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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안회남 단편소설 『불』

by 언덕에서 2021. 3. 16.

 

안회남 단편소설 『불』

 

 

안회남(安懷南. 1910~ ?)의 일인칭 시점의 단편소설로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단편집 「불」의 표제작이다. 해당 단편집에는 <쌀>, <소>, <말>, <섬>, <별>, 「불」, <밤>, <봄>, <철쇄 끊어지다>, <그뒤 이야기> 등 모두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전의 안회남의 작품과 비교할 때 일면의 연속성과 함께 상이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연속성이란 그의 주된 작품 성향 가운데 하나인 체험의 직접적 반영이라는 특색이 지속되는 일이고, 상이성이란 그 체험의 질이 단순한 신변잡기적 수준을 넘어 역사의 큰 흐름과 만나는 새로운 지점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지점의 형성은 일제 말 그가 겪었던 기타큐슈 탄광에서의 징용 생활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징용체험의 제시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 ‘새로 보이는 조선’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수록된 대표작 「불」은 안회남의 넓어진 시각의 변화를 알리는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안회남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뒤 남로당이 해주에서 소집한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9년 [민주조선] 문화부장을 맡았다. 한국전쟁 시기에 종군작가단에 참가해 서울에 왔다가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 아직 월북하지 않았던 문인들과 함께 북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중반에 숙청 또는 아직 되었다는 설이 있을 뿐 다른 남한 출신 문인들처럼 1954년 이후 북에서의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가인 '나'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장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전통에 따라 이른 아침 헛기침을 3번하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다 '나'의 집 우물에서 물을 뜨려는 이웃집 이 서방의 어머니를 만난다. 이 서방의 어머니는 우리 집 우물물을 먼저 떠서 우리 집의 복을 가지려는 미신을 행하는 행동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이 서방 집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보름날 점심을 9번 먹는 것을 빌미로 음식을 챙겨 그의 집을 방문한다. 그의 집은 초가삼간으로 솥도 없고 금 간 그릇조차 없이 쓸쓸했다. 나는 이 서방을 만나 그의 집안 사정에 대해 듣게 된다. 이 서방은 일제강점기 때 근 4년 동안 강제노역을 하게 되고 그동안 그의 6살 난 아들은 천연두에 걸려 죽는다. 또한, 이 서방은 집에 편지나 연락조차 못 하여 가족들은 그가 죽었겠거니 생각한다. 그 바람에 이 서방의 부인은 재가하고 그의 모친은 이 서방의 여동생이 돌봐준다. 나는 그가 징용 기간 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강제로 군사훈련을 받는 등 혹독했던 생활을 했음을 들으며 안타까워한다. 나 또한 강제로 징집당해 탄광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공감한다.

 나는 이 서방에게 대보름 행사로 불놀이를 같이하자고 제의하자 이 서방은 눈을 번뜩이며 강제노역 시절 불에 대해 얘기해준다. 강제노역 때 불에 비하면 대보름의 불은 불도 아니며 폭탄이 별이 떨어지듯이 떨어졌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태우고 싶다고 한다. 불놀이를 마친 후 나는 아내와 보름달을 감상하고 잠자리에 든다.

 잠을 자던 중 누군가가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서둘러 밖을 나갔다. 밖에 나가보니 이 서방네 집은 일부러 불을 지른 것처럼 활활 타고 있었고 이 서방은 언덕 위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은 이 서방네만 태우고 꺼졌으며 이 서방의 모친은 재만 남은 집터에 앉아서 울다 여동생이 모시고 갔다.

 나는 이 서방이 방화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이 서방을 만난다. 그는 이제 자기에게는 집도 가족도 없으며 강제노역 때 죽었다고 생각한 목숨이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새 삶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제 자기를 속박하는 것이 없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한다. 나는 소설의 소재를 위해서도 또한 개인적인 마음으로도 이 서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혹시 서울에 오거든 찾아오라며 주소를 적어준다.

 

소설가 안회남( 安懷南.&nbsp; 1910~ ?)

 

 이 작품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겪은 이웃 이 서방 집의 방화 사건을 그린 내용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 이웃 이 서방의 모친이 누구보다 먼저 물을 길러 오는데, 그것은 이 서방 모친이 복을 빌기 위한 의도적 행위였다. 이 일로 인해 이 서방 집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이서방을 만나게 되고, 그의 아픈 과거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다. 대보름 불놀이 이후 이서방 집에 불이 나게 되는데 주인공 나는 그것이 분명 방화라고 생각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 날의 불놀이 풍습과 그날 밤 일어난 방화 사건은 서로 연결되면서 불행한 과거를 불사르고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삶의 각오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이런 작품들로 인해 단편집 「불」은 광복을 맞아 다시 돌아보는 우리 민족의 과거 확인과 미래지향적 방향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광복 전후의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그 당시의 시대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서방의 강제노역 시절을 섬세히 묘사한 부분과 이 서방과 그 일가의 불행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우리 민족 전체의 고통과 피해를 표현이 효과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서방이 방화함으로써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부분에서 일제의 만행으로 민족 전체가 힘들지만 다잡고 새로 나아가자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해석이 다수이다. 해방 직후 많은 문인은 ‘작가적 양심’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지닌 지식분자로서의 ‘소시민성’을 극복하고 조선의 민중과 더불어 새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안회남도 식민지 사회에서 몰락해간 지식인 집안의 한 사람으로서 소외되고 밀려난 주변의 수많은 인물에게 소설을 통하여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이는 소극적이기는 했으나 진실한 애정과 연민을 지닌 것이었다. 그랬던 안회남이 탄광에서의 징용 체험을 통하여 비로소 역사 또는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해방되어 작가로 돌아왔을 때 과거의 자유주의적 프티부르주아☞가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민중이 조선의 주인이며 그들과 함께 가겠다는 결의가 이후 변화된 작품의 곳곳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에 발표한 「불」은 문학가 동맹 기관지인 [문학] 창간호에 실렸다. 소설가인 화자는 정월대보름에 이웃의 이 서방을 만나 그의 과거사를 듣는다. 일본 보국대에 끌려갔다 돌아온 이 서방은 그동안 외아들을 천연두로 잃고 아내마저 이웃 홀아버지에게 개가해 빈털터리 신세다. 그는 불놀이를 보면서 전쟁터를 떠올리고, 해방감과 함께 ‘그동안 밉고 미운 일본을 위해 힘을 썼던 것이 부끄러운 만큼 무엇으로든지 앞으로는 조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불놀이라는 민속놀이가 부정함을 태워 새봄의 싹을 맞이하는 것처럼 봉건 잔재를 불사르고 새로운 삶을 탄생시킬 정화의 제의로 보인다.

 


프티부르주아(petit bourg) : 사회 일반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수공업자하급 봉급생활자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 유의어 : 소부르주아, 소시민