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장편소설 『재즈(Jazz)』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2019)의 장편소설로 1992년 발표되었다. 토니 모리슨은 1987년 출간한 대표작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로버트 F. 케네디 상] 등을 수상했고, 1993년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 속에서 흑인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 [타임]지 선정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명' 중 하나로 꼽혔다.
미국 매체는 "토니 모리슨은 본질에서 <빌러비드>와 『재즈』, 이 두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재즈는 진정 눈부신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재즈 음악의 모티프를 능수능란하게 빌린 토니 모리슨의 권위 있는 소설은 1920년대 할렘의 분위기와 흥분을 손에 만질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그려냈다"라고 평했다. 『재즈』는 1987년 <빌러비드>를 발표하며 대중과 평단의 큰 호평을 받은 토니 모리슨이 5년 만인 1992년에 발표한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며, 출간 다음 해인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작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26년 겨울, 뉴욕의 할렘. 중년의 화장품 외판원 조 트레이스는 열여덟 살의 연인 도카스를 총으로 쏴 죽인다. 조의 아내 바이올렛은 소녀의 장례식에 찾아가 관 속에 누운 소녀의 시신에 칼을 휘두르며 소란을 피운다. 장례식에서 쫓겨나 눈길을 헤치며 집으로 돌아온 바이올렛은 절망에 휩싸인 채, 키우던 새들을 날려 보낸다. 그녀는 남편의 어린 연인이었던 도카스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 소녀의 흔적을 좇는다.
버지니아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 호두나무 아래에서 만나 결혼한 조와 바이올렛은 1906년, 서던스카이 열차의 흑인 전용칸에 올라 춤을 추며 꿈과 기회의 땅인 뉴욕의 할렘으로 흘러들었다. 바이올렛은 집에서 손님을 받는 미용사로 억척스럽게 일했고, 조 역시 성실하기 그지없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20년 후, 바이올렛은 집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인형을 안아야 잠들며 가끔 길바닥에 주저앉기도 하는 골칫거리 아내가 되었다. 흠잡을 데 없는 남편이었던 조는 살인범이 되고 말았다.
끝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화자 ‘나’는 조, 바이올렛, 도카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수시로 그 시선을 다른 인물들에게도 던지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바이올렛의 어머니 로즈 디어는 백인들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긴 후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바이올렛의 할머니 트루 벨은 모시던 백인 아가씨 베라 루이즈가 비밀리에 낳은 흑인 혼혈아 골든 그레이를 사랑으로 키운다. 골든 그레이는 흑인 친부를 찾으러 나섰다가 숲속에서 와일드라는 미친 여자를 만난다. 앨리스 맨프리드는 이스트세인트루이스 폭동 때 백인들의 방화에 부모를 잃은 조카 도카스를 맡아 키운다. ‘나’는 능수능란하고 율동적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이으며 감각적으로 펼쳐내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묘하게 맞물리며 끝난다.
작가의 대표작 <빌러비드>나 <자비>가 흑인 노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재즈』는 노예제 폐지 후의 흑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는 한때 노예였지만 그들은 자유인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노예제 폐지 후의 세상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더는 노예가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차별과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흑인이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를 떠나 북부의 도시로 이주했다. 주인공인 조와 바이올렛도 완전히 새로운 삶을 꿈꾸며 북부의 도시를 찾은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도시에서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품었던 희망만큼 절망도 컸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재즈 음악을 즐겼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는 ‘재즈 시대’로 불렸다. 거리에는 늘 재즈 음악이 흘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즈의 선율에 몸을 흔들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튕겼다. 재즈는 단순한 대중음악이 아니라 흑인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와 그들이 휩쓸리고 있는 삶의 새로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든 음악이다. 슬픔과 동시에 에너지와 흥이 넘치는 음악이다. 그것은 경제적 번영이 주는 흥분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함께 나타내는 시대의 특성과 묘하게 닮았다.
♣
토니 모리슨은 이러한 재즈 음악을 통해 1920년대를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전통적 서사 기법의 틀을 깨고 재즈의 즉흥연주와 변주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대강의 플롯을 갈무리하듯 제시한 후, 뒤에서 다른 목소리와 다른 관점으로 그 이야기를 새롭게 되풀이한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겹겹이 의미를 쌓으며 풍성해진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전통적 구조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은 고집스럽게, 치밀한 계획에 따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엮은 이야기 구조 속에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와 이미지들을 채워 넣었다.
토니 모리슨은 재즈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몸을 들썩이고 입술을 달싹이듯, 『재즈』를 읽는 이들 또한 상상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소설을 자기만의 그것으로 완성해내기를 바랐다. 믿음직스럽지 않은 정체불명의 ‘나’라는 인물을 중심 화자로 설정한 것, 주변 인물을 단지 주인공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등장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한정하지 않은 것, 소설의 후반부에서 화자의 자기반성의 발언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이러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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