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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 단편소설 『봉별기(逢別記)』

by 언덕에서 2022. 11. 30.

 

이상 단편소설 『봉별기(逢別記)』

 

 

 

이상(李箱, 김해경. 1910∼1937)의 자전적 일인칭 단편소설로 1936년 12월호 [여성] 지에 발표되었다. 작자는 1936년에 이르러 창작 경향이 시에서 소설 쪽으로 기울어졌는데, 이 해에 <날개> <종생기(終生記)> 『봉별기』 <지주회시(蜘蛛會豕)> <실화(失花)> 등의 대표적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로 제목 ‘봉별기(逢別記)’는 첫 여인인 금홍(錦紅)과의 ‘만남(逢)에서 헤어지기(別)까지의 기록’이란 뜻을 갖는다.

 나이 23세 3개월인 ‘나’ 이상(李箱)이 폐병 요양차 B 온천장으로 가서 작부 금홍을 만나 동거하고, 이별과 동거를 거듭하면서 끝내는 다시 “작부가 된 그녀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영원히 헤어지기로 서로 합의를 본다”라는 그의 첫 아내 금홍과의 생활 경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이상이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난 후,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화가인 구본웅과 요양차 백천(白川) 온천에 가서 기생 금홍(본명 蓮心)과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지기까지의 경위를 그리고 있다. 결핵을 앓는 상태에서 금홍과의 결혼 생활 3년은 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으므로, 이 내용을 다룬 『봉별기』 역시 이상 문학의 현실적 측면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본웅이 그린 [여인상], 이상의 여자 '금홍이'를 모델로 했다는 주장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물세 살인 나는 폐결핵약을 지어 들고 요양차 온천으로 간다. 거기에서 금홍(錦紅)이를 만난다. 금홍이는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으나, 나는 금홍이를 사랑하는 데 열중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랑의 힘으로 각혈이 다 멈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프랑스 유학생 우(寓)를 금홍이에게 권하여 ‘독탕’에 같이 들게 하고, C라는 변호사에게도 권한다. 금홍이는 우(寓), C에게서 받은 십 원 지폐를 자랑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를 한다.

 이후 나는 금홍이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 1년 8개월 뒤에 금홍이는 다시 외도를 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이해한다. 금홍이는 이런 남편 주위에서 왕복 엽서처럼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절제를 잃은 삶 때문에 건강이 더욱 악화하고 중태에 빠진다. 그 소식을 듣고 금홍이가 와서 병구완한다. 그리고는 금홍이는 집을 나가고 둘은 마침내 헤어지고,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 뒤 금홍이가 서울로 찾아오고 나는 술상 앞에서 영변가를, 금홍이는 육자배기를 부르면서 이별을 한다.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2)

 

 왕복 엽서처럼 부단히 왕래하는 『봉별기』의 아내 ‘금홍’이의 존재는 현실의 일상성을 의미한다. 창녀 금홍이는 맹목적인 일상의 여러 행동에 지배된 인간이어서 수시로 거짓과 간음과 출분(出奔)을 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러한 혐오할 만한 존재에 대한 ‘나’의 너그럽고 따뜻한 관용의 태도이다.

 ‘금홍이의 모양은 뜻밖에도 초췌하여 보이는 것이 참 슬펐다. 나는 꾸짖지 않고 맥주와 붕어과자와 장국밥을 사서 먹어 가면서 금홍이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헤어진 ‘금홍’이가 다시 돌아올 때도 관용의 태도를 베푼다.

 ‘금홍이는 역시 초췌하다. 생활전선에서의 피로의 빛이 그 얼굴에 여실하였다.’

 그는 돌아온 아내의 얼굴에 떠도는 일종의 고독과 피로를 이해한다. 허망한 일상성에 대해 부드럽고 따뜻한 이해, 이러한 심정이 발전하면, 일상성의 현실을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어떠한 받아들이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 아닐까. 확실히 독자는 『봉별기』 전편에 떠도는 이상하고 훈훈한 정을 놓칠 수 없다. 말하자면, 집을 나간 아내에 대한 준엄한 선언과 그 허망함에 대한 그의 아이러니한 증오와 힐책이 나타난 ‘이유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독자는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며 <날개>와 함께 그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그는 실제로 한때 폐병을 앓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백천 온천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기생 연심이를 알게 되어 애정을 갖는다. 그녀는 뒤에 이상이 경영하는 다방 ‘제비’의 마담이 되었고, 그 밖에도 상당한 이야기를 뿌린 바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연심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 『봉별기』는 이상의 소설 가운데 가장 쉽게 읽히는 작품으로, 대체로 평범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잠재의식을 표출시킨 부분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지문과 대화도 아주 명쾌하게 구별되어 있다.

 <날개>와 함께 기생 연심과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날개>가 ‘나’와 ‘아내’의 자의식의 갈등을 그린 것이라면 『봉별기』는 작품 속의 금홍과 만나고 헤어짐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금홍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에 지배된 인간이어서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간음하고, 도망간다. 그러나 이 부정하고 불성실한 금홍을 ‘나’는 너그럽고 따뜻한 관용의 태도로 맞는다. 그는 아내의 고독과 피로를 이해한다. 혐오할 만한 존재인 금홍, 그러나 ‘나’는 그 존재를 차분하고 정답게 대해 준다. 도망간 금홍이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깊은 밤에 술을 마신다. 금홍은 육자배기를 부르고, 나는 영변가를 한마디 한다. 구슬프면서도 괴로운 대좌(對坐)이다.

 주인공 두 사람은 삶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떠는 약하디약한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의 따뜻함과 차분함은 그렇다고 간음한 아내를 용서하는 관용은 아니다. 나와 전연 별개로 구분되는 금홍에 대한 동정과 너그럽게 용서하는 상태, 이해의 상태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