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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페이스 볼드윈 장편소설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by 언덕에서 2022. 9. 20.

 

페이스 볼드윈 장편소설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미국 소설가 페이스 볼드윈(Faith Baldwin : 1893~1978)의 장편소설로 1929년 발표되었다. 문화적 엄숙주의와 가식을 제거한 페이스 볼드윈의 로맨스 소설 『오피스 와이프』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현대적 코드를 일터에서 일과 사랑을 동시에 거머쥐고 싶어 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표현했다. 작가는 여비서 앤 머독과 그녀와 사랑에 빠진 회사 사장 펠로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100년 전의 소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사회적 성공은 누구나 거머쥐고 싶어 하는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나아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작중 여비서 앤 머독과 사장 래리 펠로스는 건실한 일꾼인 동시에 열정과 꿈을 품은 낭만주의자의 전형이다. 앤은 여비서직을 통해 직위 상승을 꿈꾸고, 펠로스는 앤을 통해 낭만적인 인생의 동행을 꿈꾼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서로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지만, 어느 때부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기심을 버리고 헌신하는 새로운 사랑의 단계로 돌입한다. 이 소설은 진실한 사랑이란 욕망을 넘어서는 이상의 것임을 지적하는 동시에, '조건과 필요'라는 합리적 면모, 헌신과 노력이라는 낭만적 면모 등 현대사회의 사랑이 갖춰야 할 요건들을 재차 성찰하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성과 미모, 뛰어난 업무 실력을 갖춘 앤 머독은 커다란 포부로 남자 못잖은 성공을 꿈꾸는 현대적 여성이다. 1930년대 미국 여성들이 꿈꾸는 최고의 직업은 바로 고위직의 여비서이다. 앤 머독은 차츰차츰 성공의 계단을 밟아 결국 회사의 사장인 펠로스의 눈에 들어 그의 비서로 발탁된다.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마음이 척척 맞는 최고의 업무 파트너가 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업무에 몰두해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호감이 자라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감정을 부정하던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고, 커다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일터에서 서로에게 감정이 스며들 때 상서롭지 못한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펠로스 사장은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앤에게도 남자친구 테드가 있다. 결국, 감정과 위계질서, 업무라는 어울리지 않는 갈등 사이에서 두 사람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 진정한 직업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감정 줄타기는 펠로스의 아내 린다가 이혼을 요구해오면서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이들의 이혼은 여비서 앤 머독과는 아무 관련 없는 두 부부 사이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펠로스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 신문사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장과 여비서의 관계를 불륜으로 꾸미려 한다. 결국, 앤 머독은 펠로스 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펠로스는 이혼 후 앤이 아닌 다른 여성과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볼드윈이 살았던 곳과 유사한 브루클린 하이츠의 브라운스톤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중 많은 수가 사무실에 오피스 스파우즈(office spouse)☜, 즉 사무실 배우자를 두고 있다고 한다. 바로 사무실 아내를 뜻하는 오피스 와이프 또는 사무실 남편을 의미하는 오피스 허즈밴드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직장인들이 가정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사무실이니 자연스레 감정적으로 가까운 이성이 생겨난다. 이들은 모호한 감정의 선을 지켜가면서 서로를 동료로서, 그러나 동료 이상의 친밀감으로서 대하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것을 ‘가정의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고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며 친밀한 동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21세기 직장에서 이를 도덕적 잣대로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 책 『오피스 와이프』는 한 광고회사 고층 빌딩의 사무실에서 사랑이라는 천국과 현실이라는 지옥 사이를 오가면서 서로를 지켜내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담음으로써 도덕 이상의 가치, 즉 진짜 인생의 동반자란 어떤 위치이며 존재인가를 되묻고 있다.

 

 

 사랑은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거기에는 어떤 도덕적 잣대로 들이밀 수 없다.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로 그것이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해 아슬아슬한 사랑이 아닌 인간 모두가 꿈꾸는 사랑, 그 보편적인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우리가 모두 죽은 미래에도 사람들은 사랑할 것이며, 그로써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결국,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일터를 떠나는 앤 머독과 이혼 후 새로운 삶을 꿈꾸는 펠로스의 행보와 두 사람의 결합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도, 바로 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성잡지에 로맨스 시리즈 소설을 연재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처녀작 <그린힐의 마비스Mavis of Green Hill>와 『오피스 와이프 Office wife』 등 약 100여 권의 작품을 집필했고, 1900년대의 가장 인기 많은 로맨스 소설 작가로 자리 잡으며 현재 시세 약 40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문학적인 엄숙함이나 가식이 없다”라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평처럼 그녀는 대부분 가정과 일 사이를 오가는 여성들의 삶, 사랑 그리고 일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작중 매력적이고 부유한 인물들에서 외로운 노동자 계급 사람들에 이르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대중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직장에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성 동료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로  ‘사무실 배우자’라는 뜻으로 워크 스파우즈(Work Spouse)라고도 한다. 실제 부부나 애인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그만큼 가깝게 지낸다는 의미가 있다. 상대방이 남자 동료라면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 여자 동료라면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