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한승원 단편소설 『목선(木船)』

by 언덕에서 2021. 4. 27.

 

한승원 단편소설 『목선(木船)』

 

 

한승원(韓勝源. 1939~)의 단편소설로 그의 등단작이며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배의 임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토속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한승원은 1964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한 후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했으며 이후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장흥의 장동서국민학교 강사, 1969년 광주 춘태여고 교사, 동신중학교 교사를 거쳐 1998년 8월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등 교직을 거치며 창작활동을 했다.

 한승원의 소설들은 그의 고향인 전남 장흥 부근의 갯가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소설가는 자기의 주거 공간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이유는 그곳이 그의 체험의 원(原) 공간이기 때문이다. 체험 자체가 곧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체험을 꿰뚫는 어떤 성향은 원 공간이 방사하는 색깔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남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목선을 둘러싼 세 남녀의 삼각관계를 통해 억척스런 갯가 사람들의 생활을 풀어낸다. 대사에서 풍부한 사투리의 활용이 인물의 성격을 더욱 또렷이 하며 토속적인 건강한 에로티시즘도 맛볼 수 있다. 작가의 독립적인 체험이 원공간의 색깔에 의해 어떤 성향을 보이며 내면화되고 구조화되어 소설 공간의 밑바닥을 이루었는데 작가의 체험은 그의 소설 공간에서 특유의 색채를 띠게 되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물다섯에 홀어미가 되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 양산댁과, 군대 간 사이에 마누라가 타관 사내와 눈 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홀아비 석주, 그리고 오징어잡이 배의 선주인 태수가 이 단편소설의 등장인물이다.

홀아비 석주는 양산댁의 요청으로 김 채취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일을 도와주는 머슴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태수가 양산댁 집을 다녀간 뒤로 무슨 꾐에 넘어갔는지 배를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나온다. 짐작건대 태수가 오징어잡이 선단에 끼워주고 조력도 해주리라 좋은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이 상황에서 석주는 얼마 전 양산댁과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배에서 함께 김을 따던 양산댁이 오줌을 누는 모양새에 동했던 석주가 그녀를 덮쳤고, 양산댁은 그의 팔뚝을 물어뜯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다음 물속으로 뛰어내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를 빌리지 못하게 된 화풀이로 태수를 혼내준 석주가 양산댁이 달아나듯 저어 가는 배에 기어올라 달려들자 양산댁은 체념한 듯 "배 가져가시오 “ 말해버린다. "그런디 나는 배 없이 어떻게 살 것이오? 한시도 못 살어라우. 배 없이는 죽어도…….”

 양산댁이 눈물을 비치자 석주는 차마 어쩌지를 못하고 여우 같은 것이 또 자기를 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멍청히 양산댁이 바라보는 먼바다의 한 점을 따라서 보고 있다.

 

소설가 한승원(1941~)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은 이 작품을 통해 등단했다. 그는 장흥고등학교에서 선배 송기숙을 만나 교지를 창간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삼 년 동안 김 양식을 하며 생활했다. 이때의 경험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하다.

 홀아비 머슴이 과수댁 주인과 김 채취를 나가서 보게 되는 노을의 모습, 양산댁이 배의 고물에 가서 참았던 소피를 보는 장면을 보고 홀아비 석주가 삶의 충동을 느끼는 장면, 배를 저어 돌아오면서 ‘같이 살자’라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을 당한 후 묘사되는 자연 등 이 소설 속 묘사에서는 자연 속에서 ‘충동’과 본능의 원색적인 노출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어 있다.

 원색의 노을과 달과 물결과 거기 연결되는 장면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었다고 느끼게 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약속을 저버리고 거기 분노하여 활극이 벌어지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이런 배경 속에서는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이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사에서도 한승원은 자신만의 언어인 고향의 언어로 ‘갯바닥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목선」에서 석주는 날품팔이 일꾼이었지만 양산댁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머슴을 살게 된다. 그것은 다음 해 채취선을 빌려준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그다음 해가 되었을 때는 양산댁의 마음이 달라져 있다. 태수의 농간에 의해서이다. 태수와는 한판의 싸움이 벌어지고 태수를 굴복시킨 석주는 양산댁으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채취선 사용의 허락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다음 내용은 태수와 석주의 한판 싸움을 그리고 있는 작가 한승원의 생각이다.

 ‘갯바닥 사람들은 화가 끓으면,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물방울 날리는 물결같이 장쾌한 욕설을 퍼부은 다음에 할 말을 한다. 나는 그 갯가에서 나고 자란 탓으로, 바닷바람이 곰솔 숲을 흔들고, 높은 물결이 모래톱이나 바위 끝을 두드리며 아우성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말법을 익혔다. 말이 곧 생각이요, 생각은 모든 짓거리의 근원이라면, 나는 갯바닥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황석영은 이렇게 평했다.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만 그들의 불운하고 고달팠던 일상은 앞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한 방향을 같이 바라보고 있는 데서 끝나는 것도 이 단편의 깔끔하고 빛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