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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인 단편소설 『배따라기』

by 언덕에서 2022. 12. 6.

 

김동인 단편소설 『배따라기』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21년 [창조] 9호에 게재되었다. 작가 스스로가 이 작품부터가 본격적인 단편이라고 주장한 작품으로, 전설에서 취재한 대표적인 낭만적인 유미주의 계열의 소설이다. ‘배따라기’란 ‘배 떠나기’란 춤의 일종이다.

 애조 띤 서정이 작품 전편에 넘쳐흐르고 단편으로서의 짜임새가 비로소 완벽한 경지에 이른 김동인의 초기 자연주의의 대표작이다. 작가 자신도 이 단편이 “여(余)에게 있어서 최초의 단편소설(형태로든 양으로든)인 동시에 조선에 있어서 조선글, 조선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일 것이다”라고 자부하였다.

 오해가 빚은 형제간 관계 파탄의 이야기로, 양순하고 다정다감한 아우와 붙임성 있으면서도 성미 급한 형수, 선량하나 난폭한 형, 이들이 오해로 인해 불행을 맞이한다. 이러한 내용 전개 속에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거기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가 함께 서린 작품이다.

 

평양 대동강변(사진 출처: 평화문제연구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좋은 날씨다.

 좋은 날씨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대동강으로 봄 경치를 구경 나갔다가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를 만난다. 이제부터 나는 그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다.

 그는 영유 고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어촌에서 살았다. 그의 부모는 모두 그가 어렸을 때 죽었고, 그는 곁집에 사는 그의 아우 부처와 자기 부처뿐이었다. 그들 형제가 마을에서 제일 고기잡이를 잘하였고, 배따라기도 그들 마을에서 그들이 제일 잘 불렀다. 말하자면 그들 형제가 그 마을에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미모가 매우 절색인 데다가 성격도 명랑하고, 천진스러우며 쾌활해서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부렸기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샘을 많이 하였다. 그는 가끔 그의 아내를 발길로 차고 때리기까지 했다. 싸움할 때는 옆에 사는 아우가 와서 말리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아우까지 때렸다. 그가 아우에게 그렇게 구는 데는 그의 아내가 아우를 매우 친절히 대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내를 주려고 거울을 사서 돌아오자 방 안에서는 기이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쥐를 잡는다고 그의 아내와 아우가 옷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겨져 목 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있으며, 그의 아내는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로 늘어져 있다가 그를 보자 매우 당황해하였다. 오해한 그는 자기 아내를 때려 그녀가 바다에 빠져 자살하게 하고 그의 아우는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오해에서 생긴 잘못을 뉘우치고 아우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탄 배가 파선하여 정신을 잃고 물 위에 떠돌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향을 떠났던 아우가 그를 간호하고 있었다. 이때 동생은 형에게 '운명'임을 말하고 떠난다. 그리고는 다시 아우를 만나지 못한 채 그는 유랑 생활을 계속한다.

 모란봉과 기자묘에 다시 봄이 이르러서, 작년에 그가 깔고 앉아서 부러졌던 풀들도 다시 곧게 대가 나서 자줏빛 꽃이 피려 한다. 끝없는 뉘우침을 다만 한낱 '배따라기'로 하소연하는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과 기자묘에서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기고 간 '배따라기'만 추억하는 듯이 모든 잎들이 속삭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소설가 김동인 ( 金東仁 . 1900-1951)

 

 

 1921년 [창조] 9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배따라기』를 김동인은 스스로 매우 뜻깊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젊은 작가로서는 그 당시까지에 있어서의 한국의 단편 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에는 형제간의 우애와 형수와 아우 사이의 우애를 두루 다루고 있다. 작품의 시작에서 작자는 모란봉과 대동강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는 봄의 풍경에 취한 상태를 말하면서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화자는 진시황을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로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작품의 주화와는 일단 구분되는 외화에 속한다. 그런데 외화의 주관적 시점은 실상 내화 또는 주화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구실을 담당하는 듯이 보인다. 외화의 시점이 내화를 보여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내화는 배따라기의 노래를 매개로 하여 뱃사람의 어려움의 운명적인 측면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런 다음에 노래의 주인공이자 내화의 주인공인 형을 만나서 오해로 인한 형제와 부부 사이의 비극적 종말을 가져온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일반적으로 액자소설이란 그 형식 자체가 외부의 이야기를 내부의 이야기로 전환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꾸민 소설을 말한다. 그리고 이로써 작품은 강도 있게 개연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사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배따라기』가 갖는 개연성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은 최초의 개연성을 획득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소한 오해로 불행한 운명에 처한 어느 형제의 삶을 인과론적 원리에 근거하여 사건을 전개하여 동시대 계몽주의 문학의 합리성과 대비되고 있다. 작중 등장인물에 관한 심리 묘사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운명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감이 소설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서도 잡가의 하나인 '영유 배따라기'를 제재로 하여 한 많은 인물의 내력을 엮어 놓았다.

  ‘배따라기’는 '배떠나기'라는 말에서 유래된 서도 잡가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따라기'는 '영유 배따라기'로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 후토 일월성신 하나님 전 비나이다./ 실낱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 - 야 어그야지야. (하략) "라고 시작된다. 이 작품의 핵심 구절은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하는 아우의 말이다. 작자가 바로 이 작품을 쓰게 된 목적도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는 가냘픈 '인간의 비애와 한'을 그리려는데 있다.

 이 작품은 김동인 최초의 한글 표기 단편소설이다. 동인은 이 소설을 ‘조선글, 조선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그 구체적 요인은 곧 『배따라기』가 가지고 있는 소설의 내적 질서이다. 

   이 소설의 경향은 탐미주의적이며, 또 낭만주의적 색채가 짙은 김동인의 실험정신에 근거한 그의 미의 추구가 돋보인다. ‘영유’라는 어촌은 애환이 서린 비극적 공간으로 비극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기에 앞서 비극의 미학을 창출하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배따라기의 구슬픈 가락과 함께 비극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작품은 주인공인 ‘그’의 아내와 아우에게 오해받을 만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구성의 진행에 충분한 개연성도 확보하고 있어 사실성의 강도를 더해준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2019. 08.07

 

김동인의 소설에 「배따라기」(1921)라는 작품이 있다.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한 사내의 기구한 운명담을 듣게 된다.

그 사내는 잘 생긴 동생과 아내와 함께 사는 데, 동생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하게 된다. 어느 날 사내가 장에서 돌아오니 아내의 옷매무새가 풀어져 있고, 동생과 아내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그들의 당황하는 모습에 형은 아내와 동생 간의 간통을 확신하게 된다. 사실은 아내와 동생이 집안에 들어온 쥐를 잡다가 그런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다. 남편의 의심에 아내는 분결에 자살하고 다음 날 시체가 바다에 떠오른다.

 이 사건 후 동생은 집을 나가 뱃사람이 되어 행방이 묘연하다. 수십 년이 흐른 후 형은 동생을 찾았지만 동생은 ‘다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또 떠나간다.

 한 형제의 운명적 비극을 다룬 내용의 소설 「배따라기」는 무당의 굿에서 착상한 소설임이 분명하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소설 「배따라기」의 앞부분에는 당시 무당의 굿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소설 「배따라기」에 실려 있는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나님전 비나이다

실낱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에야 어그여 지여

(중략)

강변에 나왔다가 나를 보더니만, 혼비백산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생신지 꿈인지,

와륵 달려들어 섬섬옥수로 붙여잡고 호천망극하는 말이,

"하늘로서 떨어지며 땅으로서 솟아났다 바람결에 묻어오고 구름길에 쌔여 왔다."

이리저리 붙들고 울음 울 제, 인리 제인이며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중략)

밥을 빌어서 죽을 쑬지라도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 마라

에헤야 어그여 지여……

 

 이 노랫말은 당시 김동인이 보았던 굿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편으로 이 굿 속에서의 노래는 서도 좌창으로도 전해진다. 물론 현재 전하는 서도 좌창 <배따라기>의 노랫말은 김동인의 소설 속의 노랫말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전체적인 의미 구조는 흡사하다. 때문에 김동인의 소설로 보아서도 서도 좌창 <배따라기>는 무가(巫歌)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다. 다른 서도좌창이 한문투의 원전(原典)에서 발전한 수심가 계열의 노래라면, <배따라기>는 기층 민중 사이에서 행해졌던 굿에서 발전한 노래이다. 즉 <배따라기>는 분류상 서도좌창이지만, 다른 서도좌창과는 발생 계통이 다르다는 뜻이다.

 <배따라기>는 원래 ‘배 떠나가기’에서 음이 변한 것이다. 현재 서도좌창으로 부르는 <배따라기>는 평안도 영유지방(지금의 평원군)에서 뱃사람의 무사를 기원하는 굿에서 시작되었다. 가령 1910년대 발간된 여러 가사집을 보면 <배따라기>는 다양한 이본이 존재한다. 위의 김동인 소설의 「배따라기」에서 받는 소리는 ‘에에야 어그여 지여’인데 현재의 받는 소리는 ‘에- 지화자자 좋다’이다.

 노랫말로 본다면 <배따라기>는 서도소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배따라기>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민중들의 굿에서 발전하여 노랫말 내용이 극적인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발전하면 남도의 판소리나 연희극 형식으로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많은 뱃노래의 원형이 보인다는 점이다. 전국의 뱃노래는 지역적 특성보다는 뱃노래 자체의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경상도에서부터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뱃노래가 그 곡조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바다를 통한 뱃사람들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이므로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내륙의 소리가 교통의 단절에 의해 고립적으로 발전하여 이질성이 두드러진다면 뱃노래 계열은 반대로 동질성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소리의 난이도나 기교가 서도좌창 중에서도 최정상에 있다는 점이다. 즉 <배따라기>는 자연스럽게 민중들의 풍어제와 같은 굿에서 시작하여 고급한 서도소리로 발전하였지만, 판소리와 같이 식자층의 지지를 받지 못해 화려하게 개화하지 못한, 때문에 더 발전시킬 소지가 있는 우리의 소리다.

 현행 <배따리기>의 노랫말을 보면 뱃사람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하여,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운 좋게 영좌(선장)와 화장아이(배에서 밥 짓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와 장손 아비는 살아남아 3년 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배따라기> 시작 부분이 소리하는 사람마다 또는 책마다 조금씩 가사가 다르다.

 

 윤회윤색은 다 지나가고(김정연, 『서도소리대전집』)

 이내 춘색(春色)은 다 지나가고(이창배, 『한국가창대계』)

 윤하윤색(潤夏潤色)은 다 지나가고(박기종, 『서도소리가사집』)

 윤하윤삭(閏夏閏朔)은 다 지나가고(최창호, 『민요따라 삼천리』)

 

 이렇게 여러 버전이 있기에 정작 노래하는 사람들도 무엇이 옳은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그다음 가사는 ‘황국 단풍이 다시 돌아오누나’이다. 즉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앞의 내용은 ‘여름이 지나가고’의 뜻이 되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내 춘색’은 ‘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뜻이 되므로 아닌 듯하다. ‘윤하윤색’은 한자의 어법상 맞지 않다. 억지로 해석하면 ‘빛나는 여름과 빛나는 색’이라고 해서 뜻은 통하지만, ‘윤색(潤色)’은 고쳐 다듬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달이 낀 여름’이라는 뜻의 ‘윤하윤삭(閏夏閏朔)’이 내용상으로는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된다.

 특히 <배따라기>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잘 일어나는 일이 아닌 특수한 상황이기에 일반적인 평달이 아니라 윤달이 낀 특수한 달을 앞머리에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면 ‘윤하윤삭(閏夏閏朔)’이 더욱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윤하윤삭으로 표기된 가사는 북한의 평양출판사에서 1995년에 간행한 책에서 나온 것이며, 최창호는 북한의 학자이다. <배따라기>가 원래 북한 지역의 노래이기에 이러한 주장은 조금 더 설득력을 얻는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꾼들은 ‘윤하윤삭’으로 불렀으면 한다. 대부분의 소리꾼들은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그대로 외어 부르지만, 잘못된 가사는 고쳐 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부분 가사는 “윤달이 낀 여름은 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 된다. 서도좌창 <배따라기>는 수심가 조로 끝내기에 서도좌창으로 분류되지만 굿에서 나와 좌창으로 발전한 이색적인 소리이며, <잦은 배따라기> 등의 민요로도 발전한 아주 특이한 소리이다.

 또한 <배따라기>는 소리의 난해도가 높기도 하고, 서사구조가 포함되어 있는 것임으로 해서 앞으로 창극이나 기타 창작극으로 발전시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하겠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이면서 평양 출신인 김동인이 굿 <배따리기>를 보고, 소설 「배따라기」를 창작한 것도 바로 <배따라기>가 가진 서사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