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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고골(리) 장편소설 『타라스 불바(Taras Bulba)』

by 언덕에서 2021. 2. 4.

 

고골(리) 장편소설 『타라스 불바(Taras Bulba)』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리(Gogoli, Nikolai Vasil'evich.1809∼1852)의 장편소설로 작품집 <미르고르트>(1835)에 최초 수록되었고, 1842년 대폭 수정하여 발표되었다. 16∼17세기에 드네프르강 하류 섬을 근거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 카자크족과 폴란드 귀족과의 치열한 싸움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카자크 부족 대장 '타라스 불바'를 중심으로 한 카자크인들의 불굴 투혼과 조국애를 그렸다. 

  이 작품은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인 아버지와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반하는 아들의 비극적인 행보를 웅장한 전쟁 서사 속에 절묘하게 녹여 놓음으로써 카자크 몰락의 역사를 극적으로 형상화했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골은 이 방대한 작품을 위해 우크라이나 역사에 관한 각종 문서, 전설, 민담 자료를 수집하고 우크라이나인의 정서를 세심하게 관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 카자크인들의 열정적인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이 작품은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뒤섞은 독창적인 문체와 생생한 전투 장면의 묘사가 특히 뛰어나다. 헤밍웨이는 “미증유의 위대한 책 열 권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뒤섞은 독자적인 문체로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전투 장면 묘사가 특히 뛰어나다. 비평가 벨린스키는 이 작품을 러시아에서의 ‘호메로스적 서사시’의 ‘최고의 모범’이라고 하였다. 1962년 리 톰슨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율 브리너와 토니 카티스가 주연했다. 국내에서는 <대장 부리바>라는 영화명으로 소개되었다.

 

영화 <대장 부리바 Taras Bulba> , 1962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생을 전쟁에 몸을 바친 카자크 족장 타라스 불바는 신학교를 졸업한 두 아들 오스타프와 안드리를 군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카자크인들의 진영인 자파로제의 세치로 데리고 간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소 러시아는 몽골족 침입 후 혼란과 종교 문제로 인하여 터키 및 폴란드, 기타 인접국들과의 치열한 투쟁으로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세치에 사는 카자크인들은 평상시에는 목장이나 논밭이나 나루터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보냈으나, 한번 전쟁이 터져 총동원령이라도 내리면 8일 이내에 전원이 말을 타고 완전무장을 한 뒤 집합하는 용맹스러운 민족이다.

  때마침 그들의 영지가 폴란드군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자크 군은 바로 폴란드의 서남부로 공격해 들어갔다. 계속 전진하여 두브너에 돌입한 카자크 군은 그 거리를 사수하고 있는 폴란드군과 맹렬한 전투를 개시하여 적군을 성안에 몰아넣고 포위해 버렸다.

  그 중요한 시기에 안드리가 학교에서 알게 된 폴란드 아가씨를 향한 연정으로 해서 우군을 배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타라스 불바는 자기 손으로 직접 아들을 살해하고 그사이에 적의 구원군이 도착했다. 세치에는 다른 외적들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져 절반의 병력은 회군해야만 했다.

  타라스 불바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적과 용감하게 싸우지만, 아들 오스타프는 포로가 되어 버리고, 자기 자신도 전투 중 기절한 채 아군에게 가까스로 구출되었다. 그러나, 굴할 줄 모르는 타라스는 바르샤바에 숨어 들어가 아들 오스타프가 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한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그의 보복으로 12만 명의 카자크 군은 우크라이나의 국경에 나타나 폴란드 전 영토를 폐허로 만든다. 그러나 그 원정에서 타라스 자신도 포로가 되어 화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 화형대 위에서 그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외친다.

  "우리 카자크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해라. 이제 곧 때가 이르면 우리 러시아 정교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자네들도 알게 되리라.“

 

 

 「타라스 불바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자포로제 등지를 터로 삼았던 열정적인 16세기 카자크족의 투쟁과 비장한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자유인, 전사 또는 모험’이라는 뜻의 터키어에서 유래한 카자크는 전통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군사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던 집단이다.

  초기에는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고 약탈을 일삼으며 터키와 타타르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던 자치 조직이었고, 15세기에는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형성된 반(半) 독립적 집단을 가리켰으며, 15세기 말에는 농노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란드ㆍ리투아니아ㆍ모스크바 공국에서 달아나 준 자치 군사 조직을 만든 농민들도 이에 포함되었다.

  16세기에는 돈, 그레벤(카프카스 지방), 야이크(우랄강 중류), 볼가, 드네프르, 자포로제 등 여섯 개의 주요 카자크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 중 가장 명성을 크게 얻은 것이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자포로제 카자크이다. 호전적이고 열정적이며 잔혹했던 이들 카자크는 당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하던 폴란드, 터키, 타타르 등의 이민족, 이교도들에 맞서 민족 전통과 러시아 정교를 지키기 위해 숱한 전쟁을 치렀다.

  이 작품에서 다뤄진 폴란드를 향한 카자크의 투쟁은 그 자체로 매우 서사적이다. 이러한 역사로부터 장엄한 서사의 가능성을 발견한 고골리는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답게 각종 사료와 전설, 민담을 수집하고 민족의 정서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카자크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카자크 역사의 한 페이지가 고골 특유의 희비극적인 유머와 면밀하고도 힘찬 필치를 만나 ‘러시아 민족혼의 수호자’인 카자크 영웅들의 감동적인 대서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영화 <대장 부리바 Taras Bulba> , 1962 제작

 

  공명심과 용맹의 화신으로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명예를 추구하는 주인공 타라스 불바는 물론 작품 속에서 고골리가 그리는 카자크인들 모두가 무모하리만치 용맹한 민족의 투사들이다. 고골은 치밀하고 정교한 문장으로 16세기 카자크 세계에 새 숨을 불어 넣고 열정적인 전사들을 다시금 살아 움직이게 했다. 고골은 카자크 세계의 몰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원로 카자크 지휘관으로서 민족의 전통적 가치관과 전사로서의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하는 타라스 불바와 두 아들, 즉 타고난 전사인 장남 오스타프,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차남 안드리는 역사의 혼돈을 섬세하게 투영한 인물들이다. 불바와 오스타프가 구시대의 전형이라면, 안드리는 이러한 구시대의 몰락과 신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인물이다. 시대의 변화가 일으키는 충돌과 갈등, 혼돈을 여실히 보여 주는 이 세 인물의 비극은 결국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선택에서 기인한다. 적장의 딸에게 무릎을 꿇고 “조국이란 우리 영혼이 찾는 것이어야 하오. 내 조국은 당신이오!”라고 고백하는 안드리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아들에게 ‘조국’은 이제는 같은 것이 아님을, 그들은 이제 서로 다른 가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타라스 불바」는 이처럼 상충하는 가치 간의 선택과 응전이자, 나와 상대방의 끝없는 투쟁인 역사의 속성을 뛰어난 극적 서사로 풀어낸 역사소설의 이상적인 전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