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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제임스 셜터 장편소설 『가벼운 나날(Light Years』

by 언덕에서 2022. 9. 13.

 

 

제임스 셜터 장편소설 『가벼운 나날(Light Years』

 

미국 소설가 제임스 셜터(James Salte, 1925~2015)의 장편소설로 1975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미국 문단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평론가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브렌던 길은 “생존 소설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평했고, 퓰리처상 수상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나는 작가로서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설터가 세워놓은 높은 기준에 겸허해지고 만다”라고 고백했다. 장편소설으로서 세련되고 밀도 높은 문장과 대조적인 인물의 배치로 깊은 통찰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네드라와 비리 부부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이른바 ‘안정된’ 결혼, ‘단란한’ 가족의 빛과 그늘을 다룬다. 부부는 전원주택에서 두 자녀와 함께 부족할 것 없는 일상을 누리지만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허무가 숨 쉬고 있다. 이 작품은 이분법적인 ‘양면’이 아닌 ‘다면’을 지닌 것이 결혼이자 인생임을 말하기에 요약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이따금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탐하며, 사회적 야망과 타인의 시선에 부응하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세인이 궁금해하지만 넘볼 수 없는 타인의 세계와 그 핵심에는 결혼 생활이 있다. 이 소설의 원제 ‘Light Years’에는 빛과 가벼움의 세월, 그리고 긴 세월이란 뜻이 포개져 있다. 장면마다 뚜렷이 존재감을 보이는 ‘빛’, 그리고 무심한 듯 흘러가는 ‘시간’. 빛과 시간은 이 소설의 두 축이다. 기나긴 인생이란, 흔히 찰나로 일컫듯 어쩌면 가볍디가벼운 것일지 모른다는 함축을 떠올리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뉴욕 근교의 빅토리아식 전원주택에서 호화롭게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다. 남편 바리는 서른 살의 청년 건축가로, 그는 건강하고 잘생긴 데다 다정한 남편에 좋은 아빠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좋은 옷만 입고, 주말이면 부부 동반으로 사교 모임이나 음악회에 간다. 아내 네드라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로 부유한 결혼 생활을 즐기며 산다. 그들의 삶은 1970년대 미국의 안정된 가정, 단란한 가족의 표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에 위기가 찾아온다. 안락한 생활로 찾아온 권태, 스물여덟 살의 아내와 서른 살의 아내는 변화를 갈망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더는 욕망을 자극하는 이성이 아니다. 남편 비리는 새로 뽑은 여비서 카야 다우로의 지적 매력에 반해 일주일에 한두 번 그녀의 아파트로 가서 섹스한다. 네드라는 정오가 되면 옆집 독신남 지반의 집으로 간다. 일주일에 두세 번 그의 침대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섹스를 한다.

 부부는 삶의 권태를 이겨보려고 유럽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지에서 네드라가 비리에 이혼을 요구한다. 법원에서 이혼 결정이 나던 날, 네드라는 자동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비리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집을 팔아 그녀에게 반을 보낸다. 하지만 1년 후 그녀는 1만 달러만 빌려달라는 편지를 런던에서 보낸다. 그러고 돈이 떨어지자 미국으로 돌아와 창고를 개조한 곳에서 웅크리고 살다가 마흔일곱 살에 병들어 죽는다.

 

 

 "프랑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드라는 죽어가면서 딸에게 말한다. “(그 남자와의 사랑은) 모든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이었지. 사람을 취하게 하는 화려한 사랑,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어. 그건 환상일 뿐이야.” 우아하고 화려하던 여자의 삶은  막을 내린다.

 모든 초월적인 버팀목들과 자발적으로 단절한 우리 근대인들이 치르는 대가는 이것이다.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르는데 삶의 의미는 드물게만 찾아진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인생 그 자체와 싸우며 보낸다. 근대 이후의 위대한 장편소설들이 대체로 ‘시간과 의미’라는 대립 구도 위에 구축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 자명한 악과 싸우는 로맨스 적인 영웅이 아니라 삶의 무의미와 대결하는 신경증적 영웅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성공이 아니라 실패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는, 의미란 무의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얻는 전리품이 아니라 싸움 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어떤 것임을, 그러므로 삶이란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는 것임을 입증하는 데 성공한다.

 

 

 결혼 생활은 평온하고 안락한 상태가 가장 위태롭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미세한 균열과 붕괴의 조짐이 보이지만, 평온함 속에서는 아무도 균열을 눈치채지 못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거의 무정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적해낸다. ‘정확하다’라는 평가는 우리가 소설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급의 찬사 중 하나일 것이다. 설터가 어떤 감정을 묘사하면 그것에서 불명확한 것은 별로 남지 않는데, 그럴 때 그는 마치 다른 작가들이 같은 것에 대해 달리 쓸 가능성을 영원히 제거해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은 대상이 이제는 내 삶의 무의미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그 비감을 설터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는 많지 않다. 이것은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수시로 깊은숨을 내쉬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이다.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홀로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피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사랑할 수 있다. 외로움을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평화롭다. 이 소설은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혼과 사랑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날카롭게 분석한 작품이다.

 192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설터는 1950년 한국전쟁에 육군항공단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100회 넘게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7년 소령으로 전역한 설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군에서 집필한 소설 <헌터스(The Hunters)>를 선보이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 소설은 이듬해 배우 로버트 미첨이 주연한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67년 에로티시즘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스포츠와 여가>를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75년 선보인 대표작 『가벼운 나날』은 전원주택에서 두 자녀와 함께 다소 호화롭게 사는 부부의 욕망과 허무를 그린 소설로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