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장편소설 『노을』
김원일(金源一, 1942~ )의 장편소설로 1978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40대 중반의 출판사 중견 사원이 되어 있는 '나'의 현재와 29년 전의 소년 시절이 교차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1, 3, 5, 7장이 현재이고 2, 4, 6장은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흐름은 현재든 과거이든 간에 여름 며칠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집약되어 있다. 숙부가 별세했다는 전보를 받고 귀향하여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는 사흘간과 정부가 수립될 즈음 남로당의 폭동이 준비되고, 일어나며, 실패하기까지의 나흘간의 이야기이다. 6.25의 참담한 체험과 현재 상황을 병치시키면서 사상의 분열과 민족 분단의 비극을 밀도 있게 다룬 문제작이다.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아주 완벽히 잊어버렸고, 이미 떠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적 상처가 여전히 나의 현실과 내부에서 움직이며 쑤셔대고 있음을, 삼촌의 죽음과 29년 만에 돌아온 고향 마을에서 새삼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 상처는 잊어버리거나 도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것임을 확인한다.
나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멸시받는 백정이었다. 술과 도박으로 매일 밤을 지새울 뿐 아니라 성격이 난폭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난폭한 매질에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아버지의 모진 매를 맞으면서 성장했다.
해방 후, 정부 수립 직후 김해군 진영읍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좌익 폭동의 앞잡이가 되었다. 폭동의 선두에 서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서슴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는 좌익 폭동이 진압되고 그들의 실패가 눈에 보이자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버지의 좌익 폭동 사실 때문에 온갖 사회적 심문에 시달려 왔다. 얼마 전, 그 당시 좌익 폭동의 주동자였던 배도수가 찾아온 일로 인하여 모 기관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기도 했다. 배도수가 나를 찾아온 것은 재일 교포인 윤필재를 민단 측의 인물로 잘못 알고서 그의 저서 출판을 알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윤필재는 조총련계 인물이었다.
삼촌의 영전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 고향 사람들의 근황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도중 배도수의 근황도 곁들여졌다. 배도수는 좌익 폭동 때에는 주동자였고, 6ㆍ25 후에는 일본에 잠입하여 조총련에서 활약하다가 이제는 전향하여 이곳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좌익 폭동으로 인한 사회적 시달림 때문에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싶었던 고향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점점 되살아나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동안 고향에 대한 식었던 애정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고향을 떠나기 직전에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배도수를 찾아가 환담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돌아온 후, 나는 소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 산천과 지금까지 사는 고향 이웃들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그동안 그 역사적 아픔을 저주했던 마음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저주하는 마음도 애정으로 바뀜을 느꼈다. 치모나 배도수에 대한 경계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나'가 소년 시절에 체험한 소도시 경남 진영에서 일어났던 남로당 폭동의 상처를 주체화하여, 29년이 지난 중년이 되어 극복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노을』은 표면적으로는 남로당 폭동을 다루면서도 이를 역사적 이념적 사건으로 다루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하고 극적 화해를 이룬다는 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소설적 장치는 좌익 폭동이라는 이념적 갈등보다는 세계상의 혼란에 대한 한 인간의 정서적 반응을 주축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정서적 반응은 고통스러운 삶을 피하지 않고 이를 껴안으려는, 고통에 대한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6ㆍ25 콤플렉스라는 정신적 위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는 주인공 '나'의 비극적 삶이 고통스러운 현대사의 수난으로 인한 우리의 불구적 정서를 대변해 주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분단 현실을 다루면서도 이념적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내적인 고통의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해를 열망하는 인간주의적 시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분단 문학의 한 성과로 평가된다.
♣
주인공 갑수는 29년 동안 도피하려 했던 고향에 돌아와서 그 삼촌의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그가 ‘용서’하고 사랑할 ‘아버지’를 도로 찾았다. 아버지를 다시 찾았다는 것--고향을 고향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과거의 비극과 치욕, 굶주림과 학대, 고향이 자기를 떠밀었던 그 모든 허물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갑수의 두 번째 각성이며 이 혼란과 야만의 세계에 대한 능동적인 화해의 진테제이다.
이제 우리는 이 불행한 땅에 사랑과 미래에의 기대로 우리 자신을 뿌리박을 계기를 획득해야 한다. 이때 노을은 죽음과 공포, 어두움과 피멍을 연상시키는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즐겁고 행복한 꿈이 날고 새 빛이 밝게 빛나리라는 전조의 색깔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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