면, 바닥을 뚫는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인생에 회의를 느껴 방황도 해 보고 찾아온 행운으로 의기투합하여 번듯한 병원 하나를 차리기도 한다. 고국을 떠난 날도 십이월 십이일, 큰돈을 가지고 고향을 찾아온 날도 십이월 십이일이다.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주인공 X 자신이 자살하는 날도 십이월 십이일이다.
 혹자는 ‘얼마나 기묘한 운명인가’라고 탄식하겠지만 개연성이 없는 스토리텔링은 작품의 완결성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상의 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구석구석 서사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난해한 문장이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독자가 읽어내는 소설의 흐름을 막는다.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길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 본문에서
 1930년 나이 스무 살의 청년 이상에서 나온 이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상이 말하는 "무서운 기록"이 바로 소설에 해당한다. “최후의 칼”을 들고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의 싸움에서 얻어낸 것이 소설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소설이야말로 이상에는 운명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문학자 권영민)
 이상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성역화되기보다는 의식과 사고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게 보통인데 이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작가가 작중 인물 행동의 성격이나 행동의 방향을 직접 설명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1910년대 이후 이광수와 김동인 부류의 작가군들이 벗어던진 신소설의 구태의연한 문장과 전개 방식을 유지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괴기스러운 분위기와 전개를 시종일관 유지하여 독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상의 소설은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현실감을 제거한 대신에 주관성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지표를 핵심으로 내세운다. 이 주관성에 근거하여 미궁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소한 일들 속에서 형이상학적 사유도 가능해지며, 본능적인 충동의 단순성도 암시된다. 나머지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