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Funes the Memorious)』
아르헨티나 소설가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 1899~1986)의 단편소설로 1944년 발표된 단편집 <픽션(Ficciones)>에 실렸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모두 기억해 내는 비상한 능력을 갖춘 기억의 천재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이다. 주인공 푸네스의 뇌는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나 저장되는 모든 기억을 응용하거나 분류하거나 범주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잘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푸네스의 기억은 대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거나 종합하는 사고가 없다. 작가는 이러한 푸네스의 모습을 통해 지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이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기억력이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흔히 정의되는 그의 문학 세계는 정통 리얼리즘이 갖는 협소한 상상력의 경계를 허문 것으로 평가된다. 노벨 문학상은 못 받았지만, 네루다, 마르케스, 파스 같은 중남미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보다 선배격이다.
마르케스의 단편집 <낯선 순례자>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외쳤다. '어떤 여자가 나에 대해서 꿈을 꾸는 꿈을 방금 꾸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역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마르케스가 덤덤하게 받았다. '그건 이미 보르헤스가 쓴 이야기야. 아직 안 썼더라도 언젠가 쓸 것이 틀림없어.'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남미 문학의 두 대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한 수 위'의 작가로 접어줌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87년 푸네스는 산 프란시스코의 목장에서 반쯤 길들인 야생마에서 떨어져 절망적인 전신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그의 현재는 너무 풍요롭고 너무 예민하게 변해버렸다. 푸네스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일들까지 기억이 났다. 몸은 불구가 되었지만, 지각력과 기억력은 완벽한 것이 되어 있었다.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린 모든 잎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생각했다. 그는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꿈과 비몽사몽간의 일들을 모두 복원시킬 수가 있었다. 순간적인 인상들을 무한히 구별하고 무한히 기억할 수 있는 푸네스의 능력은 그에게 은총과 쓰디쓴 환멸을 동시에 맛보게 했다. 사고란, 차이를 잊고 공통점들을 모아 일반화하고 개념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개념화를 통해 다시 세계의 사물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네스는 개념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보는 플라톤적 사유를 할 수 없다. 한 마리의 개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동안 그 모든 순간이 다르게 지각되고 기억되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계속해서 미세하게 달라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무한히 증식되는 기억 속에서 무한한 이름 붙이기라는 거대한 바다에 잠겨 살던 푸네스는 스물한 살에 폐울혈로 죽는다.
‘나’는 1984년에 여름휴가를 보냈던 우루과이의 프라이벤토스에서 이레네오 푸네스를 처음 만났다. 1987년에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푸네스는 말에서 떨어져 전신 마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라틴어책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고, ‘나’는 책을 골라 보냈다. 얼마 후 ‘나’는 책을 돌려받으러 푸네스에게 가게 되었고, 그는 그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여 라틴어로 똑같이 말했다. 푸네스는 사물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징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묶는 개념으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했던 푸네스는 요절한다. 이 소설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 증후군에 걸린 존재 푸네스가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 푸네스는 쓸데없는 세부적인 사항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쓰레기 처리장 같은’ 기억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는 낙마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지만, 그 결과 비범한 기억력을 갖게 되는 '푸네스'가 등장한다. 그는 산에 있는 나무에 달린 잎사귀 하나하나와 지각하는 순간의 느낌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지만, 개념을 일반화하거나 범주화하지 못해 기억만 할 뿐 사고하지 못한다.
♣
보르헤스는 역사 이래 인간의 오랜 열망이었고 누구라도 한 번 가져보았으면 하고 상상해보는 완벽한 기억력을 주제로 우리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인간의 기억은 어째서 한정되어 있을까? 우리가 읽고, 듣고, 느끼는 것, 즉 인간이 감각으로 경험하고 머리로 인지하는 모두를 완전하게 기억할 수는 없는 걸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만약 완벽한 기억력을 지닌다면 우리는 행복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푸네스는 낙마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지만 놀라운 기억력을 얻게 된다. 화자는 푸네스의 경이로운 지각 경험과 기억력에 대해 경탄한다. 그러나 푸네스의 세계에는 거의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인지되는 세부들밖에 없다. 세부들은 순간적이고 계속 변화하고 같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예를 들어, 눈앞에 놓인 장미도 1시간 전의 장미와 지금 보는 장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정면에서 본 장미와 측면에서 본 장미도 같은 장미가 아니다. 푸네스의 놀랍도록 예민한 기억력은 이 매번의 경험을 모두 다르게 기억한다.
따라서 푸네스에게는 ‘장미’라는 보편 언어가 불가능하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푸네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지시 체계를 고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인간이 사고한다는 것은 각각의 차이점에 매달리는 대신 세부적인 차이들 속에서 일반화를 찾아가고 개념화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소설 속 '나'라는 화자는 푸네스에게 이런 종합과 분류를 통해 다져지는 지식의 체계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세상 모든 것의 다양성 그리고 무한한 시간성을 그 세상의 아주 일부만 경험하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과 견주면서 이 둘의 관계를 흥미롭게 탐구한 작품이다. 푸네스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설정은 마치 현실을 벗어난 것처럼 독특하다. 그러나 푸네스와 화자와의 대화 속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간의 너무나 현실적인 입장과 한계가 모두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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