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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나딘 고디머 장편소설 『거짓의 날들 (The Lying Days)』

by 언덕에서 2022. 12. 13.

 

나딘 고디머 장편소설 『거짓의 날들 (The Lying Days)

 

 

남아공 소설가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 1923~2014)의 장편소설로 1953년 발표되었다. '기만의 세월'로 번역한 책도 있다. 이 작품은 정치색이 짙어진 고디머의 후기 작품들보다 서정적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는 평을 받는다. 뛰어난 심리묘사와 서정적 문체, 사실주의적 묘사로 스물아홉에 쓴 첫 장편소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문학적 기량이 발휘된 작품이다. 또한, 고디머가 평생을 통해 천착한 남아프리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뿐 아니라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 소녀가 성적 호기심과 사랑, 반항과 고뇌, 그리고 자기성찰을 통해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최고의 여성 성장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고디머가 유일한 자전적 작품으로 꼽은 『거짓의 날들』은 기득권인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소녀 헬렌이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 다양한 인종과 출신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서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서서히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애서턴 광산촌과 나탈의 남부 바다,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지는 한 소녀의 눈부신 성장 이야기는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 암시하듯 ‘화려한 잎과 꽃들을 햇빛 속에 흔들며’ 세상에 부딪히며 자신을 과시하고 방황하던 우리 모두의 청춘을 돌아보게 한다. 고디머는 199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아공 소설가 나딘 고디머 (Nadine Gordimer, 1923~201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남아프리카 광산촌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안온한 어린 시절을 보낸 헬렌 쇼가 주인공이다. 백인들이 지닌 특권 속에서 성장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진통의 첫 단계와 다음 단계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듯’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대학 진학을 고민한다.

 그해 여름 나탈의 남부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던 헬렌은 자연주의자 루디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둘러싼 삶의 진부함과 그 속에 감춰진 위선을 깨닫는다. 이후 광산촌을 떠나 요하네스버그 대학에 진학한 헬렌은 요엘, 메리, 이사, 마커스 부부 등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흑인 사무국에서 일하는 폴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인종차별이 날로 심해지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뜨게 된다.

 흑인들이 처한 차별과 고통 앞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힌 헬렌은 그것이 자신만의 감정이 아니며, 남아프리카에 사는 백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헬렌은 거짓된 삶과 인간성을 잃은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유럽으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환멸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등 돌리지 않고 펜으로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디머는 이 소설의 끝에서 자기 삶의 진정한 출발을 선언하고 있었다. 『거짓의 날들』은 백인 민족주의 정권이 집권하고 인종차별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1940년대 말부터  1950년까지의 남아프리카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책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철폐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지속하였다. 그리고 만델라가 28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옥문을 나서며 “나는 나딘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했을 만큼 남아프리카의 양심을 상징하는 작가 나딘 고디머는 1953년 『거짓의 날들』을 발표함으로써 남아프리카에 닥친 인간성의 위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장편소설 『거짓의 날들』 작중 헬렌을 통해 말하고 있듯 자신이 발 디디고 살아가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이 그토록 좋아하고 탐닉했던 책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고디머는 직접 그 세계를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었고, 평생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디머는 소설가로서 진정한 출발을 알린 『거짓의 날들』에서 젊은 날의 허위와 허상을 가감 없이 고백하면서도, “지나고 나면 짧게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길고도 끝이 없는” 젊음의 한 시절을 아프게 건너며 성장한 인물들을 통해 어떤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결국 인간이 희망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거짓의 날들』은 인종차별 정책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의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한편, 한 여성이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해가며 겪는 내면의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정치성과 서정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으로 고디머 문학세계의 출발을 알린 소설이다.

 고디머는 특권층인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5세에 첫 소설을 잡지에 발표했다. 많은 독서를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apartheid)이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흑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고 차츰 그 정책에 정치적으로 강한 반대 견해를 취하게 되었다. 트와터스란트대학에서 1년간 공부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작품활동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첫 단편집은 <사탄의 달콤한 목소리(The Soft Voice of The Serpent)>(1952) 이며 1953 소설 「거짓의 날들(The Lying Days)」을 출판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책이 남아프리카 국민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주로 다루었으며, 개인적인 소외와 사회정의의 실현 사이에서 빚어지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고디머는 이 긴장 상태가 결국 인종차별 정책, 망명에 대한 국가의 거부, 현정택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마비 상태를 낳게 된다고 생각했다. 소설 <보호주의자(The Conservationist)>(1974)로 1974년 [부커 매코넬상]을 받았다. 후기 작품에는 <버거의 딸 (Burger's Daughter)>(1979), 단편집 <병사의 포옹(A Soldier's Embrace)>(1980)·<7월의 사람들(July's People)>(1981)·<자연의 위안(A Sport of Nature)>(198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