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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알랭 드 보통 장편소설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by 언덕에서 2022. 9. 14.

 

알랭 드 보통 장편소설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1969~ )의 장편소설로 1994년 발표되었다. 런던에 사는 광고회사 여직원 앨리스가 파티에서 만난 은행원 에릭과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다. 청춘남녀의 연애 진행 과정을 담아낸 연애소설 『우리는 사랑일까』는 작가의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너를 사랑한다는 건」에 이은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의 하나다. 『우리는 사랑일까』는 3부작 중에서 여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려진 유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대 중반의 전문직 여성 앨리스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사건들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연애의 탄생에서 성장, 그리고 결실까지를 작가 특유의 현학적 분석과 세밀한 심리 묘사로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런던의 광고회사 홍보 담당자 앨리스는 다국적 기업을 관리하는 아버지 때문에 세계를 떠돌며 자랐다. 몽상적인 앨리스는 에릭이 환상적이며 자신에게 꼭 맞는 남자라고 생각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정작 사귀고 보니 그는 환상적인 남자도 아니고, 자신에게 꼭 맞는 남자도 아니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랭 드 보통이 지금까지 발표한 여러 저서 중 장르상 ‘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1993),『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 Kiss and Tell」(1995), 이렇게 세 편뿐이다. 작가의 초기작 즉,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 불리는 이 장편소설들은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한 이 독특한 연애 소설들로 그는 ‘90년대식 스탕달’ 또는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중 특히 여주인공(앨리스)의 시선으로 그려진 유일한 책 『우리는 사랑일까』는 특히 여성 독자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 2010년에는 국내에서 이 책을 소재로 각색한 네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제작되어 무료로 상영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런던의 광고회사 여직원 엘리스와 은행원 에릭이 주인공이다. 엘리스와 에릭은 파티에서 만나 사귀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리스는 다국적 기업을 관리하는 아버지 때문에 세계를 떠돌며 자랐기에 고향이나 조국이란 말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에릭은 런던에만 5대째 사는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런던과 영국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남자다. 광고회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엘리스는 패션지와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는 반면 에릭은 정치·경제서를 즐겨 읽는다. 엘리스는 업무상 세상을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에릭은 세상과 싸우기 싫어 책을 읽는다. 삶을 감상적으로 보는 엘리스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여 쌓아두기를 좋아하고, 삶을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에릭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정리정돈하기를 좋아한다. 엘리스가 에릭의 집에 가면 호텔을 떠올리고, 에릭이 엘리스의 집에 가면 어지러움을 느낀다.

 엘리스는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자신을 맞춰가는 타입으로 남자가 짜증을 내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에릭은 여자의 기분보다 자신의 기분을 중요시한다. 경제전문가인 그는 홍보전문가인 엘리스의 감성이 부담스럽다.

 두 사람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엘리스는 에릭에게 ‘사이는 끝났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에릭은 ‘앞으로 잘하겠다.’라고 달랜다. 정작 사귀고 보니 그는 환상적인 남자도 아니고, 자신에게 꼭 맞는 남자도 아니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가슴 아프게 깨달은 사실은 그들의 사랑이 보잘 것 없고 변변치 못한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이 책의 주요 독자가 될 20대 중반의 전문직 여성 ‘앨리스’다. 작가는 앨리스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가야 하는가를 간명하고도 시원하게 보여준다.

 어느 날, 엘리스는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에릭 앞에서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표현해본 적이 있는지 반문해보았다. 에릭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항상 가치 없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고,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것에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의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엘리스는 두 사람의 차이를 에릭이 교묘하게 그녀 탓으로 돌린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표준이고, 그녀는 변종이라는 식으로. 이는 에릭이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형성된 그들의 관계였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자신의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사랑을 하면 달랑 몸만 오지는 않는다. 국가와 민족과 지역과 기후가 따라오고 가치관은 물론이고 철학과 정체성이 동반된다. 그들은 본질 자체가 다른 두 사람이었다. 둘은 첫눈에 반했지만, 도파민이 사라진 후에 보니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개의 선이 교차점에서 짧게 만난 것뿐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동안 합치된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복잡한 길 위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일 뿐이었다.

 

 

 작가가 제목으로 ‘우리는 사랑일까?’라고 질문한 명제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에게로 향한다. 엘리스와 에릭은 사랑일까? 사랑이 엄청난 대사건이며 일생에 단 한 번의 운명적 사건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건 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가 스쳐 지나가서 뭔가 인연을 만드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이 소설은 연애를 하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심리적 갈등과 연애관을 기후, 건축, 쇼핑, 종교 등 로맨스와는 관계가 없는 듯한 주제들로 분석하고 정의한다. 사랑이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낭만적 연애의 실체와 허상을 밝히고 깊은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 곳곳에서는 철학자들과 문학가들의 사상,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 등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는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커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Not a Novel (1998)』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인기 작가로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