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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장편소설 『대통령 각하(SENOR PRESIDENTE, EL)』

by 언덕에서 2022. 11. 23.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장편소설 『대통령 각하(SENOR PRESIDENTE, EL)』

 

 

과테말라 소설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Miguel Angel Asturias, 1899~1974)의 장편소설로 1946년 발표되었다. 196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는 칠레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1945)에 이어 중남미 작가로는 두 번째로 196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그러나 아스투리아스 자신은 1950년대 중반 친미 우익 정권에 의해 과테말라 시민권을 박탈당한 뒤 아르헨티나와 칠레, 그리고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대통령 각하』 역시 대학생이던 1922년 초안을 구상하기 시작해 193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탈고했지만, 1946년에야 멕시코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할 수 있었다.

 아스투리아스의 작품은 꿈과 현실을 오가는'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는 매우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그것을 통해 신화적이고 마술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마야-키체족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포폴부>를 번역하기도 했던 아스투리아스는 마야-키체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지키고,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쓰는 데 평생을 바친 작가이다.

 그의 주요 작품은 스페인 사람들이 상륙하기 전 마야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묘사한 <과테말라의 전설 Leyendas de Guatemala>(1930)로, 조국인 과테말라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과테말라로 돌아가 라디오 잡지와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그가 소설가로서 재능과 영향력을 나타낸 것은 외교관으로 일하던 이 시기였다. 과테말라의 독재자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를 강력하게 비난한 작품 『대통령 각하』(1946)를 시작으로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옥수수의 인간들>(1949)에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지경에 빠진 한 원주민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 1965년에 [레닌 평화상]을, 196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과테말라 전 대통령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 (1898-192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가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1892년부터 1920년까지 22년간 과테말라를 독재 통치한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 정권을 배경으로 하는 것임을 강력히 암시한다. 작품의 제목은 ‘대통령 각하’이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대통령의 심복으로 작가 자신의 이름과도 비슷한 ‘미겔 카라 데 앙헬’이라는 인물이다)

 앙헬은 사탄과 천사의 두 얼굴을 가진 이로 대통령의 정적인 에우세비오 카날레스 장군을 지능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파견된다. 그러다가 앙헬은 카날레스 장군의 딸인 카밀라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앙헬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육체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대통령 심복으로 해야 할 역할 수행에 대한 양면적 감정으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현실의 약육강식 생존 원리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조금씩 열망하게 된다.

 결국, 앙헬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대통령의 정적인 카날레스 장군의 딸인 카밀라와 결혼식을 올려 대통령의 분노를 산다. 이후 대통령은 그에게 워싱턴 특사 역할을 제안하는데, 그는 제안을 대통령에게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워싱턴 특사 제안은 대통령의 교활한 계략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난다. 결국 앙헬은 비밀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감옥 속에서 카밀라가 대통령의 연인이 되었다는 거짓 정보를 듣고 절망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 간다.

 

과테말라 소설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Miguel Angel Asturias, 1899~1974)

 

 장편소설 『대통령 각하』는 1967년 중남미에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차지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표작이다. 아스투리아스가 노벨문학상을 받던 1967년은 보르헤스,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등이 서방에 알려지면서 열렬한 호응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다. 이들 중남미 작가들은 자국의 신산한 역사적 현실과 구전되던 민담을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적 미학과 조우시킴으로써 현실 고발을 단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심층적 의미를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세계 문학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이런 흐름의 물꼬를 뜬 작가가 바로 아스투리아스다.

 이 작품에는 아무도 믿지 않고 교활하고 치밀한 감시망을 통해 통치하는 대통령 각하, 그리고 각하와 대칭을 이루는 카날레스 장군, 잔인한 독재의 하수인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국방 법무감, 한때 자신을 구해 주었던 앙헬을 체포함으로써 출세를 도모하는 파르판 소장, 각하의 적이 된 형을 부인하고 조카를 외면하는 후안 카날레스, 친구와 함께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앙헬을 감시하라는 제안을 받고 파르판 소장의 조수로 일하게 되는 헤나로 로다스 등 많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통적인 코드는, 비열하고 잔인한 권력의 속성과, 그런 권력에 대한 공포와 생존 본능으로 지탱되는 대통령 각하의 지배 체제다. 이 작품은 과테말라의 계속되는 독재 정권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있다가 1946년에 이르러 멕시코의 작은 출판사에서 작가의 사비로 출판되었다.

 

 

 아스투리아스는 1923년 과테말라대학에서 법학학위를 받은 뒤 파리에 정착하여 소르본대학에서 민족학을 공부했다. 앙드레 브르통의 영향을 받아 열렬한 초현실주의자가 되었다. 아스투리아스의 작품은 꿈과 현실을 오가는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는 매우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그것을 통해 신화적이고 마술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장편소설 『대통령 각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와 그의 비위를 맞추며 부와 권력을 누리는 고위 관리들, 그 밑에서 신음하다 죽어가는 국민의 처참한 실태를 그린다. 권력자를 찬양하는 공지문이 발표되면 대중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정신병자나 반역자로 몰려 죽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민들은 희생되고 최측근이던 주인공도 권력자의 눈 밖에 나자 비참하게 버려지고 참혹하게 죽어간다. 언젠가 북한의 김정은이 수해 지역에 새로 지은 주택단지를 돌아보며 대만족했다는 방송 뉴스에서, 검게 그을리고 비쩍 마른 주민들은 한복까지 입고 나와 마을 잔치를 벌였고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님, 새집을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