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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장편소설 『염소의 축제(La Fiesta del Chivo)』

by 언덕에서 2022. 11. 17.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장편소설 『염소의 축제(La Fiesta del Chivo)』

 

 

페루 출신의 스페인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 1936~)의 장편소설로 2000년에 발표되었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930년부터 이어진 트루히요의 기나긴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장편소설 『염소의 축제』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도미니카 대통령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1891~1961)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후진국을 혼란과 무지와 야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했고,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 ‘수령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무소불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핑계로,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수많은 탄압을 자행했다. 그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자 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한 독재자 트루히요의 마지막 나날을 기술한다. 그리고  통치자로서 그가 벌인 많은 사건을 나열하며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라는 독재자의 괴변을 짜임새 있게 연결한다.

 작중, 고속도로에서 독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7명의 암살자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트루히요 정권에 의해 삶 전체가 파멸한 사람들로, 이들이 독재의 참혹한 폭력을 겪은 후 보냈던 고통의 나날과 암살자가 되기까지의 번민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제목에 등장하는 ‘염소(el Chivo)’는 도미니카 국민이 트루히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이다. 염소는 번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한다. 트루히요는 과도한 성욕과 남성적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자신의 정력과 국가의 건강을 동일시한다. 그는 각료의 아내와 딸을 비롯하여 많은 여자를 성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확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가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벌이는 방탕한 희생 제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일단의 암살자들에게 독재자 ‘염소’의 죽음은 곧 축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독재자가 벌이는 ‘염소의 축제’는 실패로 끝나고, 독재자의 피를 요구하는 ‘염소의 축제’만이 성공을 거둔다.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1891~196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며 전개된다. 관점과 시간, 공간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우라니아 카브랄의 이야기다. 열네 살의 소녀였던 우라니아는 트루히요가 암살되기 며칠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가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은 30년간 트루히요 체제에 봉사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총애를 잃어버린 각료였다. 우라니아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해후하지만, 그녀의 깊은 상처와 아버지를 향한 35년간의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라니아의 갑작스러운 도피와 그 후 집안의 몰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고모와 사촌들은 그녀를 추궁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마침내 우라니아는 입을 열고, 35년간 간직해온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트루히요의 이야기다. 독재자는 꿰뚫어 보는 시선과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며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을 마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력을 과시하고, 빳빳이 다린 제복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갖춰 입는 그는 뛰어난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민의 위대한 수령이자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로 군림하면서도, 소변이 새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전립선 문제로 고생하는 일흔 살의 노인네이다. 독자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폭군을 따라 그의 욕망과 분노,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마지막 날을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고 지켜보게 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1961년 5월 30일, 독재자가 살해되던 날 밤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7명의 암살자가 트루히요의 차를 기다리며 고속도로에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음모에 가담했지만, 추구하는 바는 단 하나이다. 자유의지를 빼앗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짓밟으며,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독재자를 응징하는 것이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실종과 살인 소식에 분노하는 그들은 모든 개인의 비극과 수치심과 패배 의식의 근원은 바로 트루히요라고 결론 내린다. 암살자들의 회상을 통해 고문과 실종, 납치와 살해 등 폭력으로 얼룩진 도미니카의 독재 시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페루 출신의 스페인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1936-)

 

 이 작품은 독재를 비판하는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우라니아'라는 여성이다. 우라니아는 추잡한 정치적 거래의 희생자이자,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의 제물이었다. 남성 권력이 극대화된 가부장제에 굳건하게 바탕을 둔 독재 정권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간주하고, 그들을 성적으로 짓밟으며 권력을 영속시켜 나간다.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집권기에 성적 결정권을 빼앗기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탄압받은 모든 여자를 상징함과 동시에 독재자에게 치욕 당하고 타락해야만 했던 도미니카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에서 독재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축제의 희생제물이었던 우라니아는 35년간 혼자 억누르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고 난 후 오히려 허탈감을 느낀다. 이는 전통적인 남녀의 성 역할이 전도되었음을 의미하며,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참여도 활발하여 갖가지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청년 시절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이후 자유시장주의자로 전향, 페루 대선에도 출마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주제와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역사, 그리고 개인의 은밀한 성적 욕망을 두루 다루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난 그는 2세 때 외교관인 할아버지를 따라 볼리비아로 갔다. 9세 때 귀국하여 수도원 부설 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52년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를 중퇴한 후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며 문학 경력을 쌓아갔다. 리마의 산 마르코스 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 대학에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볼리비아와 칠레, 페루 사이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고 반부패 투쟁에 속도를 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중도우파 후보로 1990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해 낙선했다. 그 충격으로 1993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여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1994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고, 옥스퍼드, 예일, 하버드 등 세계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미국의 '포린 폴리시'와 영국의 '프로스펙스'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선정되었다. 권력의 구조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과 투쟁, 패배 등을 통렬하게 묘사해낸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