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김유정 단편소설 『따라지』

by 언덕에서 2023. 1. 12.

 

김유정 단편소설 『따라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소설로 1937년 [조광(朝光)] 지(誌) 3권 2호에 발표되었고, 1938년에 간행된 단편집 <동백꽃>에 수록되었다. 셋방살이하는 서민과 집주인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풍자와 애수를 섞어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그의 문학적 특성인 정확한 문장과 독특한 해학 스타일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작가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자라났다. 작가 자신이 고백한 바대로 폐결핵 때문에 우울한 성격이 되었고, 항상 애수를 지닌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김유정의 문단 생활은 2년 여에 불과했으나, 그동안 병고, 빈한과 싸우면서 거의 30편에 달하는 단편을 창작해 내었다.
 ‘무지개와 같이 찬란하게 나타났다가 무지개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간’ 이 위대한 작가의 특징은 일견 보석 같은 토속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치밀한 조사(措辭)에서 오는 유니크한 스타일에 있다. 또한 예외 없이 우매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그의 작품은 향토적인 서정이 넘쳐흐르고 있다.

소설가 김유정 ( 金裕貞 , 1908~193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화창한 봄날. 사직동 꼭대기에 올라붙은 초가집, 방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주인마누라의 푸념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늘은 반드시 받아내리라 결심하고는 버스 차장 딸에게 붙어사는, 영양실조로 얼굴이 뜬 ‘노랑퉁이’ 영감에게 집세를 재촉하지만, 앓는 소리와 호통으로 물러 나온 뒤에, 카페에 나가는 ‘아끼꼬’에게로 화살을 돌리지만 늘 그렇듯이 역습당하기만 한다.
 결국, 가장 만만한 ‘톨스토이’(별명)에게 방세를 받아내려고 조카를 불러다 짐을 들어내게 한다. 그러나 신경질적인 누이에게 기식한다고 들볶임을 당하며 방구석에 앉아 늘 글만 쓰고 있는 톨스토이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왔던 아끼꼬가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몰아세운다.
 거기다가 노랑퉁이 영감까지 지팡이를 휘둘러 사태가 역전되고, 주인마누라는 버릇처럼 순경을 불러오나, 순경까지도 이젠 너무 여러 번 다녀가서 흥미가 없다. 구렁이에게 가장 밉게 보였던 아끼꼬만이 순경에게 끌려나갔다. 아끼꼬는 사직원 문간쯤 와서는 “이담 또 만납시다.”하고 순경에게 제멋대로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 집으로 올라가며 몇 번이고 결심하는 것이었다.

 “망할 년! 이담에 봐라! 내 장독 위에 오줌까지 깔길 테니!”라고.

 


 사직공원 부근의 늙은 부부가 사는 집에서의 일이다. 두 영감 마누라는 돈이 아쉬웠기 때문에 쓸 방을 못 쓰고 세간을 치워 가면서 사글세를 들였다. 제복공장을 다니면서, 늘 우거지상을 하고 들어앉아 있는 남동생을 먹여 살리는 과부, 부족증 환자이면서도 감기 환자라고 속이고 들어온 늙은이와 버스걸을 하는 그의 딸, 술집 여급인 아끼꼬와 영애-- 이들은 한결같이 방세가 밀려 있기 때문에 주인과 늘 싸우고 있다. 어느 날 주인마누라는 조카가 방을 쓰기로 했다고 조카를 데리고 오자, ‘톨스토이’로 통하는 제복공장 과부의 남동생이 가장 만만한 까닭으로 쫓겨날 위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도시 빈민을 소재로 한 작품의 하나로서, 1930년 둘째 누이 유형에게 기식(寄食)하며 살았던 사직동 시절,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작품화된 경우이다. 셋방살이하는 여러 유형의 가난한 인물들을 한 작품에서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보이는 웃음 속에는 도회 변두리에서 허덕이는 최하층 삶의 슬픔과 고달픔이 반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기지에 가득 찬 필치와 이죽거리는 야유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인물의 말씨, 동작, 심리의 미세한 동향까지 세밀히 포착되어 생동감이 넘친다.
 방세를 받으려는 주인의 음모와 이것을 연기하려는 셋방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각 인물의 시점에서 익살스럽게 묘사하여, 김유정 문학의 특징인 골계와 해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편소설 『따라지』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에는 그의 문학의 큰 축인 해학성과 삶의 현장성이 함께 직조되어 있다. 사직동 초가집 마당에서 펼쳐진 주인집 여자와 조카 대 세입자들의 싸움판은 유머 코드 가득한 상황극을 보는 듯하다. ‘전투’는 치열하지만, 인물들은 지질하고 그 행동은 우스꽝스럽다. 작가의 능청스러운 묘사와 천연덕스러운 서술 탓에 우리는 그들의 삶을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 따라지들의 인생은 전혀 희극적이지 않다. '따라지'는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뜻한다. 작중 인물 톨스토이는 누나에게 얹혀살면서 갖은 구박을 당하고 대낮에도 이부자리 보전을 하는 그는 전형적인 룸펜이다. 그런 톨스토이에게 연정을 품은 아끼꼬는 술집 여급이다. 심지어 영애는 아버지가 팔아먹은 딸이다. 노랑통이 부녀는 방을 얻지 못할까 봐 병을 속이고 들통난 뒤에도 한결같이 감기라고 우기는 기만은 살아남기 위한 고투이다. 주인 여자가 순사를 데려왔을 때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자신들의 생존 투쟁을 진작에 구경한 활동 영화처럼 흘려보내고 딴청을 피운다. 김유정의 해학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