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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완서 단편소설 『조그만 체험기』

by 언덕에서 2021. 4. 13.

 

박완서 단편소설 『조그만 체험기』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단편소설로 1976년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되었다. 이후 1999년 [문학동네]에서 표제작의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작가 본인의 고백대로 남편 호영진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자 옥바라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평범한 아주머니에게 남편이 경찰서로 연행되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남편이 무죄로 풀려 나오기까지 마주해야만 했던 제목 그대로 생생한 짧은 체험 기록기다. 그러나 필자는 이 체험기를 수식하는 ‘조그만’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조그만’은 작거나 적음 혹은 그리 대단하지 아니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소설에서 단지 짧은 기간이라는 의미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그마한 전기용품 상을 하며 큰돈은 못 벌어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던 남편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경악한다. 혹시라도 부탁할 만한 빽이 될만한 인맥이 있는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댈 언덕이라고는 도무지 없다.

 남편의 죄목은 재생 형광등을 낮은 가격으로 사서 신품 가격을 받고 팔아 돈을 편취했다는 사기죄다. 하지만 남편은 재생품인 줄 몰랐다고 강변한다. 메이커 회사의 신품도 덤핑이 들어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나’도 남편의 무죄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남편은 서대문구치소에 갇혀 수의를 입는 신세가 된다.

 검찰청 지청의 수위부터 시작하여 사건 담당 주임까지 급행료와 교제비를 요구하고, 주변에는 브로커들이 판을 친다. 그나마 합법적으로 남편을 도와주리라고 믿어 거금의 수임료를 지불하고 선임한 변호사는 남편이 기소된 사실조차 모른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뇌물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검사의 구형이 있은 지 보름 만에 남편은 풀려난다.

 화자는 남편이 풀려난 다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이렇게 쓰고 있다.

 “어느 날이고 자유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 좋아져서 우리 앞에 자유의 성찬이 차려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전 같으면 아마 가장 화려하고 볼품 있는 자유의 순서로 탐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는 하고많은 자유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우선 간장 종지처럼 작고 소박한 자유, 억울하지 않을 자유부터 골라잡고 볼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온 소상인 부인이자 작가인 주인공에게 낯선 사건이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남편이 사기꾼이라는 죄명을 안고 잡혀간 것이다. 주인공은 남편이 재판을 받아 풀려나는 동안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현실에 부딪혀야 했고 그 낯선 체험을 통해 세상이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참으로 어수룩하던 1970년대 중반의 상황이다. 지금이야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검찰청 주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 상상도 못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일상사였다.

 억울하게 검찰에 연행된 남편을 둔 소시민 주부이자 작가의 시선으로 전개된 이 소설은 공권력의 맹점을 비판한다. 그런 제도의 결함이 소시민의 이기심과 기회주의에 의해 유지되는 현상을 여성의 삶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이도 생겼다.  법의 타락에 맞서 개인의 양심에 기반한 도덕적 자각도 제시되는 경향이다.

 일상과 정치,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연동되는가를 예민하게 형상화한 이 작품은 문학에서 요청되는 페미니즘의 시선이 얼마나 세심하고 깊어져야 하는가를 암시한다. 20세기 한국 서민, 불우 이웃 여성들의 삶과 생각과 감정을 실록 이상으로 묘파한 다시 없을 '페미니즘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부군의 사기죄 입건 때문에 주인공 아주머니는 검찰청, 구치소, 법정에서의 농간과 회유, 통과의례, 변호사의 무책임, 표피만 건드리는 판사의 심문 때문에 삼킨 비명과 탄식이 독한 한숨으로 피어난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전략)이런 비극은 소설에만 있지 않다. 미국에서의 편입학은 한국 의사 서명이 있는 영문 예방접종증서만으로 족하다. 한국은 보건소 발행 예방접종증서만 받지 병ㆍ의원이 발행한 증서는 쳐주지 않는다. 보건 기록은 2005년부터인데 그전 것을 아기 수첩으로 대신하자고 해도 다니던 모든 병원에서 기록을 떼어 오란다. 세종시 관리들은 민원인 보기를 소 닭 보듯 한다. 멀리 서울에서 오전에 가면 오후에 오란다. 몇 시간을 기다려 2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본질이 왜곡되는 평가지수를 만들어 학교를 괴롭히고 툭하면 정원을 줄이라고 압박한다. 이들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더 큰일은 정부 관리들이 반개혁세력의 악의에 찬 투서, 비난, 모함 등을 공평의 이름으로 비켜가며 책임을 회피해 정의를 외면하는 일이다.
 이들 정신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정부 개혁이다. 파비안 쾨르너는 `인터넷 검색창에 진짜 세상이란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를 쓴 유리 그니지와 존 리스트는 자리를 박차고 책상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고, 기존 이론과 가정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답은 현장에 있는데 부처 안에 처박혀 회의만 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장 리더십을 강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도를 펴놓고 몇 번이고 현장을 확인한 후 지방시찰을 나가 몸으로 실천했다.
 열쇠는 실천에 있다. 실천 없이 머리 없다. 세상 모른 채 개혁을 아무리 외쳐봤자 좋은 정부가 되기는 글렀으니 거만한 갑의 태도는 장 속에 묻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장으로 뛰어가라. 공직자들의 정향과 습관부터 바꾸는 것만이 진정한 정부 개혁의 길이다.  - 김광웅 칼럼, '부처 신설이 정부개혁 正道 아니다' <매일경제신문> 2014. 10/23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