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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채만식 단편소설 『도야지』

by 언덕에서 2023. 2. 22.

 

채만식 단편소설 『도야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단편소설로 1948년 6월 22일 탈고하여 1948년 10월 [문장] 속간 호 <통권 27호>에 실은 작품이다. 일제의 하수인이었다던 이가 해방 후 애국애족을 외치며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모습을 그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적 현실을 묘사한 작품으로 채만식의 사회 풍자적인 작풍이 해학적으로 묘사된 수작이다.

 1945년 봄 일제의 탄압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온 채만식은 집필보다는 마작(麻雀) 등 잡기에 손을 대며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다가 해방을 맞는다. 1946년 이리 고현에 내려와 있던 중형 준식의 집으로 옮겨 있다가 폐결핵 악화로 갈산동에 셋집을 얻어 이사, 비참한 생활을 계속했으나, 창작 의욕은 오히려 왕성해져 사과 궤짝을 책상 대용으로 쓰는 어려움 속에서도 창작에 전념, 장편 <아름다운 새벽> 등의 작품을 썼다. 단편 「도야지」는 이즈음에 만들어졌다. 평생 자기 집 갖기를 원했던 그는 단편집 <잘난 사람들>의 인세와 <탁류> 3판의 인세 등을 모아 60원짜리 양기와집을 마련했으나, 이 집도 치료비 충당을 위해 팔고, 낡은 초옥(草屋)으로 옮겨 1950년 6월 11일, 48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단편소설 『도야지』 속에서는 인물 유형이 두 가지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첫 번째 유형은 속물적인 인간상이다. 소설 속 중심인물인 문영환과 그 주변에 얽힌 황종택, 교회 전도부인들, 애국청년단원들, 정치 테러 분자이자 모리배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다음 세대를 지칭하는 순수한 인물들이다. 문영환의 아들 문태석이 대표적이다.

 

소설가 채만식 ( 蔡萬植 . 1902 &sim; 195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문태석은 요 며칠 이래로 바짝 더 집이 싫어졌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아버지, 그에 못지않은 야심가인 어머니, 뒷날의 이득을 노리고 자금을 가지고 내려온 토건 회사 사장의 아내가 된 누이, 교회의 부녀 신도로 조직된 20여 명의 특공대가 득실거리는 가식과 이권과 명예욕 파가 난무하는 집이 싫었다. 우익진영의 명사인 아버지는 빗나가기만 하는 이 막내와 의절한 지 오래다.

 태석이는 경채를 찾아갔다. 경채는 아득한 위안을 풍겨주는 서른 살 난 과부였으나, 언제나 명랑하고 다정스러웠다. 경채는 아버지 당선 축하 잔치에 쓸 돼지를 부탁받아 계약해 놨으니, 전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만 표쯤은 자신 있다고 했다. 어림없는 소리다. 잘하면 삼천 표로 보기 좋게 낙선하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370만 원을 들이고 낙방하던 날 아침, 두 촌사람이 커다란 돼지를 묶어서 손수레에 싣고 왔다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럼 돼지두 낙방인갑쇼?”하였다.

 

 

 교내 웅변부(校內雄辯部)의 월례회가 끝나고 나서였다.

 회가 끝나자 여럿은 이내 다 흩어져서, 한 6, 7인이 나가 그대로 처져있었다. 웅변부를 끌고 가는, 그리고 나아가서는 교내에서 저네들의 이른바 진보적인 세력을 리드한다는 윤상수, 문태석, 고영달 이런 5, 6학년 중심의 맨 말썽꾼이 일파였다.

 늘 그들은 이렇게 얼렸다. 웅변부의 집회실로 정하여진 이 5학년 교실에서, 혹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집이나 하숙에서 반드시 약속이나 지정된 것이 아니면서도 저절로 그렇게 얼리곤 하던 것이었었다. 얼려서는 제법 정론(政論)을 하면서 비판하고 방담(放談)하고, 학교 당국을 공격하고 비방하고, 선생 누구를 그렇게 하고, 간혹 ‘연극’이라는 것도 하고 하다가는 필경 온갖 잡담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 가서는 빵 먹을 궁리를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내고 하기가 일이었다.

 오늘은 학교 당국에 대한 공격이 유난히 심하였었다. 올해는 교내웅변대회를 허락지 않기로 되었다는 학교 당국의 조치가 오늘 열린 월례회에서 드디어 발표되었기 때문이었다.

 웅변부가 비로소 생긴 것이 작년이었고, 따라서 교내 웅변대회를 열기도 작년이 처음인데, 그 처음에서 바로 교내 웅변대회 같은 것을 한만히 열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 당국은 절절히 깨달았었다.   --- 본문 중에서

 

 

 『도야지』 속 주인공은 문태석이다. 문태석은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자신이 빨갱이로 불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문태석은 자신이 빨갱이가 되어서라도 아버지 문영환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시키고자 한다. 문영환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고자 모인 애국청년단원들은 문태석이 보기에 하나같이 파렴치한 인간들로 묘사된다. 이런 가운데 문영환은 국회의원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당선 축하에 사용할 돼지를 미리 준비한다. 하지만 문태석의 바람대로 문영환은 보기 좋게 선거에서 떨어지고 만다.

 단편소설 『도야지』는 한국 정치 풍토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5.10 선거 무렵의 보인 비리와 관련된 인간 군상들과 외세 의존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