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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영하 단편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by 언덕에서 2022. 10. 24.

 

김영하 단편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金英夏. 1968~ )의 단편소설로 1999년 발표된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표제작이다. 작가는 이 단편소설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타인과의 연대에 대한 무능 등에 관한 내용을 명쾌하고도 아이러니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이루는 전부는 아니다.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해체의 기도와 새로운 희망 구축의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단편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체계화된 일상에 휩쓸려버린 틈새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김영하의 소설들은 도시적 감수성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수록된 작품들은 소재 면에 있어서 조형예술과 컴퓨터 게임, 컬트영화, 토막살인, 인질극, 동성애 등을 과감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자아와 타자 사이의 고립과 소통 불가능성,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의 상황과 그 한계 등 현대의 자본주의, 도시 문명이 낳은 인간 소외의 문제를 낯선 상황 속에 펼쳐내 보인다.

 이 작품은 2000년 2월, MBC TV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MBC TV 베스트극장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000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수관 대리라는 회사원이 있다. 주인공은 아침에 면도하다가 재수 없게도 면도기의 날이 부러진다. 턱의 왼쪽만 면도가 되고 오른쪽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그대로 주인공은 바쁜 출근길을 뛰어간다. 아침 출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다. 걸어서 내려가다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발견한다. 출근 시간이 급해서 그는 그냥 지나친다. 내려가서 경비실에 알리거나 119에 전화할 생각을 하지만 경비실에는 경비가 없다.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 버스를 타면서 휴대전화를 빌리려 하지만 사람들은 빌려주지 않는다.

 지갑을 깜빡하고 가지고 나오지 않은 나온 정 대리는 버스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트럭이 버스를 덮치는 사건을 겪게 된다. 119가 출동했고, 이들에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대꾸도 하지 않는다. 다시 탄 버스에서 정 대리는 치한으로 몰린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느라 결국 지각하게 된다. 게다가 회사 엘리베이터의 고장으로 갇혀 있다가 겨우 사무실에 도착해 오후에야 119로 전화를 한다. 하지만 오전에 있었던 사건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저녁에 아파트로 돌아온 정 대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침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관해 물어보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아침 출근길에 고장 난 엘리베이터로 곤욕을 치른 주인공이 마침내 회사에 도착하여 회사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해도 이번에는 회사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난다. 이런 식이다. 말이 안 되는 내용이 현실이 되는 식으로 주인공의 꼬이고 꼬이는 일과는 계속된다. 그는 소위 머피의 법칙을 연출당하고 있다. 이 작품은 빠른 속도의 문체로 직조되어 있는데, 거대한 사회의 체계가 만드는 바쁜 일상인의 비극을 보여주기에 알맞다. 그 체계 속의 인간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아침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보고도 바빠 지나쳐야 했던 것처럼 비정상적인 패턴이 계속되어야 한다.

 여유 없는 우리가 체계에 길들다 보니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만다. 그 때문에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생활 체계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저항이다. 합리란 이름으로 무장하고서 인간을 획일적으로 길들이려는 체계화에 대한 저항, 이는 곧 해체의 전략이고 근대 이후 주변부로 내몰린 가치들의 새로운 복원이다.

 

 

 현대인들은 늘 타인에 무관심하다. 물론 도시에 한정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도시화가 진행되어 간다. 그런 우리에게 이웃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역시 이웃이란 그저 앞집, 옆집에 사는 타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편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주인공이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이웃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사건을 목격한 주인공의 하루는 연속된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출근길에 탄 버스가 교통사고가 나며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은 이리저리 쉴 틈 없이 시달린다.

 결국, 회사에 도착한 그가 헐레벌떡 올라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며 소재의 밖으로 향하던 글의 줄기는 다시 소재의 안으로 침범한다. 과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구조가 되었을까? 그러나 독자는 이 사건에서 구조된 것이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엘리베이터 자체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리한 렌즈로 씁쓸한 문제에 위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