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인 카르두치(Giosue Carducci.1835∼1907)
190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시인ㆍ고전문학자 카르두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州) 발디카스텔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이며 애국적인 정치가였는데, 아버지를 따라 볼로냐(1839∼1849)ㆍ피렌체(1849∼1850) 등으로 옮겨 살았다. 스코로피학교에서 신부(神父) G.바르소티니에게 배우고, G.T.가르가니 및 E.넨초니와 교유(交遊)하였으며, 이어서 1853∼1855년 피사의 사범대학 문학부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고전문학을 애호하여 당시 전성을 자랑하던 낭만주의 문학을 반대하고 가르가니, 토제티 등과 함께 낭만파인 브라치를 상대로 논쟁을 벌였다. 1856∼1857년 성미니아트의 중학교 교사로 있었고, 1857년 동생의 자살, 이듬해 부친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고교 교사로 있던 중 문교장관의 초청으로 볼로냐대학의 이탈리아 문학 교수가 되면서 많은 저술을 하게 되었다(1860∼1904). 1890년 상원의원에 임명되었고, 1899년부터 반신불수로 고생하다가 교수직을 사임하였고, 19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그 이듬해 볼로냐에서 죽었다.
그는 국어의 순화, 국민 문학의 제창, 고전연구 등으로 이탈리아 근대문학의 정통적 방향을 잡았으며, 헬레니즘과 소박한 휴머니즘 정신에 따라, 순수한 자연과 인간의 생명감, 애국적 정열 등을 추구하고, 그리스ㆍ로마의 운율(韻律)을 현대 이탈리아 율격(律格)에 되살려 장중하면서도 명랑하고 전아(典雅)한 고전적 이상주의 시풍을 창조하였다.
1857년 <청춘시집>을 발간한 후부터 당시의 낭만주의 시를 부활, 드디어 새로운 고전주의의 대표가 되어 당시의 시단에 군림하였다.
저서에는 <청춘시집>(1857) <악마송가(惡魔頌歌)>(1863) 레비아 그라비아>(1861∼1871) <노래집>(1871) <새 노래집>(1873) <야만풍의 소시(小詩)>(1877) <신가집(新歌集)>(1861∼1887) <의고시집(擬古詩集)>(3권, 1877∼188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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