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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李箱) 단편소설 『종생기(終生記)』

by 언덕에서 2023. 1. 5.

 

이상(李箱) 단편소설 『종생기(終生記)』

 


이상(李箱, 김해경. 1910∼1937)의 단편소설로 1937년 3월 [조광]지에 발표되었다. 특별히 줄거리라고 말할 만한 내용이 없이, 이상이 죽기 한 달 전 신변잡기 성격의 고백소설이다(이상 김해경은 1937년 4월 17일 사망했다).
 이상의 작품은 심리주의적 리얼리즘 수법이 뛰어나지만 패배적인 주제는 죽음 앞에 패배적인 기록으로 남았다. 이상 김해경의 작품에 있어서 다양한 주제와 소재가 제시되었더라면, 천재적인 그의 시와 함께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한 전형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단편소설 「종생기」는 일본에서 집필한 작품으로, 자전적인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나'는 이상 자신이며 ‘정희’도 실제 인물인 연심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 자기 부정, 자기 파괴적인 작가 이상은 극단적인 자학 속에서 세상을 포기한다. 식민지 시대와 병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는 죽음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당시의 극한 상황을 정면으로 고발한 점은 문학사적으로 의의를 지닌다.

 

소설가, 시인 이상 (李箱, 김해경. 1910-193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작성 중인 유서 때문에 끙끙 앓는다. 열세 벌의 유서가 거의 완성해 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정희에게서 속달 편지가 날아들었다.
 “영원히 선생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로, 3월 3일 날 만나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죄다 거짓부렁이다. 나는 깜빡 속기로 한다. 나는 개세(蓋世:기상이나 위력, 재능 따위가 세상을 뒤덮음)의 경륜과 유서의 고민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해 맵시를 수습하고는 약속 장소로 나간다. 나는 흥천사 으슥한 구석방에서 정희에게 술주정을 한다.
 정희의 스커트를 잡아제치자 편지가 떨어졌다. 정희는 자신이 S와 절연한 지 다섯 달이나 되었다며, 내게 믿어달라고 했는데, S에게서 온 편지다. 어젯밤 태서관 별장에서 S를 만났으며, 오늘(3월 3일) 오후 여덟 시 정각에 금화장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정희가 내게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이어 받은 속달편지다. 공포에 가까운 변신술이다. 이 황홀한 전율을 즐기기 위해 정희는 나를 농락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졸도하여 버렸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정희는 거기 없었다. 물론 여덟 시가 지난 뒤였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았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1995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상이 쓴 열세 편의 소설은 거의가 자전적이다. 1930년대 후반기는 식민지 조선사회의 혼란과 궁핍을 배경으로 조선총독부의 구조적인 착취 정책 속에 민족적 가치관이 무질서하게 흔들리는 시점이었다. 이같은 상황 하에서 지식인들은 자조적인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작자의 자의식이 더욱 강하게 발로된 작품이다. 다분히 심리주의적 난해한 문장이 곳곳에 난무한다.
 '나는 날마다 종생한다. 나는 하루를 평생으로 길게 느낀 만큼 삶에 지쳐 있으며, 이미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럴 듯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만을 매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정희에게서 엽서가 온다.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나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만나자는 편지다. 나는 정희를 만나고, 기발한 말로써 그녀를 놀래게 하고자 한다. 그때 정희에게서, 헤어졌다던 남자 중 하나에게서 바로 어제 온 편지가 눈앞에서 발견된다. 며칠 전 정희와 S의 밀회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나는 속은 것이다. 나는 죽어 있는 시체, 또 다시 종생한다.'는 내용이다.

 

 

 모순된 사회에서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다. 비양심적으로 호강하며 살거나, 양심을 지키면서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렇잖으면 「종생기」의 주인공과 같이 자포자기만 남는다. 그것은 <날개>의 주인공과 같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이 「종생기」에서와 같이 유서를 쓰는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인 ‘나’가 폐쇄된 사회에서 결국 구원을 찾지 못하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학적인 패배주의는 이상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참담한 주제들이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상의 문학을 초현실주의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간다. ‘초현실’이라기보다 오히려 철저한 현실적 속물주의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이라 한다면, 철학적인 어떤 삶의 모습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상의 작품에는 철학은 보이지 않고 상황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