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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 단편소설 『휴업과 사정(事情)』

by 언덕에서 2023. 1. 3.

 

이상 단편소설 『휴업과 사정(事情)』

 

 

이상(李箱. 김해경. 1910∼1937)의 단편소설로 1932년 [조선] 지에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삼 년 전부터 주인공 보산과 SS는 담 하나를 막아놓고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도 없이 살아간다. 담을 사이에 두고 SS는 자신이 사는 이층 집의 들창에서 담 아래편 주인공의 들창 앞을 겨냥하여 가래침을 항상 뱉는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 집을 내려다 보는 위치의 옆집 사람이 주인공의 집을 향하여 가래침을 내뱉고 주인공은 번번이 불쾌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상은 1929년 경성 보성고보를 거쳐 1930년 경성고등공업 건축과를 졸업한 후 총독부 건축기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창작에서 출발했는데 1934년 9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 등을 발표해서 난해시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문제작품인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한 것이 1936년 9월 [조광] 지였는데, 여기에서 다시 소설로서의 난해한 작품인 <동해>와 <종생기>를 내놓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36년대를 전후해서 세계적으로 유행된 자의식 문학시대에 있어 이 땅의 대표적인 자의식 작가였다. <날개>는 이른바, 심리주의적인 사실주의 수법에 따라 그 자의식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이었다.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다시 <종생기>(1937) <실화>(1939) 등 많은 단편ㆍ시ㆍ수필이 있다.

 본래 신경질적인 성격에다가 심한 폐결핵을 앓았던 그는 시대적인 지성적 고민에서 의식적으로 자기 학대를 했다. 그 결과, 사생활에서도 거의 자포자기로 떨어졌지만 자신도 그 점을 반성하여 1939년에 일본에 건너가 갱생을 뜻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질 않아 동경에서 결국 28세로 요절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끝난 한참 후인 1957년에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삼 년 전(이라는 시간)이 보산과 SS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앉아 있었다. 보산에게 다른 갈 길 이쪽을 가르쳐 주었으며 SS에게 다른 갈 길 저쪽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담 하나를 막아놓고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도 없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보산과 SS, 사람의 삶이 어떻게 하다가는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다가는 멀어졌다, 이러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보산의 마당을 둘러싼 담, 어떤 점에서부터 수직선을 끌어놓으면 그 선 위에 SS의 방의 들창이 있고 그 들창은 그다음의 맨 꼭대기보다도 오히려 한자와 가웃을 더 높이 나았으니까 SS가 들창에서 내다보면 보산의 마당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보산은 적지 아니 화를 내며 보아 지내왔다. SS는 때때로 저의 들창에 매달려서는 보산의 마당의 임의의 한 점에 침을 뱉는 버릇을 한두 번 아니 내는 것을 보산은 SS가 들키는 것을 본 적도 있고 못 본 적도 있지만 본 적만 쳐서 헤아려도 꽤 많다.

 옆집 사람이 자꾸 침을 내 집 마당에 뱉는다면? 삼 년 전부터 보산과 SS는 담 하나를 막아놓고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도 없이 살아간다. 담을 사이에 두고 SS는 자신이 사는 이층집의 들창에서 담 아래편 보산의 들창 앞을 겨냥하여 가래침을 항상 뱉는다.

 (글쓰는) 밤샘 작업을 하고 오후 두 시에 보산이 일어나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마당에 나오면 어김없이 SS가 자기 집 마당 한 곳에 침을 뱉는 것을 보게 된다. 보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정리정돈을 한다.

 보산은 야간에 SS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심지어 보산은 자신의 마당에 침을 뱉는다는 이유에서 ‘SS’를 ‘저능아’라거나, ‘뇌가 나쁠 것’이라고 비하한다. ‘SS’의 아내가 아들까지 출산했다는 것을 확인한 ‘보산’은 마침내 ‘휴업(休業)’을 선언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당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온다.

 

이상, 박태원, 김소운

 

 「휴업과 사정」 작품 속 ‘보산’과 ‘SS’의 갈등은 지금껏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비문명, 위생과 비위생의 대립으로 해석되어 왔다. 소설의 도입부에 묘사된 ‘SS’와 ‘보산’의 집 구조와 배치를 고려하면, ‘SS’는 ‘보산’의 마당을 훤히 내려다보고 마치 사격을 하듯이 침을 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전통적인 가옥 형태인 ‘보산’의 집과는 달리, ‘SS’의 집은 2층 구조의 소위 ‘문화주택’이었기 때문에, ‘SS’가 ‘보산’를 ‘나려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작가 이상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보산’은 ‘SS’의 아내를 의식하며 ‘SS’를 질투하면서, 결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삶이 ‘문화주택’에 사는 ‘SS’의 삶에 견주어 더욱 문화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노력한다.

 ‘SS’에 대한 ‘보산’의 공격적인 태도는 이처럼 허울뿐인 가짜 ‘문화’에 맞서고자 하는 ‘보산’의 의지와 결부된 것이다. 그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위생을 강조하거나, 자신의 마당에 침을 뱉는다는 이유에서 ‘SS’를 ‘저능아’라거나, ‘뇌가 나쁠 것’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SS’의 아내가 아들까지 출산했다는 것을 확인한 ‘보산’은 마침내 ‘휴업(休業)’을 선언한다. 자신의 마당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온 보산의 ‘슬픈 표정’에서 우리는 외로운 글쓰기를 이어가던 작가 이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휴업과 사정」은 이상(李箱)이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4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소설로서는 <12월 12일>, <지도의 암실> 이후 세 번째 작품으로 초기 작품에 속한다. 다만 SS가 보산의 마당에 침을 뱉는 것이 주된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적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많지 않고, 그나마 존재하는 보산과 SS의 갈등 또한 첨예화되어 있지 않기에 이후 발표된 다른 작품에 비해 선행 연구가 미미한 편이다. 작품 전반에 두드러지는 음양오행에 근거하여 작품을 해석한 예도 있는데, 결국 보산이 음이고 SS가 양이어서 귀결되는 지점은 둘의 차이점이었다. 대조적으로 두 사람 간의 대립보다 보산과 SS 사이의 상호 관계에 주목한 연구도 있었다. 보산의 그림자가 SS와 닮아 보인다는 대목을 언급하며 보산과 SS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에게 떼어날 수 없는 관계로 역설한 논문도 있는 등 난해한 이 소설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 보산에게 이상 김해경이 잘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휴업과 사정」은 이상의 문학적 세계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다른 작품에서 작중 주인공 이름이 ‘이(리)상’이나 ‘나’였던 것처럼, 필명인 보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천하 인간들의 쓰는 시와는 운소로 차가 나는 훌륭한 시를 보산은 몇 편이나 몇 편이나 써놓는 것이건만’에서 볼 수 있듯 보산이 <오감도>가 거센 저항을 받을 때 작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침을 뱉는 소재를 다룬 것은, 소설을 쓰기 전 1931년 폐결핵을 진단받은 이상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이 쓰인 시대적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 근대는 시민 사회, 계몽과 더불어 격변을 거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격동기에서 일어난 수많은 변화 중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은 위생 관념이다. ‘… 위생이라는 관념에서 불결이 여하히’ 등 위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여, 최초 SS를 향한 보산의 혐오는 SS의 비위생적 특징이 시작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과 관련한 여러 연구 중 위생과 비위생의 관점에서의 보산과 SS의 차이를 연구한 사례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