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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G.G. 마르케스 중편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

by 언덕에서 2022. 12. 5.

 

G.G. 마르케스 중편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8∼2014)의 단편소설로 1957년에 집필되어 보고타에서 발행되는 문예지 [미토]에 처음 발표되었으며, 1961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한동안 잊혔다가 마르케스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백 년의 고독> 등으로 백만 부 이상을 파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작가와 함께 되살아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초기 습작이 아니라 출간 당시부터 라틴아메리카 문학 비평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었고, 이후 그의 대표작들에 담긴,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소설 요소들이 이미 모습을 드러낸 초기 걸작이다.
  중편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일흔다섯 살의 퇴역 대령과 만성 천식 환자인 그의 아내가 콜롬비아 북부 강변 지방의 마을에서 가난과 싸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을 쓸 때 대부분 어떤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밝혔는데, 이 작품은 바랑키아 지역의 선착장에서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을 보았던 기억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연금을 기다리던 그의 외할아버지의 기억,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연과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움베르토 D]의 외로운 주인공 노인 등이 더해져 소설이 완성되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정치성을 노골적으로 표명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주제를 탁월하게 담아낸 소설로,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민중의 자존심과 품위를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가 1950년대에 지녔던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콜롬비아 국내의 기나긴 폭력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일화도 담고 있다. 마르케스그는 저널리스트 시절, 어느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먹고살 길이 없어 훈장을 저당 잡힌 이야기를 기사로 쓴 바 있는데, 이 테마는 소설 속 대령이 기다리는 연금 문제로 형상화되었다.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영화 [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 1999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대적 배경은 20세기 초입의 콜롬비아다. 과거, 내전에 참가했던 가난한 퇴역 군인 대령은 그는 매일같이 낡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를 기다린다. 천식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거의 잊히다시피 하여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배고픈 삶을 살고 있다. 퇴역 대령의 삶은 언젠가 15년째 받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연금을 받아 가난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지막 내전이 끝난 후 56년 동안, 그는 연금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그사이, 대령 부부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정치 싸움에 휘말려 투계용 닭 한 마리만 남겨 둔 채 죽임을 당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쌈닭 외엔 가진 게 없는 대령은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대령의 아내는 아들이 남긴 닭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자고 하지만, 대령은 아들과 마을 젊은이들의 희망이자 자존심의 상징인 닭을 팔고 싶지 않다. 그런 어느 날, 그에게 닭을 팔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대령이 겪는 고난의 아이러니는 혁명에 참여한 그의 맹목적인 믿음이 오직 그 자신과 그의 농부 아버지를 가난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자괴감과 그의 핵심적인 투쟁, 즉 죽은 아들이 남긴 마을 품평회에서 상을 딴 투계용 수탉을 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나란히 놓여 있다.
 아들은 금지 서적 유포라는 비밀 활동의 결과로 죽고 말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탉은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서 승리를 상징하게 된다. 수탉은 또한 시민들이 굶주림과 희망의 광기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 속의 고통에서 비롯된 침체를 떨치는 또 다른 전쟁터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 1999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령에게 도착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가 10월이었다.(중략) 그 순간 조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령은 장례식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그는 그물 침대 한쪽 끝을 내려서 방문 뒤에 있는 반대쪽 끝으로 돌돌 말았다. 아내는 죽은 사람을 생각했다. (후략) - 본문 7쪽에서

 작품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다른 많은 작품처럼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건인 마을 트럼펫 연주자의 장례식은 이 마을에서 수년 만에 맞은 ‘자연사’다. 이 사건은 그 이전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정치 폭력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음을 시사한다. 작은 마을에 죽음이 일상화된 것은 콜롬비아의 오랜 군사정권 독재 때문이다. 대령 부부가 겪는 경제적 궁핍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밤 11시의 통행 금지, 교회의 영화 상영 금지, 경찰의 불시 단속 등 군사정권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소설 곳곳에서 묘사된다.
  가난한 퇴역 군인인 대령. 그는 매주 낡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를 기다린다. 대령은 오래전에 일어난 콜롬비아 천일전쟁에서 비민주적이고 탄압적인 보수당 정권에 맞서 자유당 군인으로 싸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오십육 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연금 수급 자격을 알리는 통지서를 받기를 애타게 기대하며 육지로부터 우편선이 도착하는 선착장에 내려가고, 금요일마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압박을 견디며 살아온 민중의 삶을 묘사하면서 직접적인 투쟁과 폭력성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수탉’으로 대변되는 마을 전체의 희망과 ‘대령’으로 대변되는 순수함을 통해 정치적 주제를 탁월하게 담아낸다. 주인공인 대령은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정치적 이상주의가 투영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아내와 자신의 입에 들어갈 음식도 없는 상황에서 싸움닭을 돌보며 닭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점차 마을 사람들의 정치적 희망의 대변자가 된다.
 희망이 점차 사라져가던 와중에 투계장에서 자신의 수탉이 의외로 용맹함을 보이자, 대령은 존엄을 되찾을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줄곧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온 아내에게, 앞으로도 자신이 고통스러운 삶과 계속 대면하며 살아갈 것임을 강력히 주장하게 된다. 독자들은 대령의 모습을 통해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민중의 자존심과 품위를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