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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

by 언덕에서 2023. 3. 8.

 

이청준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88년 발표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한 [이청준 전집] 20권의 표제작이다.

 1980년 광주의 비극과 1987년 6월 혁명 사이에서 모더니티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새로운 모더니티에 대한 갈망은 이청준 문학의 일관된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였다. 이청준은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어느 경우나 그 주인공이 뿌리박고 살아온 시대와 사회의 구체적 사실성과 그 소설이 쓰인 시대의 정신풍속이 말해주는 당대성, 바로 그 이중의 뼈대 위에 조건 지어진 삶”이라고 믿었다. 이청준의 문학은 과거를 재현할수록 소설이 쓰이고 있는 당대성을 지니고, 나아가 미래를 새롭게 제시하는 문학적 실천을 띠게 되는 이른바 ‘징후의 문학’을 향해 있었다.

 「벌레 이야기」는 어린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되자 그 어머니가 교회를 찾아가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어 붙잡힌 범인을 용서하려 하지만, 이미 사형 선고까지 받은 범인이 먼저 신앙적 구원과 사랑 속에 마음이 평화로워져 있음에 절망하여 도리어 자살을 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밀양」(2007)의 원작소설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1981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윤상 군 유괴 살인사건을 실제 모델로 하고 있다.

영화 [밀양], 2007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자인 남편이 담담하게 소설을 끌어간다. 아내가 마흔 가까이 돼 낳은 알암이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고 성격이 유순하다. 친구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던 알암이가 4학년이 되면서 주판에 취미를 붙여 주산학원에 열심히 다닌다.

 어느 날 알암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몇 달째 찾지 못하고 있다. 정신을 놓고 지내는 아내에게 이웃에 사는 김 집사는 ‘주님’ 앞으로 나오라고 권유한다. 혼자서는 절대 그 짐을 감내할 수 없을 거라며. 아내는 김 집사와 교회에 나가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살해된 알암이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절망한 아내는 더는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김 집사는 끈질기게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유한다. 아내는 전지전능하다면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놀랍게도 알암이를 찾는 데 앞장섰던 주산학원 원장 김도섭이 살해범으로 밝혀진다. 알암이 엄마는 김도섭을 직접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했고 김도섭은 사형이 확정된다. 우리 속의 맹수처럼 복수심으로 안절부절못하던 아내는 김 집사의 설득으로 다시 교회에 나가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김 집사는 ‘알암이의 구원’을 운운하며 살해범을 용서하라고 권한다. 오랜 갈등의 시간이 끝나고 아내는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한다.

 교도소를 찾은 알암이 엄마 앞에 나타난 김도섭. 그는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신장과 두 눈을 기증할 약속까지 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린다며 알암이 엄마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아내는 살인자의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로운 얼굴’에 경악한다.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라며 절규하던 알암이 엄마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어린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되자 그 어머니가 교회를 찾아가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어 붙잡힌 범인을 용서하려 하지만, 이미 사형 선고까지 받은 범인이 먼저 신앙적 구원과 사랑 속에 마음이 평화로워져 있음에 절망하여 도리어 자살을 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밀양」(2007)의 원작소설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1981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윤상 군 유괴 살인사건을 실제 모델로 하고 있다. 이청준은 사랑과 화해라는 정신적 덕목을 종교적 신성성(신/ 믿음)에 빗대어 다룬다. 한편으로 사회 정화와 국가 질서를 강조하는 신군부 체제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팽배했던 80년 당시의 시대 배경 속에서, 더 큰 범죄의 가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를 용서하거나 단죄하고 위로함으로써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은폐되어버리는 기묘한 담론 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자율을 통한 기묘한 통제와 비판을 통한 이상한 억압 속에 처해 있던 1985년 무렵의 상황에서 질식해 죽어갔던 자는 「벌레 이야기」의 알암이 엄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해자는 뻔뻔하게 잘살고 있는데 사건의 후유증으로 피해자 가족이 고통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편에서 의문을 되새겨 본’ 이청준 작가는 결국 아내가 힘겨운 삶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그렸다.

 온갖 갈등과 고통 속에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살인자를 용서하러 갔는데 편안한 얼굴로 “나는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한다면? 알암이 엄마의 심경으로 「벌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정한 용서와 복수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라. 김집사가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말 속에 ‘해답’이 들어 있지만 인간이기에 ‘넘기 힘든 장벽’이 무수히 많다.

 이청준은 사랑과 화해라는 정신적 덕목을 종교적 신성성(신/ 믿음)에 빗대어 다루면서도, 한편으로 사회 정화와 국가 질서를 강조하는 신군부 체제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팽배했던 80년 당시의 시대 배경 속에서, 더 큰 범죄의 가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를 용서하거나 단죄하고 위로함으로써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은폐되어버리는 기묘한 담론 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해당 전집에 실린, 1985년부터 1987년 봄 무렵까지 3년여에 걸쳐 발표한 중단편 10편을 통해 작가는, 5공화국의 기묘한 담론 질서와 그 집권 세력인 신군부 체제는 물론이고 1985년 무렵의 끔찍한 모더니티 일반을 겨냥해 비판하고 있다.


이윤상 유괴 살인사건 :

 1980년 11월 13일 당시 경서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윤상은 교사 주영형에 의해 납치되어 해가 바뀌도록 피해자나 용의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자 안전을 위해 비공개수사로 진행되었으나, 사건 발생 120일 뒤 공개수사로 진행되었다.

 범인 주영형은 이윤상을 이불로 덮어 질식사시킨 뒤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피해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주 교사는 노름빚 1,800만원을 갚기 위해 자신이 가르치던 중학교의 제자를 납치하였으며, 수사과정에서 주 교사를 따르던 여고생 2명이 주 교사의 범행을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이윤상은 납치된 지 1년 만에 경기도 가평의 강변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982년 11월 23일 대법원에서 주영형의 사형이 확정되었고, 1983년 7월 9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공범 중 1명인 17세 이 모양에게는 장기 5년, 단기 3년의 징역이, 다른 1명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그 후 공범 2명은 1984년 집행유예로, 1985년 성탄절 특사로 각각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