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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무녀도(巫女圖)』

by 언덕에서 2022. 11. 28.

 

김동리 단편소설 『무녀도(巫女圖)』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36년 [중앙] 지에 발표되었다. 이후 김동리는 1978년 [문학사상] 지에 제목을 <을화(乙火)>라 고치고 중편으로 개작하여 발표하였다.

 단편소설 『무녀도』는 원래 「중앙」에 발표된 이래 1947년 판 단편집 <무녀도>에서, 1967년 판 <김동리 대표작 선집>에서, 각각 개작(改作)되었고 1978년 장편 <을화(乙火)>로 완전히 개작되었다. 원작 『무녀도』에서는 욱이는 살인범이며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무당 ‘모화’와 그의 딸 ‘낭이’, 씨 다른 오빠 ‘욱이’가 등장하여 사건은 주로 모자 사이에 벌어진다. 낭이는 벙어리로 그림을 그리고, 욱이는 어려서 가출하여 각지를 전전한 후 예수꾼이 되어 돌아온다. 모화는 아들은 사랑하나 예수교를 죽도록 싫어했다. 어느 날 밤 욱이가 잠결에 품에 넣고 자던 성경책이 없어진 것을 알고 부엌으로 뛰어가 보니, 모화가 성경책을 불사르며 객귀를 쫓고 있었다. 결국, 욱이는 ‘예수 귀신’을 몰아내려고 치성을 드리는 모화의 칼에 찔려 죽고 그 후 모화도 굿을 하던 중 깊은 늪에 빠져 자살과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1972년에 최하원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2018년에는 안재훈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영화화되었다. 

 

영화 [무녀도( A Shaman'S Story)] , 1972

 

 줄거리(1967년판 <김동리 대표 선작>의 내용)는 다음과 같다.

 우리 집에 있는 무녀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경주 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집성촌 마을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였다. 그녀는 세상 만물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굿이 그 전부였다. 그녀의 식구는 넷이었는데, 남편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바닷가로 나가 혼자 해물 장수를 하고 있었고, 아들 욱이는 무당의 사생아로서 동네에서 배겨나기가 힘겨워, 몇 해 전에 마을을 나가고 없었으므로, 집에는 그녀와 고명딸 낭이의 두 모녀가 앙상히 살아가고 있었다. 낭이는 귀머거리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그림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렸다.

 한편 모화는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낭이를 소중히 했다. 모화는 낭이를 낳을 때의 태동으로 짐작해서 낭이를 용신(龍神-용왕) 딸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욱이가 돌아왔다. 모화는 기뻐서 아들을 안고 울었다. 그러나 이윽고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그녀는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데,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으며,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판단했다. 그는 하나님께 어머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잘 때도 언제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잤다. 어느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다. 때마침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머니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성경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그는 부리나케 뛰어나가 성경을 뺏으려 했다. 그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아왔다. 그녀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기어코 세 군데에 칼을 맞고 넘어졌다. 그녀는 그로부터 두문불출하고 아들의 상처를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가 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자들은 무속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목사가 주선해서 세웠다. 그러나 욱이는 기어코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예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 쫓는 주문을 외었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외아들을 잃은 데다가 예수교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그녀가 이제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 용신에게 귀의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기 위해 여인이 죽은 못 속으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꼭지 물이 가까운 곳까지 가서는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봄철에 꽃 피거든 낭이 더러 찾아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떤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화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났다. 이후 그들은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얘기하고는 대가를 받으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영화 [무녀도( A Shaman'S Story)] , 1972

 

 이 작품은 범신론적 사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무녀 모화가 기독교도인 아들 욱이와 갈등하다가 결국 욱이를 찔러 죽인 뒤 자신도 신이 들려 물에 빠져 죽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그들의 삶이 낭이를 통해 그림으로 재현됨으로써 신비감을 더한다. 우리의 재래적 토속 신앙인 무속 세계가 변화의 충격 앞에서 쓰러져 가는 과정을 그렸다. '무녀도'라는 그림에 담긴 한 무녀의 삶과 죽음을 중심 제재로 한 이 작품은 소멸해 가는 것의 마지막 남은 빛에 매달려 이를 지키려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동리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토속적ㆍ신비적 분위기를 주조로 하고 있다. 『무녀도』는 토속적 배경 위에 괴기함을 동반한 샤머니즘적인 신비성을 형상화해 내는 작품이다. 인물의 설정에서부터 토속적ㆍ신비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흔히 이 소설은 재래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평가한다. 모화로 대변되는 무속 신앙과 욱이의 기독교 신앙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갈등과 비극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이들 모자는 자기의 영역과 신념을 지키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서구적인 문물이 재래의 가치관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던 개화기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화의 세계는 그녀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없이 새로운 세계의 힘으로 위축ㆍ소멸하여 가는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다.

 

 

 모화는 그녀의 영역 세계를 지키는 데 실패했으며, 그 실패가 필연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모화와 욱이의 충돌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서구의 사상인 기독교의 대립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만, 모화의 죽음을 단순히 샤머니즘의 패배로만 연결할 수는 없다. 양자가 대립할 경우, 샤머니즘의 패배는 자명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화의 죽음은 기독교가 상징하는 서구 문화에 대항하는 한국 고유 사상의 역설적 삶의 한 양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혼령을 통해 인간이 만물과 교류하고 조화할 수 있다는 사상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무녀도』는 우리의 전래 토속 신앙인 무속과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한 모자간의 대립. 갈등을 다루고 있다. 즉, 기독교로 대표되는 외래문화와 무속으로 대표되는 토속 신앙 간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결국은 토속 신앙이 패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욱이의 죽음은 교회의 설립이라는 미래를 제시하는 죽음이며 상대적으로 모화의 죽음은 외래 신앙인 기독교 사상이 퇴조할 수밖에 없다는 시대 조류를 나타내는 비극적 죽음이다. 한쪽은 승리의 죽음이요, 한쪽은 패배의 죽음이다.

 한편 이 작품은 탐미주의적 에로티시즘이 깔려있다. 모화의 장단에 맞추어 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나체춤을 추는 낭이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는 작가가 샤머니즘의 세계를 미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효과적인 무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