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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염상섭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by 언덕에서 2022. 11. 24.

 

염상섭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의 단편소설로 1921년 8월에서부터 10월에 걸쳐 [개벽] 지에 발표한 처녀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단편소설로 일컬어지는 중요한 작품이다.

 3ㆍ1운동을 전후한 시대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무렵의 어두운 현실을 냉철히 관찰한 작품으로, 당시 지식인들의 창백하고 무기력한 고민과 우울한 심경을 ‘나’와 ‘김창억’이라는 두 주인공을 통해 해부한 것 이외에 인간을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비유하여 염세적ㆍ퇴폐주의적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뛰어난 묘사의 사실성이 문장의 특징이며, 의식이나 심리, 관념의 세계를 감각적 표현으로 바꾸어 형상화하는 수법을 구사하여 후기의 완만하고도 정공법적이며 평면적 문체와는 달리 생기와 멋이 깃든 문체를 보여 주고 있다. 일인칭으로 쓰인 이 작품은 ‘나’라는 주인공이 중학교 때 청개구리를 해부하던 기억을 되살려 올리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3ㆍ1운동을 전후해 시대적으로 어려웠을 때 어두운 현실을 냉철히 관찰한 작품으로 지식인의 고뇌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동물학에서 포유류와 조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은 냉혈동물이다. 즉 양서류인 개구리의 오장에서 김이 날 리가 없다. 물론 작가가 단순하게 과학적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개구리 해부가 '나'에게는 상식이 뒤틀릴 정도의 끔찍한 기억이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주류다. 이 작품은 뛰어난 묘사와 사실성, 의식이나 심리, 관념의 세계를 감각적 표현으로 바꾸어 형상화한 점이 특징이다.

 

KBS-TV 문예극장 [표본실의 청개구리] 1979년 8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 의식에는 중학 시절 실험실에서 해부하던 청개구리의 모습이 늘 따라다닌다.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 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를 떠올리며, 해부대 위에 올려진 개구리의 모습이 꼭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해부대 위에 놓여 핀으로 찔려 아직 숨은 붙어 있지만, 죽을 운명이며, 자극에 고통스럽게 반응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 주인공은 무력감과 번민 속에 날을 보낸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이 목을 죄는 듯하고,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위협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나'는 친구의 권유로 평양 여행을 가게 된다. 거기서 김창억이라는 미친 사람을 만난다. 김창억은 35전으로 삼층집을 짓고 거기에 ‘동서친목회’라는 이름의 ‘세계 평화를 위한 단체’를 만드는 등 환상과 공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물론 그가 횡설수설하는 말속에는 번쩍이는 기지와 진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영리한 김창억은 경성에서 사범학교에 다니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기울어져 가는 가정 형편과 어머니의 병과 죽음으로 시련을 겪은 그는 희망을 잃고 서러움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가 부인마저 죽어 그 슬픔이 더욱더 깊어지고, 술과 방랑의 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얼마 뒤 건강을 회복하고 나이 어린 부인을 얻어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한 일은 그의 운명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4개월간의 옥살이는 가뜩이나 약한 그의 신경을 바늘 끝과 같이 예민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그동안 젊은 아내가 집을 나가 버렸다. 그는 짧은 일생 자기에게 닥친 여러 가지 시련으로 정신이 약간 돌아버리고 만다. 그는 삼층 누각 같은 집을 짓고 거기에 들어앉아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단체라며 ‘동서친목회’라 이름을 짓고 아무렇게나 지은 집을 신식 집처럼 여기면서 때로 세상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횡설수설 설교를 해 대면서 산다.

 서울로 돌아온 뒤 얼마 있다가 '나'는 김창억이 그 삼층집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나'는 이 미친 사람에게 깊이 공감한다. 세상의 파도에 시달려 현실을 잊어버리고 환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김창억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횡보 염상섭 ( 廉想涉 . 1897 ∼ 1963)

 

 주인공 ‘나’는 ‘김창억’에게 깊이 공감한다. 세상의 파도에 시달려 현실을 잊어버리고 환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김창억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는 해부대 위에 올라 있는 청개구리를 통해 자신의 심리를 보여 주고, 김창억이란 인물을 통해 인생의 허무와 고뇌를 보여 주고 있다.

 왜 작가는 이처럼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그려냈을까.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관계가 있다. 이 작품은 1921년에 발표되었는데, 3ㆍ1운동이 일어나고 2년 뒤이다. 이때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3ㆍ1운동의 실패와 교묘한 일제의 통치 아래서 고통스러워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죽음이나 인생의 허무 등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염상섭도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현실을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보았다고 판단된다.

 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고통과 불안의 분위기'는 바로 시대와 인간의 삶을 고민했던 작가 염상섭이 그려낸 진실의 세계였다. 그런 진실이 있기에 이 작품을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이 단편소설에서 커다란 생의 의미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부여해 본 듯하다. 작중 인물로 ‘김창억’이란 (그의 생활 환경에서) 정신이상자가 된 인물을 등장시켜 그의 비정상적인 정신 행동과 언사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으려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문단 최초의 자연주의적이며 사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으나 오히려 그보다는 염세적인 자기혐오와 인간 혐오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초창기 문단에 새로운 개척 분야를 제시한 작품으로 적지 않은 연구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근대문학에서 처음으로 ‘심리 분석적 방법’을 시험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당시 최고의 소설가 김동인은 이 작품을 가리켜 ‘과도기 청년이 받는 불안과 번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문학평론가 백철은 ‘신비주의적인 현실 도피의 환상 세계’를 그린 것이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자연주의적인 작품’, ‘실험 소설적인 방법론을 시험한 작품’으로 평가해 왔다.

 이 작품의 '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있으며 거대한 힘에 억눌려 침체한 기분과 삶의 권태를 느끼고, 김창억은 불의의 현실로 인해 광인이 된다. '나'와 김창억은 정신의 깊은 상처를 입고 방황하는 인물이다. 이들과 같이 그 당시 그 시대의 아픔을 가진 자는 방랑자가 되어 살거나 광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숙명을 지닌다. 즉, 이 작품은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가 김창억이라는 인물을 만나 겪은 내용을 중심으로, 무기력에 빠진 식민지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다. 개구리 해부 장면, 김창억이라는 인물. 그가 지은 삼층집의 의미 등 여러 제재가 고도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난해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