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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엘리스 먼로 장편소설 『거지 소녀(The Beggar Maid: Stories of Flo and Rose)』

by 언덕에서 2022. 12. 1.

 

엘리스 먼로 장편소설 『거지 소녀(The Beggar Maid: Stories of Flo and Rose)

 


캐나다 소설가 엘리스 먼로(Alice Munro, 1931~)의 연작소설로 1978년 발표되었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 윙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첫 단편 <그림자의 차원>」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968년 출간된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총독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영어권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 『거지 소녀』와 1986년 <사랑의 경과>가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 차례나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모국인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 [펜/맬러머드 상] 등을 받았다.
 2012년 소설집 <디어 라이프>를 발표했다. “오랜 커리어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트릴리엄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작품을 끝으로 먼로는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3년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을 들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캐나다 소설가 엘리스 먼로 (Alice Munro, 193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로즈는캐나다 온타리오주 핸래티의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가족으로는 가구 수선 일을 하는 아버지, 로즈가 아기일 때 아버지와 결혼해 집을 개조해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새어머니 플로 그리고 이복동생 브라이언이 있다. 아버지는 헛간에서 일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를 읊는다. 그는 세상의 어떤 책이든 집어 들어 제목을 읽어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동시에 딸 로즈에게 “너무 똑똑해지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억누르던 동경과 공상 같은 최악의 성향이 딸에게서도 보인다는 점, 그리고 딸은 그것을 억누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분노와 좌절, 혐오감마저 느낀다.
 로즈가 학생일 때 병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와 달리, 새어머니 플로는 로즈가 대학에 진학하고 결혼과 이혼을 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그 세월 내내 고향 핸래티의 집에 머문다. 어린 로즈가 집에 한 아름 가지고 오는 책들을 경멸하고 로즈의 시건방진 행동, 무례함, 지저분함, 자만심을 지적하며 억누르던 새엄마 플로는 훗날 성인이 된 로즈에게 현재의 삶과 떠나온 삶의 틈이 얼마나 큰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로즈는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플로의 편지를 읽으며 조롱하기도 하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보여줘 플로를 주눅 들게 시도하지만, 결국 자신은 아직 플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로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인 패트릭을 만나 결혼하지만 극심한 갈등과 중산층의 폐쇄적 삶에 대한 환멸 때문에 십 년 만에 이혼한다. 결국, 패트릭은 로즈라는 사람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로즈에게 순종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그 이미지만을 사랑한 것이다. 하지만 로즈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결심했다는 깨닫는다. 나중에, 패트릭과의 파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로즈는 선택권을 가진 이들은 중산층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한다. 
 패트릭과 이혼한 후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자리를 구한 로즈는 낯선 지역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며, 배우이자 교사로 살아가는 로즈의 삶은 안정적이지도 윤택하지도 않다. 얼룩지고 허름한 아파트는 추운 날씨에도 라디에이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배우로서의 수입은 터무니없이 적으며 강의를 나가는 대학에서는 학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급여를 깎인다. 그리고 그 삶에서 로즈는 끊임없이 외로워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하고, 그러고 나서도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 절박한 마음으로 헛된 희망을 품는다. 새로운 관계에 로즈가 품는 환상과 그 환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그녀가 들이는 노력은 애처롭고 딱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절박하다. 매번 실패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그 실망이 두려워 도망치면서도 로즈는 '도대체 배우는 게 없는 사람'처럼 다시 또 다른 관계에 모든 희망을 건다.

 

 


 표제작인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거지 소녀』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거지 소녀와 그녀를 사랑한 코페투아왕을 그린 동명의 그림에서 따온 것으로, 패트릭은 로즈를 ‘거지 소녀’에 비교하며 “네가 가난해서 좋다”고 말한다.
 작가는 로즈의 삶을 절대 미화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이나 로즈의 열악한 사회적 · 개인적 환경을 고려하면, 넉넉하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로즈의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그려낼 법한데도, 먼로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태연한 목소리로 로즈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허영과 나약함을 그대로 다 드러낸다. 로즈가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수치심을 느끼면 느끼는 대로 서술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로즈 스스로의 생각을 빌려 비판하기도 한다.
 어릴 적 새어머니의 멸시 어린 질문부터, 고등학교 시절 교사에게서 듣고 자란 로즈가 직접 부딪치고 살아본 삶, 스스로 선택하고 끝까지 들여다본 삶이다. 로즈는 자신이 비록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부당한 질문을 들어야 하는 하찮은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먼로의 작품 가운데 단편소설 『거지 소녀』는 비교적 초기, 먼로가 캐나다 이외의 나라에서도 막 명성을 얻기 시작했을 무렵에 쓰인 연작소설의 부분이다. 단편소설로 이름을 알린 먼로에게 출판사들은 장편을 써볼 것을 제안했고, 그 갈등과 협의의 과정에서 “단편소설의 형식에 장편소설의 이야기 전개를 결합한 연작소설 『거지 소녀』가 탄생했다.
 연작소설 『거지 소녀』는 <장엄한 매질>·<특권>·<자몽 반 개>·<야생 백조>·『거지 소녀』·<장난질>·<섭리>·<사이먼의 행운>·<스펠링>·<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등 10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져 있다. 캐나다에서는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거지 소녀』는 주인공 로즈를 중심으로 연결된 단편 열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하고 누추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똑똑한 여성 로즈가 그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는 과정, 그리고 새어머니 플로와 쌓아나간 애증의 유대관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각 단편은 로즈의 유년기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사십 년의 세월에 걸친 생애의 어느 한 시기를 다루고, 때로는 한 단편 속에서도 수십 년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열 편의 단편 각각이 그 자체만으로 완결성을 갖춘 관조적이고 심미적인 완전체이면서 동시에 그 단편들이 모여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