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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솔 벨로우(Saul Bellow) 장편소설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

by 언덕에서 2022. 11. 25.

 

솔 벨로우(Saul Bellow) 장편소설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

 

 

미국 소설가 솔 벨로우(Saul Bellow, Solomon Bellows; 1915~2005)의 장편소설로 1956년 발표되었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 문단의 중심이 된 유대계 미국 작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본명은 솔로몬 벨로우스(Solomon Bellows)로, 1915년 6월 10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의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 가족이 미국 시카고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장편소설 『오늘을 잡아라』는 주인공 윌헬름 애들러(토미 윌헬름)에게 닥친 절망과 파국의 단 하루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압축하듯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겪는 비극과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 실존의 의미와 공존의 희망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발표 이후 정교한 플롯에서 절묘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탁월한 인물 조형, 종말의 고전적 카타르시스까지, 미국 현대문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솔 벨로우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졌고, 동시대 모더니즘 작가들이 종말론적 세계관에 근거해 미래에 비관적이었던 것과 달리,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을 지닌 작가, 미래에 대해 낙관적 희망을 품은 작가였다. 그러한 긍정성이 아로새겨진 작품이 바로 호라티우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한 구절 “카르페 디엠”에서 제목을 빌려온 『오늘을 잡아라』다.

 솔 벨로우는 당시의 작가들이 몰두한 완벽한 형식에 대한 고의적인 반항으로서 느슨하고 자유분방한 문체를 구사하여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의 모습과 인간 소외에 관한 소설들을 주로 썼고, 작품에는 유태적 특질이 많이 나타나 있다. 1953년에 <오기 마치의 모험>을 선보이면서 폭넓은 격찬을 받았고, <오기 마치의 모험>(1954), <허조그>(1956), <새믈러씨의 행성>(1971)으로 [전미 도서상]을 3차례 수상한 첫 번째 작가가 되었으며,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미국 소설가 솔 벨로 (Saul Bellow, Solomon Bellows; 1915~200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윌헬름 애들러는 물질적 곤궁과 실존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이다. 42세의 중년이지만 아직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할리우드에 갔던 그는 ‘애들러’라는 성을 버리고 ‘토미 윌헬름’으로 이름을 바꾸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영화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그를 어렸을 때 부르던 윌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토미 윌헬름 역시 술에 취하면 자신을 조소하듯 윌키라고 부른다. 그런 토미 윌헬름은 살아오며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들이 쌓여 지금의 초라하고 소외된 인생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는 지는 것에 지친 인물이며 비인간화되어가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혹한 대가를 요구받는 현대인의 대표자다.

 오늘 그는 다니던 가구회사를 때려치운 실직자이다. 별거 중인 아내에게 생활비와 양육비 독촉을 받고, 묵고 있는 호텔 방값까지 밀린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 있다. 그가 거주하는 호텔에는 은퇴한 의사인 그의 아버지도 묵고 있다. 아들을 무능력한 실패자로 생각하는 성공한 이 노인은 돈을 보태주기는커녕 아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토미 윌헬름은 과거야 이미 실패로 점철됐고, 당연히 미래는 보이지도 않으며, 현재는 그저 암울한 문제투성이뿐이다.

 오늘, 그는 과거의 많은 실수와 오판에 또 하나의 실수를 추가하여 저질러놓고 불안에 덜덜 떨고 있다. 철학자인지 의사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탬킨 박사라는 남자에게 속아 넘어가 수중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 그와 함께 증권거래소에서 선물투자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막다른 골목이다. 마지막 남은 돈까지 전부 날리게 하고 박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토미는 절박한 심정으로 박사를 찾아 거리로 나선다. 아버지에게도 찾아가 다시 도움을 청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도 짊어지기 싫다. 내 등에 업히지 말라”는 호통뿐이다.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던 토미는 얼떨결에 장례 행렬에 휩쓸려 장례식장까지 들어가게 되고, 낯선 망자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감정에 휩싸여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린다.

 

 

 솔 벨로우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 장편소설 『오늘을 잡아라』의 배경은 현대의 고도화된 대도시(뉴욕), 마천루의 도시다. 물질만능주의의 물결에 소외와 위기를 겪는 현대인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과적인 배경이다. 또한, 작품 전반에 물의 은유가 사용되는데, 소설은 토미가 글로리아나 호텔 23층 자기 방에서 나와 로비로 “가라앉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그가 낯선 이의 장례식장에서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리며 “슬픔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 장면으로 끝난다.

 물은 주인공의 정신적 익사를 상징하는데, 그를 서서히 적시다 잠식하다 완전히 가라앉히고, 이내 다시 눈물로써 그를 적시면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숨을 쉬게 하는 기재다. 삼인칭과 일인칭을 오가는 매력적인 서술 방식도 특징적이다. 주로 토미의 시각에서 이뤄지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서술은 묘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사고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지만, 이따금 마치 토미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듯한 삼인칭 해설로 바뀌면서 작가는 독자의 시각을 완전히 냉정한 타자의 것으로 돌려놓는다.

 

 

 장편소설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의 ‘그날’은 그저 그렇고 많고 많은 날 중의 하루인 평범한 날이 아니라, 죽은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삶의 충격을 주도록 작가가 철저히 고안한 ‘계산된 날’이다. 토미는 실패자이고 무시당하는 국외자지만, 가치가 획일화된 세상에 끝없이 저항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완전한 파국이 다가오는 그 날에도 끝없이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비판하면서, 왜 자신이 그 수렁에서 이런 막다른 길까지 몰렸는지 꼼꼼히 따져보려 한다. 요컨대 비인간화에 대해 거부하고, 투쟁한다. 그는 결국 장례식장에서 망자를 내려다보며 흐느끼다 불현듯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 대해 슬픔에 찬 각성을 얻는다. 그의 울음은 곧 망자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향한 울음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인간답게 살기를 고집하고 타인과의 연대 의식을 느끼려 분투하는 토미의 투쟁을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해 보인다. 또한, 인간의 삶이 비관적이라 단정하는 시대의 지배적 풍조에 타협하지 않고 고립된 삶을 긍정하는 삶으로 전환한다. 인간의 삶은 시대의 어떠한 판단이나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 가치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화되어가는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고 삶의 가치 있는 목적을 오늘에야 잡은 토미의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이야기는 여전히 위태로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수용과 긍정, 회복의 희망을 선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