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김유정 단편소설 『만무방』

by 언덕에서 2023. 3. 6.

 

김유정 단편소설 『만무방』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 소설로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다.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의미이다.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든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하는 삶을 중심으로 하되,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 행태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추수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동생 응오)이 자기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은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 준다.

 왜 '만무방'과 같은 사람들이 생겨났을까? 시대가 만들었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식이 있었던 성실한 농군이었으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야반도주했다. 김유정의 <동백꽃><봄봄> 등의 작품들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들을 해학적이고도 분위기 있는 필치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만무방』은 시대 현실을 직시한 김유정이 농촌의 피폐함을 고발한 작품으로써 현실 인식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破寂 : 심심함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함)을 나왔다. 전과자요 만무방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유랑인의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맘껏 먹어 본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먹는다.

  숲 속을 빠져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가 있었던 성실한 농군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구도 않고 반발한다. 웅칠은 오늘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응오의 논으로 도둑을 잡으러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 속에서 놀음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으로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깨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이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소설가 김유정 ( 金裕貞 , 1908 -1937)

 

 이 작품은 식민지 현실에 대해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인 현실 중시의 피상적인 농민 문학이 아닌 당시 식민지 농촌에 가해지는 제도의 가혹함과 그 피해의 관계를 밝히는 한편, 제도가 일으키고 있는 순진한 인간의 기본적인 반항과 불가피한 생존 양태의 문제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같은 시대에 많은 작품이 지니고 있던 계급투쟁적인 저항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반어로써 처리하여 식민지하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풍자적, 해학적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절망감보다는 웃음을 유발하는 작중 인물인 응칠이를 내세워 형상화한 이러한 토착적 유머는 고전 소설에서도 흔히 보이는 특성으로, 절망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민중 특유의 건강성을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 응칠이를 중심으로 농촌 사회의 제도의 불합리성과 모순, 폭력성을 세밀하게 그려 보여 줌으로써 현실의 절박한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현실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민중의 건강함도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다.

 

 

 『만무방』은 응칠과 응오 형제가 궁핍한 삶 가운데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야기이다. 전과 4범의 건달인 형 응칠은 절도에도 능한 노름꾼이며 사회적 윤리의 기준에 위배되는 만무방이다. 이와는 달리, 동생 응오는 모범적인 농군임에도 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뿐이라는 절망감으로 벼 수확을 포기한다.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의외로 동생인 응오였다는 아이러니, 일 년 농사를 짓고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뿐이라는 인식은 당시 소작농들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응오가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에 놓이는 데 반하여 형 응칠은 반사회적인 인물이며 적극적 행동형이다. 모범적인 농군을 반사회적인 인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사는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같은 응칠의 행위가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왜곡된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인물들의 현실 개선의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반사회적인 수단-도박, 절도 등에 의해 현실의 극복을 시도하지만 빈번히 좌절되고 만다. 작가가 제시한 인물들의 행위가 타락한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음은 타락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1930년대의 현실 상황을 반어적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김유정에게 있어 수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구조를 인식하고 왜곡된 사회 현실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당시 소작인들의 궁핍 상을 반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준다. 주인공의 대범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반사회적일수록, 그것이 농민 계층의 꿈이 되고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아이러니이다. 이는 30년대와 같은 모순된 사회에서 응칠과 같은 반사회적인 행동 양식이야말로 당대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씁쓰레한 메시지를 환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