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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염상섭 단편소설 『임종(臨終)』

by 언덕에서 2022. 11. 18.

 

염상섭 단편소설 『임종(臨終)』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이 1949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객관적인 사실주의가 주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염상섭은 주로 중산층과 세대 간의 몰락 문제를 한반도의 식민지적 상황 안에서 그려낸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로, 이광수와 함께 카프 문학에 대항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임종에 처한 환자의 모습과 가족들의 정황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환자의 삶에 대한 집착과 가족들의 모습, 관습 등을 분석적으로 묘파(描破)한 수작이다.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를 최초로 받아들인 염상섭은 전 생애를 통해 변함없이 한 방향으로 작품활동을 하여 사실주의를 지속ㆍ발전시켰다. 그의 문학적 특성은 사상을 표현하려 하지 않고 사상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실주의적 작법이란 단순히 대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물의 인과관계를 냉철하게 따지는 합리주의적 사고, 자기 자신의 내부까지 숨김없이 해부하는 자기 성찰적 사유, 그리고 총체성을 지향하는 서사 의식 등이 어우러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문학의 양대 화두는 민족과 자본주의였다. 그것은 주로 애욕과 일상이라는 표상을 통해 다루어졌다. 그에게 있어 애욕은 사회를 지배하는 작동원리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돈’이 놓여 있다. 염상섭은 애욕에 지배되는 삶, 곧 사물화된 삶을 주로 일상의 미시적 국면을 통해 포착한다. 염상섭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근대사회의 본질을 꿰뚫은 작가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의사가 없으면 약이라도 지어올 일이지, 사람이 성의가 없어”하며 침대 위에 간신히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은 병인(병자)은 위독한 사람답지 않게 또렷한 정신으로 또랑또랑 말한다. 입원하기 전에는 맞지 않는다고 물렸던 한약을 지어오라는 병인의 성화에 아우 명호는 어제와 오늘 두 번이나 들른 의사가 시골에 출장을 가서 만나지 못한 경위는 말하지 않고 퇴원부터 하고 의사는 저녁때에나 불러오자고 말한다.

 한사코 한약을 지어 퇴원하자는 병인의 가족들은, 이제 남의 고통은 조금도 몰라주는 환자의 등쌀에 동정과 성의보다는 눈치와 체면을 차리기에 급급하다. 집안사람들은 병인이 병원에서 객사하는 것보다야 집에서 초상 치르기가 훨씬 편하다는 속셈만으로 퇴원을 서두른다. 다만 병인의 말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어온 퇴원이었다. 완연히 악화하여 산 사람과의 교섭이 차츰 힘들어지니, 산 사람들의 애정도 한 꺼풀 꺾인 것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두 달이 넘도록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아내까지 이제는 진력이 나서 병원에서 나가고만 싶다.

 그러나 병인은 원체 좋은 체격과 튼튼하던 완력 때문에 지치고 야위었지만, 그렇게 쉽사리 훌쩍 죽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앓는 사람은 동정과 애정과 성한 사람의 성의에 매달리고 애원하며 역정을 낸다. 아이들의 교육과 취직 걱정이며, 생활 방도를 의논하기도 하는 것도 실은 자신이 금방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C라는 위문객이 와서 XX 재단을 설립하는 중에 그를 재단 부사장으로 추대할 듯하다는 이야기에 힘써 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욕도 가지고 있다.

 내일이면 퇴원할 예정인데, 정맥 주사를 놓고 나온 의사는 약을 빨아들일 힘도 없음을 명호에게 알리고 오늘 중에 퇴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말을 환자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쑤군거리니, 환자는 노려보며 초조해하는 기색이다. 차도가 있어 퇴원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얼버무린 명호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퇴원해서 한약을 한번 먹어보자고 말한다. 병인이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마음을 놓는다. 형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호는 한약 세 첩을 지어 병인을 안심시킨 다음 퇴원시키기로 한다. 그동안 성당에서 와서 성수를 준비하였다는 말을 듣고 명호는 놀란다. 원래 불교를 좋아하는 병인이 세례를 받도록 했다니, 말이다.

 들것에 실어 환자를 옮기려는데, 병인을 자동차 안의 시트에 들어 누이자 눈자위가 뒤틀리면서 숨을 넘기려 한다. 급히 간호부를 불러 강심제 주사를 한 대 놓아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한 후 병인은 숨을 거두었고, 장례 준비가 끝난 집에는 병풍 하나만 남겨진 채 정돈된 빈소 옆방에서 과수댁이 된 병인의 아내는 부리나케 보따리를 풀고 무엇을 찾는다. 명호가 반나절 걸려 땀을 흘리면서 지어 온 약봉지가 먼저 방바닥에 떨어졌다. 시신 주위에 성수를 뿌리는 형수에게 제사를 폐하겠느냐고 묻자, 형수는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고인이 평소 화장을 해 달라고 했던 유언은 선산 산소 곁에 묻히고 싶어 했으니 그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불교를 믿는 제종형은 문상 와서 한참을 울다가 손수 베낀 경문을 병인의 관에 끼워 넣는다.

 

 

 시종일관 세정(世情)과 서민 의식을 사실주의의 기법으로 역작들을 남겼던 횡보 염상섭은 40년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장편 28단편 150여 편 등 한국 근대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한국문학은 그에 이르러서야 근대문학으로서의 명실상부한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이인직이광수에게서 보이던 전근대성이 일소되고 근대적 사유와 근대적 서사가 작품 전체를 규율하게 되는 것이 그에 와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무엇보다 사실주의적 작법을 정착시킨 작가이다.

 염상섭은 인생과 사회를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입장에서 관찰했고, 사회성 위에서 기록했다. 그의 문학이 폭넓은 근대 문학적 특성을 내포한 사실주의, 성(性) 근대 도시 문학이 된 이유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전형적인 사회 문학이 되었고, 풍자적 전통성을 내포한 민족 문학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게 되었다.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가능성이야말로 그의 문체와 함께 가치를 지닌 부분이다. 그 문체적 특징은 정통 산문을 계승할 수 있게 했고, 기록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했다.

 근대문학사에서 염상섭의 소설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리 간단하게 언급될 수 없다. 그는 서울 중산층 특유의 단아한 언어와 많은 어휘력을 바탕으로 관찰을 통한 꼼꼼한 묘사에 치중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작품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임종』은 인간의 속성과 본능적 욕구를 사실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죽음 즉, 임종을 앞 둔 인간이 저지르는 부질 없는 욕심과 (병인을 향한) 가족의 다양한 행태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명호의 형은 고혈압과 심장병으로 입원했다. 생명을 연장하는 주사의 힘으로 목숨을 지탱한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퇴원도 겁이 났으나, 죽은 후 장례를 치를 비용도 걱정이다. 소생의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안 식구들은 조속히 퇴원을 시키고자 한다. 오랜 입원비를 치를 경제적 여력이 없는 형편과 집에서 죽게 해야 한다는 체면 때문에 두 달 동안 실랑이 끝에 결국 퇴원했으나, 환자는 도중 차 안에서 숨진다.

 죽은 이는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자기 병이 회복되기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하여 있음을 알면서도 살고 싶다는 인간적인 본능은 마침내 그를 이기주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죽음을 앞둔 그는 방문객이 들려준 어떤 단체의 재단 이사장직을 탐낼 만큼 욕망이 강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에게 인간적인 숙명마저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