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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영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by 언덕에서 2022. 10. 26.

 

김영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金英夏. 1968~  )의 장편소설로 1996년 발간되었다. 제1회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작이다. ‘자살조력자’라는 직업의 주인공이 그간 만나온 계약자들과의 이야기로 전개되며 <마라의 죽음>,<유디트>,<에비앙>,<미미>,<사르다나팔의 죽음>등 다섯 장으로 구성된 액자소설이다.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판타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건조하며 도시적인 문장과 예술 회화의 인용이 특징이다. 작가가 가장 관심을 두는 섹스와 죽음의 코드가 가장 적나라하게 버무려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죽음 또한 개인 자신의 결정이라며 사회의 통념에 이질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특이한 주제를 담은 작품이다.

 김영하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의 미학을 형상화하는 대담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격찬을 받았다. 작가는 판타지, 소수취향, 포르노그래피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아울러 타인과의 연대에 무능하여 끝없이 고독과 단절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대담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대상을 향한 무관심한 건조한 문체가 독자를 얼어붙게 만든다. 반면에 성의 묘사나 문체 특성에 있어서 독자의 호불호가 존재하여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유디트」나 「사르다나팔 왕의 죽음」과 같은 미술 작품이 등장한다. 무언가 암울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해당 그림들은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데, '신은 나를 창조했지만 자기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 죽음도 나 자신의 선택이다.'라는 구절을 계속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다. 2003년 한국과 프랑스 공동으로 영화 제작되기도 했다.

 

김영하( 金英夏. 1968 ~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개되는 내용은 ‘나’와 의뢰인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 '자살 도우미'로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는다. 나’는 자살을 도운 대가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는다. 작가이자 고민 상담 카운슬러인 ‘나’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 화자 ‘나’는 타인의 자살을 돕고, 그 일로 돈을 번다. ‘나’의 기이한 철학은 아래의 문장들에 잘 담겨있다.

‘그는 자기 일을 좋아하며, 꽤 능숙하게 처리한다. 노련한 킬러가 대상의 특성을 면밀하게 연구하여 실수 없이 일 처리를 하듯, 강한 자살 욕구와 실행 잠재력을 가진 대상을 찾아 자연스럽게 그들의 욕구를 실현한다.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는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는 종료된 사례에 관한 글을 쓴다. 그는 자신을 신으로 여긴다.’

 화자 '나'는 이들에게 접근한다. 이들에게서 삶에 대한 권태와 혐오를 읽었기 때문이다. 화자의 눈은 정확했고, 이들은 화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생을 마감한다. 여행 중 만난 한 여성만이 화자의 손을 빠져나가는데, '여행 중에는 일하지 않는다'라는 화자의 특이한 신념 때문이었다.

 소설에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화자의 두 의뢰인과 묘하게 얽혀 있다. 서로 형제간인 C와 K는 각각 영상예술가와 택시기사로 일한다. K는 화자의 의뢰인 세연과 먼저 아는 사이였는데, C는 K와 함께 있는 세연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세연이 유디트 같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자살의뢰인 미미는 공연예술가이다. 예술가 미미는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가본 적 없는 유디트처럼 항상 비슷한 작업을 반복한다. 그녀는 영원성을 갖는 다른 예술 형태를 혐오하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즉흥적인 표현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예술철학과 능란한 표현기술을 가진 그녀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예술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표류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화자 ‘나’의 눈에 띈다.

 화자가 C를 언급한 것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동력을 끊어내고,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용기와 다짐을 주기 위해서다. 화자의 생각은 적중하여 미미는 퍼포먼스 공연을 마치고 손목에다 칼을 그어 자살한다. 영상예술가 C는 그녀의 예술을 카메라에 담아 영원성을 부여해 버렸고, 그녀는 자신의 예술과 결별하면서 생에 대한 마지막 미련 또한 끊어낸다.

 

영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My Right To Ravage Myself)> , 2003

 

 유디트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대의 한 산악도시에 살던 과부였다. 그녀는 아시리아의 군대가 자신의 도시를 침략하자, 거짓으로 상대 군에 투항하여 연회를 즐기는 척하다 빈틈을 보아 군 장수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버린다. 유디트는 여러 그림의 소재가 되었는데, C는 세연이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 같다고 생각했다.

 성경 속 인물 유디트와 세연의 닮은 구석은 없었다. 영상예술가 C가 바라보는 클림트의 유디트와 그녀가 닮았을 뿐이다. 택시 기사 K는 세연을 유디트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세연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였고, 빼앗길까 봐 걱정해야 하는 소유물일 뿐이다.

 독자는 자살을 합리화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살 도우미'라는 등장인물은 일반적 사회 통념이나 도덕적 관점에서 옳지 않으며 반사회적 인물로 간주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자살을 감행한 여성들에게 '나'는 자살 도우미 특정인이 아닌 '신'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녀들은 과정이 두려웠을 뿐이지 죽음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다. 손가락 하나만 갖다 대도 픽 쓰러져 버리는 허수아비처럼 그녀들은 각자의 생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프랑스혁명 직후 신문 '인민의 벗'을 창간하고, 소농ㆍ소시민의 생활권 보장과 모든 특권계급의 폐지를 외친 급진 혁명가 마라는 자기 집 욕실에서 한 처녀에게 암살됐다. 그가 50세일 때였다. 마라의 죽음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1748~1825)의 그림(표지 사진)이다. 마라의 동지였던 다비드가 3개월 만에 완성한, 순교자를 닮은 혁명가의 죽음을 그린 '마라의 죽음'은 그 자체 혁명의 힘찬 연료이자, 회화사에 남는 명작이 되고 말았다.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이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다."

 '자살조력자'라는 기묘한 직업을 가진 화자를 등장시킨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살ㆍ죽음이라는 화두를 잡고 우리 시대의 음울한 초상을 서술한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들에겐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처음으로 얻은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었다. 자살이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교만한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자신을 구원했다. 다만 죽은 자는 말이 없어서 자신의 선택을 만족스러워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이유가 ‘죽음’ 때문인지 자신이 직접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