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장편소설 『심판(審判 : Der Proze)』
체코 출신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장편소설로 1925년 발표되었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집필하고 1925년에 출판한 미완성 장편소설이다. 미완성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대부분의 내용과 결말은 완성되어 있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무고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문학의 가장 유명한 첫 구절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탈출구가 없는 어떤 상황이 여기서 펼쳐질 것이라고 예감한다.
요제프 K.는 어느 날 갑자기 기소당한다. 그러나 무슨 죄로 기소당했는지, 그를 단죄하는 사람은 누군지, 자신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체포되었는데도 구금되지는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허용된다. 마치 그의 소송은 다른 사람들이나 그 자신의 의식 안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소송은 차츰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빠져나갈 길은 없다. 소송은 그의 의식을 거미줄처럼 휘감고 있다. 인간이란 죽음의 선고가 유예된 상태에 놓여 있는 존재임을 K의 경우가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카프카의 대표작이자 그의 가공할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습을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를 악몽 같은 세계로 인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제프 K.는 강력한 '법률'의 굴레에 끼이게 된다. 이 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그것이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는 소설이 진행되면서도 풀리지 않는다. 또한, K.가 어떤 잘못으로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침실에서 감시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는지도 전혀 확실치 않다. 그의 체포가 일상적인 체포가 아니라는 사실은 독자들이 K의 일상을 추적해 보면 뚜렷해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아침, 능력 있고 양심적인 은행원이자 독신자인 요제프 K.는 평소처럼 회사로 출근할 예정이었지만. 그를 체포하러 온 사람에 의해 잠이 깬다. 체포된 요제프 K.는 급작스레 강력한 법률의 굴레에 끼이게 된다. 그를 별로 구속하려 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유롭게 풀어주지도 않는 이상한 감시인들도 덤으로 함께다. 이 법이 누구에 의해 제정되었는지,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K.는 단지 법원이 그를 기소했다는 것만 통보받았을 뿐 그 이유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치안판사의 법정에서 행해지는 심문은 환멸스러운 어릿광대 극으로 바뀌고 그가 체포된 혐의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정은 더는 발의권을 갖지 못하지만, 요제프 K.는 스스로 접근할 수 없는 법정을 찾아 그가 알지도 못하는 죄로부터 무죄 석방을 받기 위해 전념한다.
K.는 심리에 참여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에 가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곳엔 무능한 법관과 무슨 말을 하든 웃어젖히기만 하는 이상한 관중들 뿐 그의 노력은 전혀 소용이 없다.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느 변호사를 소개받기도 하나 그 변호사가 하는 일이라곤 가끔씩 아부성 조서를 써대는 것밖에 없는데다 다른 피고들이 그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에 질린 K.는 변호사와의 관계도 끊어버리고 만다.
그는 중재자들에게 호소해 보지만 그들의 충고와 설명은 오히려 새로운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터무니없는 책략을 써보기도 하지만 더럽고 어둡고 음탕한 결과만을 초래했다. 한 성당에서 쉬고 있을 때, 어떤 신부가 나타나 결백성을 주장한 것 자체가 죄의 표지이며 그가 억지로 찾아 나서게 된 정의의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주변인들은 그의 패소가 확정적인 것처럼 말하고 K.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1년간의 소송 끝에 그의 유죄가 확정된다. 결국, 그가 여전히 주위에 도움을 청하면서 최후까지 저항하지만 어느 날 저녁 아홉 시, 두 명의 남자가 그를 유인해 끌고 간 뒤 교외에서 그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 두 번 돌려 사형을 집행한다.
작품 전체에 걸쳐 K.는 구원을 얻기 위해 많은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뷔르스트너라는 여자로부터 구원을 찾으려 하기도 하고, 변호사, 성직자라는 직업으로부터 구원을 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도들은 하나같이 전부 실패하며,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지 못한 채 K.의 파멸과 함께 사라져 간다. 이는 삶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지만 전부 실패하는 인간 생애의 절망적 한계에 대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법원 그 사무실의 묘사에는 카프카의 개인적인 필체가 담겨 있다. 이를 사람들은 '카프카적(kafkaesk)'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데, 이는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상황을 묘사하거나 폐소공포증적인 답답함과 미로 같은 모호함이 기이한 부조리와 혼합된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를 말한다. 특이한 점은 K.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체포될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K.는 항상 그가 체포될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한 연유에서 그는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완전히 고립된다.
♣
카프카는 현대 관료주의를 이해할 수 없이 되어버린 제도화된 권력으로 묘사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알 수 없는 관청의 여러 단계, 미로와 같은 사무실, 작고 사소한 일마저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담당하는 영역의 불명확성, 그리고 이런 권력의 기계장치에서 개인의 의미가 가련하게 무너지는 장면 등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런 차원 외에도 카프카의 수수께끼 같은 소설 세계는 카프카를 고정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막는다.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어떤 점에서는 K.가 법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법이란 법이다"라고 주어진다. 법을 이해하기 위하여 K. 역시 법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작품 속 K.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장소를 찾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것을 이해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것과 아주 유사한 것이 카프카 해석이다.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힘들게 그 흔적을 찾은 끝에 도달하게 된 인식은 찾고 있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의 개념을 신학적·존재론적·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다. 카프카의 소설은 표현주의의 그림과도 같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현실의 형식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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