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산도르 마라이 장편소설 『결혼의 변화(Wandlungen einer Ehe )』

by 언덕에서 2022. 9. 16.

 

산도르 마라이 장편소설 『결혼의 변화(Wandlungen einer Ehe )』

 

 

 

헝가리 소설가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 1900~1978)의 장편소설로 1941년에 발표되었다. 결혼은 인류의 장구한 문화체계이자 사회제도이며, 삶을 구성하는 커다란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혼의 변화』는 이러한 결혼 제도가 정치적·사적·문화적 환경이라는 외적 세계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떻게 변화·변질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또한 변화와 변질의 과정에서 한 인간을 이루는 외로움, 감정, 가치관, 생활 태도 등 다양한 측면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해 섬세하고 날카로운 인식으로 진단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일롱카, 페터, 유디트 등 3명의 등장인물과 이 3명의 삶을 바라보는 라자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일롱카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인물이다. 페터는 이성적이며, 욕망을 피해 경직된 규율로 도피한다. 유디트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힘으로 고루한 인습의 세계를 파괴한다.

 사랑에 실패한 이 세 남녀의 관점에서 같은 내용은 세 번 이야기된다. 그 과정에서 미묘한 차이들이 드러난다. 1941년 부다페스트에서 출간된 1부와 2부는 마라이가 자신의 세계라고 느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1948년에 집필된 3부에서는 양차 대전 이후의 균열한 세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산도르 마라이 (Sandor marai, 1900~1978)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장

 첫 번째 아내 일롱카의 고백이다. 가난한 소시민의 딸 일롱카는 부잣집 아들 페터와 결혼해 행복한 듯 살고 있지만, 남편과 자신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 있는 듯한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총각 시절의 남편이 열다섯 살의 하녀 유디트를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몸부림쳤던 과거를 알게 된다. 남편의 비밀을 알게 난 일롱카는 자신의 사랑이 남편에게는 고통이라는 걸 깨닫고는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청산한다. 일롱카는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여성이다.

 2장

 남편 페터의 이야기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인 하녀 유디트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친구에게 고백한다. 서른두 살의 부잣집 아들이 시골에서 올라온 열다섯 살의 아름다운 하녀를 사랑했지만 결혼할 수 없어서 외국을 떠돌던 이야기다. 소시민 가정에서 자란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아가씨 일롱카와 결혼했지만, 그녀와 사이에 존재하는 하녀의 잔상 때문에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첫사랑 하녀와 결혼했지만, 다시 이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자라난 환경과 교육 수준의 차이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결혼은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경제적 편의를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섹스를 제공하는 관계일 뿐이다. 부의 달콤함을 맛본 여자는 사치에 열중하다 남자의 재산을 훔치게 되고 2년 후 이혼한다. 남자는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이혼했고, 여자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이혼했다.

 3장

 유디트의 고백이다. 충분한 이혼 합의금을 받고 이혼 후 동거하는 악사(樂士)에게 페터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 결혼 생활이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충분한 돈과 자유가 있는 지금이 그때보다 얼마나 행복한지 구구절절 쏟아낸다.

 유디트는 페터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원하기를 바랐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그가 외국으로 떠나자 밥을 먹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이 돌아온다는 인디언의 속설을 믿고 1년 동안 밥을 먹지 않기도 했다. 이후 그가 돌아와 교양 있는 아가씨 일롱카와 결혼해서 살 때는 남자의 지갑 속에 자신의 소지품을 넣어두고는 젊은 아내가 그것을 발견하기를 고대했다고 고백한다.

 

 

 소설의 각부를 구성하는 3명의 등장인물과 이 3명의 삶을 목도하는 '라자르'라는 인물은 산도르 마라이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된 역할 분담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첫 번째 아내 일롱카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남편 페터는 욕망을 피해 경직된 규율로 도피하고, 하녀인 유디트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힘으로 부실한 인습의 종지부를 찍는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털어놓는 세 개의 독백과 이야기는 자신에게 딱 맞는 결혼은 없다는 인생의 진실을 실감 나게 증언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모든 결혼이란 성격과 욕망과 환경이 혼합되어 만들어내는 한 편의 드라마임을 강조한다.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헤어진 일롱카, 결혼했지만 과거를 잊지 못해 행복할 수 없었던 페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를 이용했지만, 숨이 막혀 이혼한 유디트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작중 인물의 캐릭터를 통해 다른 환경과 성격과 욕구를 가진 세 사람이 엮어내는 결혼 생활을 제시하며 독자에게 알맞은 사랑과 결혼의 모습을 요구한다.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 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카샤우에서 태어났다. 산도르 마라이 태생 당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마찬가지로 마라이가 대학을 다닌 부다페스트 역시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마라이는 [어느 시민의 고백](1934)으로 성공을 거두어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마라이는 망명지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헝가리의 독재 정권은 그의 책들을 금지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마라이는 헝가리 망명 인사들의 모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헝가리 문인협회가 정치적인 화해의 표시로 발송한 초대장도 거절한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자신의 희곡이 상연되는 것과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고향은 그때까지 그를 계급의 적, 배반자로 칭했으며 거의 40년 동안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물러나고 자유로운 민주 선거가 실행된 다음에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