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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장편소설 『가족』

by 언덕에서 2022. 10. 31.

 

최인호 장편소설 『가족』

 

 

최인호(崔仁浩, 1945~2013)의 장편소설로 월간 [샘터]에 1975년 9월 제1회 연재 <결혼식>부터 시작하여 2009년 10월호에 제402회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연재할 때까지의 장장 35년 6개월 402회의 연재 내용이다.

 1975년 [샘터]사에 근무하던 문우들이 매달 콩트식 연작소설을 한 편씩 싣자고 최인호 작가에게 제안했고, 그는 가족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연작수필로서 매월 연재한 것으로 34년 6개월 동안 연재하다 보니 소설로 불리게 되었는데, ‘최인호 수필집 『가족』’이라고 칭해도 무방한 내용이다. 자신의 생활 주변에 일어나는 신변잡기 이야기와 신앙과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내용으로 썼다. 같은 시기, [샘터] 지면에 수필을 연재하던 법정 스님이 작가가 아내에 관해 쓴 표현이 점잖지 못하다고 작가를 나무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작가는 2008년 7월호 원고 집필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연재를 일시 중단했던 바 있었으나 7개월 만인 2009년 3월호에 '새봄의 휘파람'이란 제목의 글로 연재를 재개했다. 그러나 2009년 10월호를 끝으로 돌연 휴재 의사를 밝혔고, 2009년 연말에 연재 종료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35년 6개월에 걸친 402회 연재가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샘터]사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최인호 작가가 2009년 10월 개재한 402호를 끝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족』은 월간 [샘터[ 1975년 9월호에 연재를 시작한 국내 잡지 역사상 가장 긴 연재소설로 작가와 그 가족, 주변 이웃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작가의 일기와 같은 글이다.

 34년 동안 연재된 내용을 '집대성한 전집'은 발간되지 않았으나, 샘터사에서 발간한 '단행본 시리즈'는  『가족①1975~1979 신혼일기(1984년 간행)』, 『가족⓶ 1979~1984 견습부부(1984년 간행)』, 『가족⓷ 1984~1987 보통 가족(1987년 간행)』, 『가족④ 1987~1992 좋은 이웃(1997년 간행)』, 『가족⑤ 1992~1995 인간 가족(1997년 간행)』, 『가족⑥ 1996~1999 나의 사랑 클라멘타인(2002년 간행)』, 『가족⑦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02년 간행)』, 『가족 앞모습(2009년 간행)』, 『가족 뒷모습(2009년 간행)』 등 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샘터』 지에 34년 6개월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한 이후,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수필집 『인연』을 출간하였다.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 가족 앞모습』 (2009 년 간행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젊은 시절, 연애, 신혼 초 에피소드 등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첫 연재를 할 때 작가는 <별들의 고향>이 소설과 영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화제의 중심에 섰던 스물아홉 청년 작가였다. 

 작가가 군복무를 위해 현역 입대하여 공군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훈련 중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은 이야기며, 치과를 유난히 무서워해서 치통을 참으며 글을 썼고, 대중목욕탕 위층에 신혼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하는데 수도관이 터져 밤중에 가구가 방 안에서 둥둥 뜨는 사건을 겪기도 한다. 원고 마감일을 지키기 위하여 진통제로 버텨가며 치과 가는 날을 차일피일 미루었으며, 밤새워 글을 쓰고 나면 청진동으로 택시를 타고 나가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이후 아이들이 태어나 큰딸 다혜는 네 살이 되고, 아들 도단이는 두 살이었다.

 계속해서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서 작가의 나이가 환갑이 훌쩍 넘어 당시 네 살과 두 살이었던 큰딸 다혜와 아들 도단이는 이제 한 가정을 이뤘다. 이제는 손녀 정원·윤정양도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큼 세월이 지났다.

 1987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 사이 그는 무수히 많은 작품집을 내었다. 이후 큰 누이, 막내 누이와도 작별을 고했다. 자신도 침샘암 수술을 받았다. 투병 중에 반년 간 연재를 중단했던 그는 연재를 재개해 8월호에 400회째 소설을 싣게 되었고, 이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늙어가면서 인생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 가족 뒷모습 』(2009 년 간행 )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서부터,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신원에서부터, 창세기 이전에서부터 준비됐던 영혼의 방. 김수영의 시구절처럼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가정의 방에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았던 나의 아내여. 그리고 나를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순한 가족,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리고 또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최인호 ‘가족’ 본문 중에서

 『가족』은 앞서 단행본으로도 7편까지 나온 후에, 2002년 321회분부터 8월 400회분까지 묶은 단행본 8·9권이 『가족 앞모습』과 『가족 뒷모습』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 출간됐다. 작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훈훈한 감동을 준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 네 살이었던 딸 다혜, 두 살 아들 도단이는 연재 기간에 성장했고 결혼해 저마다의 가족을 이뤘다. 작가는 사위와 며느리를 맞았고 손녀를 봤다. 어머니가, 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오랜 기간 작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정하게 들려주었다.

 가족은 신비한 집단이다. 아침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퉜다가도 저녁에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려 있다. 부모-자식이라는 선택 불가능의 관계, 어찌할 수 없이 매일 함께 하는 관계라는 건 엄청난 인연이다. 그 가족의 일상, 서로 부대끼는 순간순간이 작가의 다감한 글에 담겼다.

 

 

 진보진영 문학가들로부터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을 상업 거리로 삼는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지만, 최인호의 작품세계는 깊고 넓은 편이다. 무엇에 미치기를 잘하는 타고난 `재능` 덕분에 다양한 소재의 글들을 잘 소화해 냈다. 1980년대 말엔 법륭사 벽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백제에 푹 빠져 <왕도의 비밀>을 창작했고,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인 한국 불교 선맥의 거봉 경허를 주인공으로 <길 없는 길>을 써냈다. 90년대 중반엔 고구려에 미쳐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5부작 <잃어버린 왕국>을 발간하기도 했다.

 연세대 영문학과 시절, 열애 끝에 결혼한 부인과 딸 다혜 그리고 아들 도단이 사랑하는 그의 가족이다. 1984년 발표한 장편소설 <겨울 나그네>에서는 딸과 같은 이름의 여주인공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1987년 가톨릭에 귀의했으며, 1994년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작가는 마지막 연재분에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이 죽기 열흘 전에 쓴 유서와 같은 편지를 인용하며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펑펑 울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서른 살 작가 자신을 철부지 남편이자 아빠로 그리며 시작한 이 200자 원고지 20장씩의 소설은, 세월이 흘러 8,000장에 이르는 장편소설이 되었다. 작가는 연작 수필 『가족』을 가리켜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미완성 교향곡'과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훈훈한 감동을 주던 '가족'은 작가의 별세로 영원한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았다.

 한국 최초의 본격 대중작가로 기록된 작가는 한 달이면 천여 장씩 쓰는 다작을 기록하다가, 때로는 쉼표 삼아 몇 년씩 쉬기도 하면서 숱한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왔다. 최인호의 문학은 <별들의 고향>·<겨울 나그네>·<사랑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로망, <깊고 푸른 밤>·<적도의 꽃> 등 도시적 감수성이 짙은 현대소설, 그리고 <잃어버린 왕국>·<길 없는 길>·<왕도의 비밀>로 이어지는 역사소설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  -19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수상-

 아주 어렸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내게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고 물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막냇누이는 성악가, 내 남동생은 의사가 되겠다고 함께 대답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나는 누구도 네 장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소설가가 되겠다고 대답하곤 했었습니다. (중략) 문학이 개인의 사설 창구가 아니라는 자각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 자세는 결코 '옆'을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앞'만 봐야 하는 자세라는 것을 조금쯤 느껴지고 있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그가 쓰는 글보다 먼저 그 사람이 가진 인간의 성품과 마음씨가 너그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도 요즈음엔 느끼고 있습니다.

 링컨의 말대로 '적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없는 법'이라는 사실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보다 먼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증오하는 마음보다 화해의 마음을,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미음이 있는 곳에 화평을 주며, 또한 주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결국 문학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길이라는 느낌도 갖고 있습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