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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조선작 단편소설 『성벽(城壁)』

by 언덕에서 2021. 4. 27.

 

조선작 단편소설 『성벽(城壁)』

 

 

조선작(趙善作. 1940~)의 단편소설로 1973년 발표되었고 1976년 표제작의 작품집으로 발간되었다. 작가는 현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특히 소외된 하층민의 생활을 소설적 소재로 취급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작품을 썼다. 그러나 주제의 심각성과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어 표현의 새로움과 구성상의 재치로 소설의 재미를 살려 놓았다.

 작가의 대표작인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창녀와 목욕탕 때밀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현실의 문제성을 실감 나게 서술했으며, <고압선>과 같은 작품에서는 소시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무형의 폭력을 우회적으로 다루었다. 이 작품들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층민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1970년대 왜곡된 산업화의 과정이 만든 현실의 부조리를 작가는 편견 없이, 치밀하게 묘사해 내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16세 소년은 개를 훔쳐 도살해서 팔아 생계를 꾸리는 아버지와 화장지 공장에 다니는 18세 누나와 함께 뚝방동네에서 산다. 집 건너편에는 더러운 하천이 흐르고 창녀촌이 있다. 동네 자전거포 아들이 덕칠이는 소년의 누나를 좋아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며 엄마는 소년이 어릴 때 노름꾼과 바람이 나서 가출했고 소년은 다리를 저는 장애아다. 하천은 ‘도심의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분뇨의 냄새로 충만’하고, 양쪽 둑에는 ‘판잣집들이 마치 바위등의 굴 껍데기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누나가 가출한 후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고 소년은 아버지의 수발을 든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개를 잡아서 그슬리곤 하던 화장지 공장 앞 모래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년으로서는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막연한데 갑자기 뚝방동네에서 공사가 시작된다. 다음날 청량리에서 제천 간의 전기 철도가 완성을 기념하는 개통식이 있게 되고, 그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높은 어른이 뚝방 동네의 건널목을 지나게 되기 때문이다.

 인부들이 몰려들어 양편 뚝방에 담장을 치기 시작했다. 한나절 뚝딱거리니 구질구질한 판자촌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페인트칠하고 전등까지 줄지어 달아 휘황찬란한 눈가림 막 때문이다. 소년의 눈에 그것은 ‘담장이 아니라 숫제 거대한 성벽’으로 다가온다. 이제 뚝방 동네는 구린내와 판잣집의 그림자가 아니라, 줄지어진 전등불이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색깔로 말끔히 도장 된 아스라한 성벽이 영롱하게 떠 있었다.

 

소설가 조선작(1940~)

 

 작가는 명랑한 세계보다 어둡고 음울한 현실 세계를 그리는 이로 알려져 있다. 조선작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로 대표되는 창녀 등 밑바닥 인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고압선>, <성벽>과 같이 소시민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이다.

 소시민들의 일상은 잔잔한 애환을 담고 있으나, <성벽>이나 <영자의 전성시대>에 묘사되는 하층민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은 1970년대 왜곡된 산업화와 부의 편재가 빚어낸 치부이기 때문이다. <성벽>은 눈가림 공사가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사람들은 그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려 한다. 그러나 조선작은 바로 이러한 사각지대를 어떤 미화도 없이 치밀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성벽은 침략하는 적으로부터 내 국민을 지키기 위해 쌓는다. 그런데 뚝방동네의 성벽은 정반대다. ‘아주 높은 사람’ 눈에 백성의 삶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설치된다. 개발의 상징인 고속열차 개통을 맞아 개발로부터 소외된, 경쟁에 낙오된 백성의 목숨이나 그들의 지린내 나는 삶의 현장 따윈 그저 가려져야만 할 부끄러운 부분일 뿐이다.

 

 

 주인공 소년은 개를 훔쳐 팔아 생계를 꾸리는 아버지, 누나와 함께 뚝방동네에서 산다. 하천은 ‘도심의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분뇨의 냄새로 충만’하고, 양쪽 둑에는 ‘판잣집들이 마치 바위등의 굴 껍데기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뚝방동네에서 공사가 시작된다. 다음날 ‘아주 높은 어른이 동네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인부들이 몰려들어 양편 둑에 담장을 치기 시작했다. 한나절 뚝딱거리니 구질구질한 판자촌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페인트칠하고 전등까지 줄지어 달아 휘황찬란한 눈가림 막 때문이다. 소년의 눈에 그것은 ‘담장이 아니라 숫제 거대한 성벽’으로 다가온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중요한 국제 행사가 열릴 때면 여기저기서 치장공사가 한창이곤 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치워버리자는, 일종의 가림막 공사였던 셈이다. 어쩌면 성벽은 별것이 아니다.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곧 성벽이다. 국민이 살기 어려울 때는 간신들이란 성벽이 존재하여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예는 역사에서 무수하게 발견된다. 그 성벽은 유독 그들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