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단편소설 『인간동물원초(人間動物園抄)』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단편소설로 1955년 8월 [문학예술]에 발표되었다. 전후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가운데 인간의 실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감옥에서 죄수 간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대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모습을, 감옥살이하는 죄수들을 통해 보여 준다. 이 작품은 ‘동굴 속 같이만 느껴지는 방이다’라는 서두(序頭)처럼 다른 글과 같이 어두운 내용을 암시하고, 인간의 성격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갇혀 있는 인간의 비뚤어진 모습은 결국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손창섭은 김성한ㆍ장용학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문학사를 빛냈다. 천성이 비사교적이고 외곬이어서 문단의 기인(奇人)으로 알려졌으며, 착실한 사실적 필치로 이상인격(異常人格)의 인간형을 그려내어 1950년대의 불안한 상황을 잘 드러냈다. 독특한 시니시즘의 필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성격 찬조, 거침없이 파국으로 몰고 가는 주제의 결말은, 종래 상식적인 문학관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굴 속처럼 느껴지는 감방 안에는 그 방의 최고 고참이자 살인범인 방장(房長), 사기횡령 및 문서위조죄인 연장자 좌장(座長), 밤마다 방장에게 성적(性的) 괴롭힘을 당하는 강간범 핑핑이, 방장과 갈등 관계에 있는 주사장(廚事長), 일종의 우월의식을 지닌 냉소적 인물인 통역관, 미군 부대에서 양담배를 빼돌리다 들어온 양담배, 전차 운전사 등이 수용되어 있다. 이들은 인간동물원에 수용된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감방 밖의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며,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에도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감옥살이를 가장 오래 한 방장과 그다음으로 징역을 많이 산 주사장 사이에는 은밀한 암투가 벌어진다. 두 사람은 강간죄 때문에 옥살이를 하는 핑핑이를 서로 자신의 성희(性戱) 대상으로 삼으려고 신경전을 벌인 결과 핑핑이는 방장의 차지가 된다. 핑핑이를 뺏긴 주사장은 대신 새로 들어온 양담배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다. 그러다가 참한 외모의 소매치기 상습범이 감방에 새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은 더욱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다.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소매치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암투를 벌이지만 소매치기 역시 방장의 몫이 된다.
그런데, 감방 안의 주도권을 놓고 방장과 주사장이 세력다툼을 벌이기는 해도 그들 역시 냉소적인 통역관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학식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감방 안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통역관의 태도에 제압당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방장과 주사장의 싸움이 교도관에게 발각되어 두 사람은 호되게 당한다. 그날 밤, 방장은 죄수복으로 엮어 만든 밧줄로 주사장을 살해한다. 다음날, 방장과 주사장이 감방에서 모습을 감추자 감방 안의 죄수들은 중노동을 하고 난 후처럼 축 늘어져 있다. 냉소적인 눈빛의 통역관은 혼자 창을 등지고 앉아 있고, 다른 죄수들은 모두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짙은 안개만 자욱할 뿐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동물원초」는 인간동물원과 다름없는 감방이라는 닫힌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죄수들의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비뚤어진 자의식의 세계와 전후의 암울한 사회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감방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음울한 분위기와 이상 성격의 인간형을 사실적 필치로 그려내 전후 한국사회의 불안한 실상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 손창섭은 장용학, 김성한 등과 함께 6ㆍ25 전쟁을 경험한 대표적인 전후 세대 작가로서, 1950년대의 불안한 사회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에 대한 모멸과 자조, 극도의 절망과 궁핍 등 부정으로 가득 찬 시각으로 인간의 실존 세계를 다룸으로써 종래의 한국소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립한 작가로 평가된다.
병들어 있는 삶의 조건에서는 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병적인 도착심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인물들은 모두 현대인의 병든 내면세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절박한 현실의 그들에게는 미래의 자유보다도 오늘의 생존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독특한 그의 문학은 당시 문학관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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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의 작품은, 극도의 궁핍과 절망, 그리고 닫힌 상황을 다루면서 전후 사회의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깊이 있게 가하고 있다. 또한, 손창섭 작품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인물들의 성격은 폭력과 살인, 성 충동을 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1950년대, 불치의 중증을 앓고 있는 전후 시대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라는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인물 묘사에도 색다른 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신체에 관한 자질구레한 묘사가 없다는 점이다. 단지, 인물들의 언동과 추태 등 행위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모습들만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설정하는 인물 유형은 존재론적 시각에서 포착되어 있으며, 동물적인 행위의 결과를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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