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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원일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

by 언덕에서 2022. 10. 13.

 

김원일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

 

 

김원일(金源一, 1942~ )의 장편소설로 1988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김원일의 많은 작품은 6ㆍ25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쟁 당시 소년이었던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그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어린 소년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며, 홀어머니가 혼자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큰 고생을 한다. 따라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항상 가난하고 배고프다. 6ㆍ25를 소재로 한 김원일의 소설은 전쟁 중 좌우 지식인들의 이념적 대립과 갈등에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지식인인 아버지가 스스로 북으로 넘어갔거나, 강제로 끌려갔거나, 또는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남은 아이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방황으로 비극적인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의 소설은 공포와 굶주림과 슬픔으로 가득 찬 어린이의 두 눈을 통해 민족의 비극적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당 깊은 집』에서 소년에 의해 경험되는 현실은 휴전 회담으로 6ㆍ25가 끝난 직후 피난지 대구의 생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당 깊은 집』을 원작으로 1990년 1월 문화방송에서 월화 미니시리즈로 10회 방영하였다. 

 

소설가 김원일 ( 金源一, 194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 고향은 경남 김해군 진영읍이다. 고향에서 남의 집에 얹혀살다가 나중에 대구로 와서 어머니와 누이, 두 동생과 같이 산다. 나에겐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행방불명된 상태이다.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나의 아버지는 월북했거나 납북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으로 간 사람의 집안에 가해지는 감시와 탄압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는 한사코 아버지가 폭격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요릿집 기생들의 한복을 맡아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별로 말이 없는 어머니는 매우 강인한 여성으로 자식들에게 특히 엄하다. 집안의 장자인 나에게는 특히 엄격해서, 때때로 나는 어디서 주워왔거나 개구멍받이로 들어온 자식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밖에 누나와 어린 두 남동생이 있다.

 내가 사는 ‘마당 깊은 집’에는 여러 세대가 산다. 대대로 경북 의성군 지방의 토호였던 위채의 주인집에는 여덟 명의 식구가 다섯 개의 방을 쓰며 산다. 그들은 전쟁 덕택에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되는 사람들로 도덕적 규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형적인 졸부의 행태를 보여준다.

 직물공장을 경영하는 주인아저씨는 ‘출근 때나 그 얼굴을 잠깐 볼 수 있을 만큼 늘 바쁜 사람’이고, ‘외박도 잦고 허구한 날 밤이 깊어서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 ‘모란꽃처럼 얼굴이 훤하고 몸집이 피둥피둥한’ 주인아주머니는 밖으로 나도는 활동가로, 대구 시내 번화가에 귀금속과 시계를 파는 점포를 열어 장사하면서 유한층 부녀자를 상대로 계주(契主)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안살림을 나 몰라라 하며 시어머니를 우습게 아는 며느리 흉으로 하루해를 보낸다고 할 정도’의 칠순을 바라보는 노마님이 살림을 맡아서 한다.

 주인집에는 아들만 셋이 있는데, 시내 사립학교 법대를 보결로 들어간 맏아들 성준은, ‘머리에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만큼 포마드를 바르고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으로 학교에 다닌다. ‘연애 대장’인 그는 아버지 회사의 여종업원을 건드려 임신시키기도 하고, 애가 둘이나 딸린 연상의 과부와 놀아나기도 한다. 주인아저씨의 조카인 여고생 동희도 함께 사는데, 그녀 역시 남학생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것이 주된 업무로 공부에 흥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윗채의 마지막 한 식구는 식모 안 씨로, 스물 중반의 과수댁인데, 촌색시답게 부지런하고 심성이 곱다.

 아래채에는 길남이네를 포함해서 네 식구가 세 들어 산다.

 첫째 칸 방에는 경기 댁네가 세 들어 산다. 그 시절의 나이 든 여인치고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경기댁은 팔자 좋게 낮잠이나 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말이나 늘어놓는 수다쟁이다. 그녀에게는 치과기공사인 아들 홍규와 미군 부대 피엑스에 다니는 멋쟁이 처녀인 딸 미선이가 있다. 이들은 세 든 사람 중에서는 살기가 가장 나은 사람들로, 가지지 못해서 그러지 못할 뿐 역시 이기적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홍규가 부잣집 규수와 결혼하고, 미선이가 미군 대위와 결혼하게 되어 이들은 제일 먼저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둘째 칸에는 준호네가 산다. 장교 출신의 상이군인인 준호 아버지는 원래 교사 출신으로 지식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한쪽 팔을 잃어버린 그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껌이나 연필 따위를 팔러 다닌다. 나중에는 그 일을 집어치우고 눌러앉았다가 집안에서 풀빵이나 군고구마를 판다. 밤중이면 잠결에 고함을 치는 그는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준호 엄마는 만삭으로 행상하러 다니다가 준호 동생을 낳은 지 이틀 만에 또 행상을 나가는 억척스러운 여인이다. 이들은 상이군인이라고 수모를 당하고 가장 없이 산다고 괄시받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셋째 칸에는 평양댁네가 산다. 길남이 엄마와 마찬가지로 과수댁인 그녀는 양키 시장의 길가에서 노점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괄괄하고 수더분하며 생활력이 강한 여인이다. 평양댁의 큰아들인 정태는 폐결핵 환자라서 집에서 요양 중이고, 작은아들 민이는 공부를 잘하는 고교생으로 주인집의 두 작은아들의 과외 선생이기도 하다. 딸 순화는 착실하고 순박한 처녀이다. 이들은 큰아들 정태가 월북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가정이 파탄 난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김천댁네와 함께 월북하던 정태는 때마침 터져 나온 기침으로 잡힌다. 재판정에서도 그는 남을 비판하고 북을 찬양하다가 20년 형을 선고받는다. 평양댁네가 겪는 고초는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비극의 한 단면을 잘 나타내 준다.

 이러한 분단의 비극은 문간방에 살던 김천댁네를 통해 좀 더 선명히 드러난다. 남편이 북에 있는 공산당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끊임없이 감시당하며 공포에 떤다. 그녀는 마침내 정태의 도움으로 남편이 있는 북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한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을 주제로 한 대구시 문학체험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윗채의 주인집 식구 여덟 명 중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식모인 안 씨 한 사람뿐이다. 주인집 사람들이 보여주는 갖가지 일들은 전쟁 직후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기름지게 먹고사는 자들의 졸렬한 행태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술집에서 ‘팬티만 입고 춤을 춘다’는 주인아저씨, 외간 남자와 춤을 추다 남편에게 잡혀와서 매를 맞는 주인아주머니, 여자들과 불미스러운 관계를 계속하는 대학생 맏아들 성준, 남학생들과 놀아나다 적발돼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는 동희, 세 들어 사는 빈한한 사람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노마님 등의 인물이 보여주는 행태는 한결같이 추악하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인간성이 어떻게 뒤틀리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은아들이 공부방을 갖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갈 곳 없는 피난민들에게 방을 비우라고 하는 냉정한 태도나 같은 곳에 함께 사는 사람들은 하루 세끼 양식을 먹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데도 세력가들과 미군들을 초대해서 벌이는 호화판 댄스파티 같은 것은 그들이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을 웅변하듯 말해 준다. 이 같은 졸부다운 행태가 그 뒤로도 계속 번져나가 우리 사회에 가진 자의 이기주의가 넘쳐나게 되었을 듯하다.

 

 

 『마당 깊은 집』은 이러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삶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되살리게 하는 소설이다. 어린 소년인 ‘나’의 눈을 통해 객관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굶주림과 고통으로 가득 찬, 슬픈 기억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괴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해 버리기까지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성실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은 아마도 친구 한주가 보여줬던 성실성과 신뢰 같은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보장하구 말구요. 제 말만 듣고 길남이를 한번 믿어 보세요.” 한주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우리 집에 와 본 적도 없었고, 사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무엇을 믿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그 말은 마치 따뜻한 물처럼 내 마음을 덥혀 주었다. 이런 따뜻한 마음은 이 소설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밤이면 주인집 부엌에 들어가 남은 밥을 훔쳐먹었던 ‘나’에게 식모인 안 씨는 이런 말을 했다. “길남아, 니가 밤중에 우리 부엌으로 들어오는 걸 나 안대이. 내 누구한테 그 말을 안 할 테이께 다시는 그런 짓 말거래이. 설령 점심밥을 굶어 배가 고프더라도 남자는 참을 줄 알아야제. 너거 성제(형제) 간도 참으며 이 여름을 넘기고 있지 않나.”

 안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며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안 씨의 말속에는 도둑이란 말이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았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고개를 푹 빠뜨린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어느 사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 씨의 그 고마운 충고로 나는 다시 그 짓을 할 수가 없었다. - 본문에서」

 이러한 따뜻한 인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배고픔과 고난으로 얼룩진 어린아이가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준 깊은 상처를 거듭 되새겨보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