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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유정 단편소설 『소낙비』

by 언덕에서 2022. 11. 22.

 

김유정 단편소설 『소낙비』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소설로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원제목은 '따라지 목숨'이었는데 신문사에서 발표 당시 『소낙비』로 제목을 바꾸었다.

 『소낙비』는 ‘따라지 목숨’이라는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을 버리고 타관으로 떠도는 1930년대 한국 유랑 농민의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그리면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가난한 농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식민지 치하에서 농촌 생활의 가난과 윤리관에 대한 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보편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김유정이 어려서부터 성장한 곳이 ‘강원도 춘성군 신남면 중리’이므로 그쪽이 지리적인 배경일 것이다.

 주인공인 춘호의 아내는 정숙한 여인으로 순박한 시골 아낙네다. 남편은 생활력이 강하지만, 워낙 가진 것이 없으므로 고민 끝에 노름판에 가서 한밑천 잡아 서울로 갈 생각을 한다. 아내를 부잣집 이 주사에게 매춘시켜서라도 노름 밑천을 잡을 생각을 한다. 돈 2원으로 인해 남편의 무자비한 매질과 극도의 궁핍으로 매음을 할 수밖에 없는 아내가 소낙비라는 매개 속에 더욱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독히도 가난한 춘호 부부는 정상적인 생황에서는 도덕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죄의식 없이 행동했다. 일제 치하의 구조적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김유정은 당시 농촌의 서글픈 삶의 단면과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부조리한 관계를 해학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소낙비] 1995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뭄과 흉년으로 빚을 진 춘호는 삶의 터전인 농토를 떠나 아내와 산골 마을로 찾아든다. 그들은 서울로 올라가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다. 춘호는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2원만 있으면 노름판에서 한밑천 잡아 빚이나 대충 갚고 서울로 떠나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2원만 변통해 오란데도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춘호는 지게 작대기로 아내의 연한 허리를 후려치자 황급히 싸리문 밖으로 내달으며 쇠돌 엄마에게 다녀온다며 나간다.

 쇠돌 엄마는 처음에는 춘호 아내와 같이 천한 농부의 아내였으나, 어쩌다 동네 부자인 이 주사와 배가 맞은 뒤로는 금 방석에 뒹구는 팔자가 되었다. 지난 늦은 봄, 춘호가 없을 때 이 주사가 춘호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춘호 아내는 쇠돌 엄마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데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레 얼굴이 뜨뜻하여지며 죄나 지은 듯 어색하여 죽어도 이 주사네 집에 아니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크게 마음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려는 것이다. 무던히도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소낙비가 몸에 들여 치며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 올랐다. 그때 이 주사가 쇠돌 엄마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쇠돌이네 집에 이 주사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짐짓 쇠돌 엄마를 부르는 척한다. 이 주사가 나오자 춘호 아내는 소낙비가 쏟아지는 낮에 몸을 허락하고는 돈 2원을 약속받는다. 아내가 생쥐 꼴로 집으로 돌아오자 입도 벌리기 전에 춘호는 주먹을 휘두른다. 아내는 기겁하며 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의 태도가 돌변한다. 부부는 불시로 화목하여지며 서울 갈 일에 들뜬다. 춘호는 내일 밤 2원을 가지고 노름판에 가서 돈을 깡그리 딸 생각을 하니 기뻤다. 밤새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아침에야 겨우 그쳤다. 춘호는 아내를 곱게 단장시켜 어제 이 주사가 약속한 돈 2원을 받으러 내보낸다.

 

영화 [소낙비] 1995년

 

 『소낙비』는 농토를 빼앗긴 유랑 농민 부부가 매춘을 벌인다는 비극적 이야기다. 아내가 매춘녀이고 남편은 포주다. 이 모습은 농민이 농토 빼앗기고 농토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살상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유랑 농민이 당하는 궁핍에의 도전과 좌절을 통해 식민지 백성의 참상을 제시한 것이다.

 작중 인물들은 성실하게 살려고 했으며,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다. 그들은 생활의 보금자리를 갖겠다는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매음을 재촉하고 아내는 매음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의 태도이다. 남편은 매질해서 아내를 매음 길로 내보낸다. 그의 아내 역시 매음을 모욕과 수치로 여기면서도 남편에게 매 맞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양치 않겠다는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빈곤하다지만 자기의 아내에게 몸을 팔게 하는 행위나, 몸을 팔아서라도 숨돌리고 살아 보려는 아내의 행위는 보편전인 윤리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극도의 가난 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춘호 내외의 윤리 의식 결여를 탓하기에는 그들의 무지와 빈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탐욕과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음을 사주하거나 아내를 매매하는 경우는 김유정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춘호처럼 돈에 대한 허망한 탐욕에 이끌린 남자들은 아내를 가축이나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성을 생계 수단으로 이해하면서도 하등의 도덕적 수치감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만무방>과 같이 빈곤 때문에 도덕성이 압살당하는 사회적 아픔을 페이소스(pathos) 짙게 그려 낸 작품이다.

 

 

 『소낙비』는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 의식조차 마비시키는 삶의 어려움과 그 삶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불성실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린 소설이다. 이를테면, 노름판에서 돈을 잃으면 여편네를 잡히는 것과 같은 남존여비의 관습적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춘호는 노름 밑천 이 원을 장만키 위해 어린 아내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있고, 그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강요를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받아들여 이주사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주사를 상대로 매음하는 그녀의 태도는 어떤 적극성조차 띠고 있다. 춘호의 아내는 정조야 어떻게 되건 남편한테 맞지 않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이라는 회상으로 정조 관념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들 인물에 나타난 윤리 의식의 결여는 무지와 빈곤에서 빚어진 '도덕성 이전의 원형적 인간성'으로 본능적인 생존 욕구로도 볼 수 있다.

 김유정 문학의 특색은 채만식의 경우와 같이 한국적 체취와 서정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깝게 서른 살을 채 살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로서, 소박한 농촌의 일꾼들이다. 이들 인물을 유머러스하게 관찰하여 한국인 고유한 슬픔과 즐거움을 표현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 세계는 봉건적이고 토속적인 인간의 갇혀 있는 욕구가 주제를 이룬다.

 2년 동안에 창작한 그의 단편 30여 편 중에 김유정이 우리 문학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게 되는 것은 <동백꽃>, <봄봄>, 『소낙비』, <가을>, <산골 나그네> 등 몇몇 작품 때문이다. 이 작품 중 <봄봄>, <동백꽃>과 같은 해학성으로 집약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소낙비』, <가을>, <산골 나그네> 등은 해학과 아이러니 외에도 서글픈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작품에 전개되는 사실성은 과장 없는 문체로 삶의 현실에 압도당하지 않는 객관화된 현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